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 - 결혼을 배운 적이 없는 모든 당신들을 위하여
강수돌 외 지음 / 샨티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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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옆지기하고 즐겁게 살아갑니다
 [책읽기 삶읽기 85] 강수돌과 열여섯 사람,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샨티,2011)



 옆지기는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샨티,2011)라는 책에 글을 쓴 열일곱 사람 가운데 딱 한 사람을 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로는 ‘네 살 딸아이까지 세 식구가 중동에서 넉 달째 나들이를 한다’는 편해문 님을 안다.

 나는 편해문 님을 1999년이었나 2000년부터 알았다. 어린이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던 이무렵, 막 어린이책 두 가지를 내놓아 ‘새내기 작가 이름’을 걸친 편해문 님은 어린이놀이 이야기에 여러모로 마음을 쓰는 분이었다.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며 이름을 알기로는 이때부터이지만, 막상 느긋하게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로는 2010년 이른겨울이 처음이었다고 느낀다.

 어찌 되든, 옆지기는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라는 책에서 편해문 님 글만 골라 먼저 읽는다. 편해문 님 글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 글은 읽지 않았단다. 나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는다. 모두들 ‘혼인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글을 한 꼭지씩 쓰는데, 옆지기 말마따나 누구라도 ‘혼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밑앎 이야기를 다루려 애썼다고 느낀다. 다만, 편해문 님을 빼놓고는 ‘혼인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 구성진 이야기’에 눈길을 두려는 분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나같이 ‘오늘날 한국땅에서 얼마나 벅차고 힘들며 고단한 혼인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결혼을 하는 순간, 우린 종종 상대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송두리째 점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믿는다. 심지어는 그의 과어와 미래까지도 모두 아내 혹은 남편이란 이름으로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  (28쪽/목수정)


 책을 덮고 나서 옆지기 말을 거듭 곱씹는다. 열일곱 사람 어느 누구라도 ‘한국땅에서 혼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밝히겠다며 힘썼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내 가슴으로 촉촉히 젖어드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지 못한다. 어느 이야기라도 답답하다. 어느 분 글이라도 갑갑하다.


.. 결혼 후 몇 번 이사를 다니다 보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서재, 아내의 서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이렇게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것은 아예 존재하지조차 않는 방이었다. 여성은 남편과 함께 공동의 서재를 쓰기 때문에 집 안에 서재는 하나로 충분하며, 만일 두 개의 서재가 마련되어 있다면 그것은 둘 다 남편의 서재이거나 혹은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에 미리 만들어 놓은 아이의 방이었다 ..  (68∼69쪽/서윤영)


 열일곱 사람 가운데 ‘혼인을 하며 즐거이 살아간다’고 글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나마 편해문 님은 세 식구가 오붓하게 중동 여러 나라를 돌아보는 마실을 여러 달째 한다고 글을 쓴다.

 참 꿈 같다. 세 식구가 여러 달 나들이라니. 돈은 얼마나 있을까. 아이가 하나이니 단출하게 마실을 할 수 있겠지? 아이가 둘만 되어도 넋을 온통 사로잡아 도무지 어쩌지 못하겠는데. 아이가 셋이라면 그야말로 허둥지둥 더 복닥거리겠지. 넷이라면? 넷이라면 참 빠듯할는지 모르지만, 두 아이와 살아가건데, 넷부터는 첫째가 막내나 동생을 찬찬히 보살피도록 함께 살아가야 할 테니, 이럭저럭 짐은 좀 덜지 않으랴 생각한다. 그러나, 집에서 빨래기계 안 쓰고 아버지가 집일을 도맡는 우리 모습을 돌아본다면, 서른일곱에 둘째가 태어난 이 집에서 넷째까지 보려 한다면, 아이들 사이에 세 해는 틈을 주어야 하니까, 나는 마흔다섯 살까지도 기저귀를 빨며 보내야 한다.

 아, 기저귀 빨래란! 첫째 아이 밤오줌 가리기를 겨우 떼고 첫째 아이 기저귀 빨래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할 무렵, 하루도 쉴 틈이 없이 새삼스레 둘째 아이 기저귀 빨래로 접어들어야 하던 일이란! 이레 남짓 첫째랑 둘째 기저귀를 빨래하느라 아주 손목 팔목 빠지던 일이란! 제발 밤에 잠 한 번 제대로 자자고 꿈꾸던 나날이란!

