살아가고 싶은 터
멧자락을 곁에 낀 보금자리란 참으로 좋다. 멧자락과 함께 들판이 찬찬히 펼쳐진 자리에 있는 보금자리란 더없이 좋다. 물줄기가 시원하게 흐르는 골짜기가 함께 있으면 아주 좋다. 물줄기가 바다로 이어져 갯벌과 모래밭까지 한 시간쯤 걸어서 찾아갈 수 있으면 그야말로 좋다.
옆지기가 살아가고 싶은 보금자리를 마음속으로 그린다. 나는 어떠한 보금자리에서 살아가고 싶었나 곰곰이 헤아린다. 돌이키면, 나는 책방 곁 작은 보금자리를 생각했을 뿐, 정작 내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보듬을 만한 보금자리를 꿈꾼 적이 없다. 오직 마음밥 하나 먹는 일에만 생각을 쏟았다.
내가 오늘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를 만나지 않았으면, 아마 책방하고 가까운 도시에서 내처 살아가지 않았으랴 싶다. 마음밥만 먹으면서 막상 몸은 썩 튼튼하지 못한 삐뚜름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돌아본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내가 살아갈 만한 터를 곱씹는다. 옆지기하고 함께 낳은 아이들과 지내며 이 아이들하고 사랑스레 살아갈 만한 터를 되새긴다.
그래, 멧자락, 들판, 물줄기, 바다, 갯벌, 모래밭 골고루 있을 때에 얼마나 따사롭고 포근할까. 멧자락에는 온갖 나무가 골고루 자라고, 나와 살붙이 모두 풀과 나무가 베푸는 선물을 곱게 받으면서, 나 또한 풀과 나무한테 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나날이라면 얼마나 기쁘며 고마울까. 흙을 밟으면서 흙으로 벽을 쌓고, 나무를 만지면서 나무로 기둥과 지붕 뼈대를 올리며, 돌을 쓰다듬으며 너른 돌판을 지붕으로 얹는 집이라면 가장 어여쁘겠지.
그러고 보면, 이와 같은 보금자리에는 한 가지 깃들 수 없다. 바로 건널목. 내가 우리 살붙이하고 느긋하게 마실을 다니는 터에는 건널목이 깃들 수 없다. 나는 건널목 있는 마을이 싫다. 건널목 없이 길을 걷고 싶다. 건널목 없이 이곳과 저곳을 오가고 싶다.
자동차를 안 몰고, 자동차를 애써 타려 하지 않으나, 짐을 싣는다든지 가끔 얻어탄다든지 한다. 오늘날 자동차가 아예 없을 수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늘 자동차를 타야 할 까닭이 없다. 꼭 타야 할 때에만 고마이 살짝 얻어타면 된다. 그러니까, 이 자동차들 때문에 찻길이 넓어진다든지, 건널목이 생긴다든지 할 일이란 없다. 드문드문 아주 드물게 달릴 자동차에는 빵빵이가 없어야 한다. 시골마을 달리는 자전거에도 딸랑이가 없어야 한다. 시골마을 자전거는 앞에 가는 사람을 딸랑이로 놀래켜서는 안 된다. 시골마을 자동차는 앞에 걷는 사람을 빵빵이로 비키라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사람이 앞에서 걸어가면 뒤에서 천천히 가다가 스르르 옆으로 비켜 가야 할 자전거요 자동차이다.
사람은 사람을 생각할 때에 사람이다. 삶을 생각하는 나날이어야 삶이다. 사랑을 아끼는 손길이어야 사랑이다. 조용히 예쁘게 살가이 꿈을 누리는 보금자리가 좋다. (4344.11.7.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