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의 정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3
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과 살가이 함께 살아가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 데이비드 스몰·사라 스튜어트, 《리디아의 정원》(시공주니어,1998)


 우리 식구는 집을 옮겨 다닙니다. 네 식구 살림을 꾸리기 앞서 혼자 지내던 때에도 으레 집을 옮겨 다녔습니다. 혼자 지내던 때에는 집에 온통 책을 쟁이느라 해마다 부쩍 늘어난 책을 더 넉넉히 건사할 집을 찾아 옮겨 다녔어요. 살림살이는 얼마 안 되고 책만 잔뜩 꾸려 조금씩 넓은 살림터를 찾았습니다.

 네 식구 살림을 꾸리는 오늘날에도 책짐은 참 많습니다. 그래도 여느 살림살이가 제법 늘었다 할 만할 텐데, 옆지기가 뜨개질을 할 때에 쓰는 실과 바늘을 뺀다면 옷가지랑 그릇과 냄비가 살림살이 모두라 할 만합니다.

 벌이가 많지 않으니 살림 늘어날 일이 없는지 모릅니다. 벌이가 있어도 딱히 뭘 장만하거나 갖추는 데에 안 쓰니 살림은 이냥저냥 적은지 모릅니다. 벌이가 있으면 옆지기는 실이랑 바늘을 사고, 나는 책을 사니까, 우리 집에는 책이랑 실만 있다 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거의 새로 사지 않습니다. 이웃한테 말씀을 여쭈어 이웃 아이들이 많이 자라며 더 못 입는 옷을 얻습니다. 이웃이 먼저 아이들 옷을 그러모아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우리 집에 마실을 오면서 아이들 새옷을 주시는 분이 있기도 합니다.


.. 저녁을 다 먹고 나서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우리 집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제가 외삼촌네서 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다면서요? 할머니에게서 들으셨어요? 아빠가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이제는 아무도 엄마에게 옷을 지어 달라고 하지 않는다는걸요 ..  (6쪽)


 집에 빨래기계를 들이지 않기에 날마다 손빨래를 합니다. 기계가 한꺼번에 빨래를 해내고 물기까지 퍽 많이 짜내면 집일을 한결 덜 만하다 하겠지만, 빨래기계를 쓴대서 집일이 줄어든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외려 집일이 더 늘어나지 싶어요. 이런저런 기계나 장비가 쓸모없다고 여기지 않아요. 쓸 기계는 쓰고 쓸 장비는 쓰지만, 나는 내 손을 쓰면서 집일을 하고 싶어요. 손을 쓰면서 집일을 하는 모습 그대로 우리 아이들하고 지낼 때에 즐거워요.

 그제 저녁 아이들을 씻길 때에 첫째 아이한테 대야에 물을 받아 낯과 손을 씻으라 한 다음에 아이 옷가지를 빨래하자니 네 살 아이는 “벼리(아이 이름)는 빨래 못 해요. 아버지가 빨래 해요.” 하고 말합니다. 더 어릴 적에는 저도 빨래를 한다며 아버지 옆에 궁둥이 디밀고 앉아 조그마한 손으로 쪼물딱쪼물딱 주무르더니, 이제는 못 한다고 말합니다. 마당에서 비질을 하면 저도 비질을 하겠다며 아버지 빗자루를 빼앗으려 해서 아이 몫으로 건넬 빗자루를 따로 둡니다. 걸레질을 하면 아이가 저도 하겠다며 아버지 걸레를 빼앗기에 걸레를 여럿 마련합니다. 밥상을 행주로 닦을 때에도 아이는 제가 하겠다며 나섭니다. 수저 놓기는 아예 아이한테 맡깁니다. 아이는 집에서 저희 어머니랑 아버지랑 동생이랑 함께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을 맡아요. 아버지 사진기를 안 떨어뜨리면서 들고 다닐 줄 압니다. 물병을 들고 나를 줄 압니다. 뜨거운 국을 후후 식혀 어머니나 아버지보고 마시라며 내밀 줄 압니다. 혼자서 옷을 갈아입을 줄 압니다.

 씩씩하며 다부진 아이는 씩씩하고 다부지게 하루하루 맞이합니다. 예쁘며 맑은 아이는 예쁘며 맑게 새날을 누립니다.

 어버이는 이 씩씩하며 다부진 아이랑 어울리면서 씩씩하며 다부지게 살아가자고 새로 다짐합니다. 어버이는 이 예쁘며 맑은 아이랑 복닥이면서 예쁘며 맑게 지내자고 거듭 헤아립니다.