 머잖아 둘째 아이 젖떼기밥을 마련할 일을 헤아리면 집일은 도무지 끝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집일이 조금이나마 줄 틈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옆지기하고 두 아이를 함께 낳아 살아오면서 ‘혼인은 뭐지?’ 하는 생각을 거의 못 했다.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생각을 안 하지 않는다. 참말 끝없는 집일을 건사하면서 하루하루 서로서로 사랑하며 살자고 다짐하기에도 눈알이 핑핑 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며 오늘은 오늘대로 좋아하고, 이듬날은 새롭게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빌며 눈을 감는다. 이듬날은 아이들과 더 예쁘게 말을 섞자고 다짐하며 눈을 감는다.


..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나 고학력에 비해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가정에서만은 봉건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요한다. 고학력 여성군의 독신 비율이 늘어나는 이유도 우리 사회 결혼 제도의 모순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  (121쪽/오진희)


 나는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를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하다. 왜 이 책에 글을 쓴 열일곱 사람은 ‘집에서 하는 일’을 놓고는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아니, 집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또렷하게 밝히면서 올바로 보여주는 글은 왜 하나도 없을까. 혼인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열일곱 사람 모두 ‘바깥에서 하는 일’과 ‘내 마음에 맞는 짝꿍이 있을 때에 꼭 법률 제도에 따라 예식을 올려 한 집에서 살을 섞어야 하는가’에만 눈길을 두면 되는가. 이만 한 글이라면 혼인 제도나 혼인 문제를 다 다루었다고 여길 만한가.

 여남 불평등이건 남녀 평등이건 대수롭지 않다고 느낀다. 사회가 불평등이건 평등이건 나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는 길이 가장 즐겁다고 느낀다. 나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면서 나와 함께 아름다이 어깨동무하는 길을 일굴 짝꿍을 사귀어 서로를 지키고 기대는 옆지기로 한삶을 돌보면 가장 따사로우리라 느낀다.

 먼저 서로 아끼고 사랑할 ‘좋은 보금자리’를 찾아서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느낀다. 돈벌이에 사로잡히거나 돈벌이에 얽매이는 공해덩어리 도시가 아닌, 삶짓기에 걸맞거나 삶사랑에 알맞을 좋은 마을살이를 꿈꾸어야 한다고 느낀다. 어른인 두 사람부터 아름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라면, 이 아름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태어날 아이들은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랄 수 있겠지.


.. 왕자라는 사내가 옳은 정신이 박힌 자라면 신데렐라가 부엌데기이든 무어시든 신데렐라의 현재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참 남자들이 이렇게 어리석다. 한 세월 아무리 한 이불 덮고 자도 서로 해서는 안 될 이야기가 있고, 끝까지 지켜 줘야 할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남자들이 이런 걸 잘 못한다 … 쉽게 말해 나무꾼은 선녀들을 염탐하던 한 짐승의 귀띔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선녀의 옷을 훔치고, 그것을 빌미로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가둬 버리려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 나무꾼은 아이를 셋이나 낳고 온갖 살림살이를 다 하며 사는 아내를 진정 사랑했던 것일까? 사랑했다면 아이를 하나 낳았을 때, 아니면 둘을 낳았을 때 서둘러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어야 했다 ..  (196, 200쪽/편해문)


 나는 생각한다. 혼인에 앞서 물을 한 가지라면 오직 ‘삶·사람·사랑’을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보살필 수 있느냐라고. 혼인에 앞서 물을 한 가지란, 내가 살아가며 나 스스로 묻고 이야기할 한 가지라고.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사랑할 짝꿍을 만난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스스로 마음에 아로새길 책을 만난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아이하고 마주한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린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흙을 만지고 밥을 먹는다.

 내 하루 오늘 삶을 어떻게 얼마나 아끼느냐에 따라, 내 사랑과 혼인과 일놀이 모두 새삼스레 거듭난다고 느낀다. (4344.10.31.달.ㅎㄲㅅㄱ)


―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 (강수돌과 열여섯 사람 씀,샨티 펴냄,2011.10.25./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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