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 마려
첫째 아이가 밤새 두 차례 “쉬 마려!” 하고 외친다. 짧게 외치기도 하고, “아빠 쉬 마려!”나 “엄마 쉬 마려!” 또는 “아버지 쉬 마려!” 하고 외친다. 처음 외칠 때에 곧바로 알아채고는 벌떡 일어나 아이 손을 잡으면서 “자, 쉬 마려우면 일어나. 쉬하러 가자.” 하고 이야기하면 아이는 씩씩하게 잘 일어나서 아버지 손을 잡고 아이 오줌걸상에 앉는다. 조금 늦게 일어나거나 두세 번 외칠 무렵에 잠에서 깨면 아이는 징징대며 우는 소리를 낸다.
쉬를 눈 아이는 금세 잠든다. 예쁘다고 머리를 쓸어넘기거나 가슴을 토닥인다. 쉬를 눌 때에 밤하늘 별을 보면 좋으련만, 아이는 꾸벅꾸벅 졸면서 쉬를 눈다. 쉬를 누며 잠들기도 하니까 좀 오래 앉는다 싶으면 “다 누었니?” 하고 두어 차례 물은 다음 일으켜세워 바지를 입힌다. 네가 앞으로 몇 살까지 이렇게 어리광을 피우겠니 생각하며 아이를 번쩍 안아 자리에 눕히기도 한다.
아이를 자리에 눕혀 이불을 여미다가 생각한다. 밤에 잠에서 깨어 쉬가 마렵다고 할 때에는 이렇게 ‘네가 앞으로 몇 살까지 어리광을 부리겠느냐?’ 하고 생각하면서, 막상 아이가 한창 신나게 뛰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 어리광을 옳게 받아들여 주지 못하는 내 모습을 겹쳐 놓고 생각한다. 참 덜된 아버지요 어른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한테 읽히려고 그림책을 잔뜩 장만하고도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찬찬히 그림책을 읽을 틈을 좀처럼 못 낸다. 이 시골집 손질을 말끔히까지는 아니더라도 웬만큼 끝마칠 때까지는 몸에 기운이 얼마 안 남기에 그림책 읽히기를 못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힘들다는 핑계로 날마다 얼렁뚤땅 넘어가지는 않나. 참말 힘들기는 힘든가. 아니, 많이 힘들기는 많이 힘든데, 많이 힘들더라도 하루에 몇 분쯤 그림책 함께 읽으며 보낼 틈조차 못 낼 만한가. (4344.10.31.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