.. 이 동네에는 집집마다 창 밖에 화분이 있어요! 마치 화분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제 봄이 오기만 기다릴 거예요 ..  (12쪽)


 그림책 《리디아의 정원》(시공주니어,1998)을 읽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책방에서 장만하면서 읽고, 아이가 집에서 찬찬히 넘기면서 읽습니다. 《리디아의 정원》은 1930년대 미국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가난한 나머지 리디아라는 아이는 저희 어버이랑 함께 살아가지 못합니다. 시골에서 할머니랑 살아가며 흙을 만집니다. 노상 흙을 보듬으면서 일굽니다.

 시골 아닌 도시에서 일자리가 없어 고달픈 아버지는 어떻게든 도시에서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도시 일자리를 찾습니다. 이동안 리디아라는 아이는 도시에 있는 외삼촌 댁에서 지내기로 합니다. 리디아네 어머니는 옷을 기워 파는 일을 하는 듯한데, 사회와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까 리디아네 어머니한테서 옷을 사서 입는 사람이 싹 끊겼는가 봐요. 이리하여, 리디아는 퍽 어린 나이일 테지만, 어머니하고도 아버지하고도 떨어진 채 살아가야 합니다. 돈이 없는 탓에 아버지를 볼 수 없고, 가난한 나머지 어머니 품에 안길 수 없어요.

 리디아네 어버이는 왜 리디아를 도시로 불러들이려고 할까요. 리디아네 어버이는 왜 리디아와 함께 리디아네 할머니랑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아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돈을 안 벌어도 되지 않나요. 먹고살 길이란 먹을거리를 손수 일구어 얻어도 열리지 않나요. 꼭 돈을 장만해서 먹을거리를 가게에서 사다 먹어야 하나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 거둔 먹을거리를 사람들한테 팔 때에도 돈을 얻지 않나요.


.. 집에서 오는 편지를 받을 때마다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저도 더 자주 편지를 쓰도록 할게요. 보내 주신 꽃씨들을 심느라 바빠서요. 깨진 컵이나 찌그러진 케이크 팬에다 꽃씨를 심고 있습니다. 할머니, 흙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으세요? 아래 공터에서 질 좋은 흙을 좀 가져왔거든요 ..  (17쪽)


 리디아는 시골에서 할머니랑 살아가는 때에도 흙을 만지고 푸나무랑 사귑니다. 리디아는 도시로 찾아가서 외삼촌이랑 지내는 때에도 빵반죽뿐 아니라 흙을 함께 만지고 꽃하고 사귑니다. 아버지는 리디아한테 흙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리디아한테 흙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리디아는 할머니랑 어울리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흙을 바라보고 흙을 밟으며 흙을 보듬습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목숨이요, 살아숨쉬는 나날에는 흙에서 기운을 얻어 씩씩한 넋을 키우는 줄 느낍니다.

 그러니까, 살가이 함께 살아가면 됩니다.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같이 지내면 됩니다. 사랑스레 손잡으면서 나란히 아끼고 좋아하면 돼요.

 작은 집에서 살아가면 됩니다. 서울 강남에서 한 평에 일 억이 넘는 아파트를 장만해야 내 삶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전라남도 고흥에서 마흔 평 마당과 마흔 평 텃밭 딸린 스무 평 작은 집을 천만 원에 장만해서 조용히 살아가면 됩니다. 큰도시에서 전세돈 삼천만 원이나 오천만 원짜리 방이나 집을 얻으려고 용을 쓸 수 있지만, 시골에서 집과 논밭을 자그맣게 장만해서 우리 집 먹고살 길을 흐뭇하게 열면 돼요.

 무상급식에 목매달지 않아도 돼요. 집에서 손수 도시락을 마련하면 되지요. 반값등록금을 꼭 이루어야 하지 않아요. 애써 대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내 삶길을 예쁘게 열 수 있어요. 대통령이나 서울시장이 청년일자리를 몇 만 개씩 만들 까닭은 없어요. 시골에서 할머니랑 할아버지만 흙을 일구도록 등돌리지 않으면 되거든요. 펜대를 잡거나 셈틀을 또닥거려야 일자리이지 않아요. 버스를 몰거나 지하철을 몰거나 공장 기계를 돌려야 일꾼이 되지 않아요.

 리디아는 빵반죽을 주무르지 않아도 예쁜 아이입니다. 리디아는 저희 아버지나 어머니가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지 않아도 아름다운 아이입니다. 리디아는 ‘원예사’나 ‘정원사’가 아닙니다. 리디아는 혼자서 어여쁘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슬기롭게 깨닫는 아이입니다. (4344.10.28.쇠.ㅎㄲㅅㄱ)


― 리디아의 정원 (데이비드 스몰 그림,사라 스튜어트 글,이복희 옮김,시공주니어 펴냄,1998.3.3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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