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공간 아나스타시아 3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한병석 옮김 / 한글샘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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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스레 살아갈 터는 어떻게 얻는가
 [사랑하는 배움책 1] 블라지미르 메그레, 《사랑의 공간》(한글샘,2007)



- 책이름 : 아나스타시아 3, 사랑의 공간
- 글 : 블라지미르 메그레
- 옮긴이 : 한병석
- 펴낸곳 : 한글샘 (2007.10.20.)
- 책값 : 1만 원


 (1) 우리 식구 살아갈 보금자리


 인천과 충주에서 살 때에 늘 다른 사람 집에 얹혀 지냈습니다. 내 집이 아닌 다른 사람 집에서 살더라도 내 하루는 달라지지 않는달 수 있으나, 내 마음껏 내가 바라는 대로 꾸미거나 보살피지 못해요. 우리 식구한테 맞추어 고치거나 손질할 수 없습니다.

 내 집을 마련해서 살아야겠다고 느끼며 고흥으로 옮깁니다. 아직 짐을 옮기지 못했고 계약만 합니다. 더 일찍 계약하고 더 일찌감치 손질해서 짐을 옮기려 했으나, 우리가 들어가서 살아가려 하는 마을 집임자는 당신 고향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깊은 시골로 들어가지만, 집임자는 깊은 시골을 벗어나 도시에서 살림을 꾸립니다.

 우리는 97평에 1000만 원 하는 집과 땅을 장만해서 오래오래 뿌리내려 우리 아이들도 앞으로 저희 아이들을 낳아 살아갈 수 있는 터를 닦을 생각입니다. 이웃한 74평에 500만 원 하는 땅을 얻어서 두고두고 책을 건사하는 작은 도서관을 일구어 우리 아이들이 언제나 책누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가난한 살림에 목돈 1500만 원이란 몹시 빠듯합니다. 이만 한 돈은 누군가한테서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헤아리면, 여느 도시사람한테 1500만 원 돈은 참 작아요. 전세를 놓아 집 빌리는 돈만큼도 안 된다 할 자그마한 돈입니다. 웬만한 자가용 한 대 값조차 안 될 뿐더러, 요즈음 대학교 등록금 한 해치하고 반밖에 안 되는 돈입니다.

 그러니까, 시골에서 집과 땅을 장만해서 살아가려 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적은 돈을 들이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기쁜 보금자리를 일굴 수 있다는 뜻입니다.


.. 강물아! 너는 대도시들이 중요하다 생각하니? … 강물아! 너는 그 도시의 크기를, 그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니? … 네 물을 따라 과거에는 소리 없이 조각배가 다녔지만 지금은 디젤 증기선이 다닌다 … “사람들 모두가 한 가지 같은 목적을 갖도록 시스템 전체가 요구했지, 그런 식으로 사람들 모두에게 폭력을 가한 거야. 꺾으려 한 거지.”..  (14∼15, 159쪽)


 시골 어른들은 우리가 어떻게 먹고살려 하는지 걱정합니다. 올 2011년 10월 13일, 미국 의회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통과했다지요. 한국 의회에서도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통과하도록 한다지요. 마을 이장님 댁에 머물며 집 계약을 하는 동안, 이장님 댁 텔레비전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 이야기가 흐릅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다 맺고 국회 결의까지 끝내면, 자동차와 전자제품 수출은 관세가 없어져 아주 좋아진다지만, 한국땅 농어업은 깡그리 무너진다고 합니다. 시골 흙일꾼과 고기잡이 말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새소식을 들려주는 사람들 말입니다.

 곧,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정치꾼 모두 ‘한국 시골마을 깡그리 죽이는 줄 뻔히 알’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는다며 부산을 떠는 셈입니다. 왜냐하면, 돈벌이가 되는 일이란 자동차 팔아먹기라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밥을 안 먹는 도시사람은 없습니다. 시골사람은 풀과 쌀을 먹을 뿐 고기 먹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흙일꾼이 일구는 곡식을 사다 먹는 사람도 도시사람이요, 흙일꾼이 키운 돼지와 소와 닭을 사다 먹는 사람도 도시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들 도시사람은 ‘좋은 곡식’과 ‘좋은 고기’를 마땅한 값을 치러서 사다 먹으려 하지 않아요. ‘더 값싼 곡식’과 ‘더 값싼 고기’를 돈 조금 치러서 사다 먹으려 할 뿐입니다. 한쪽 입으로는 유기농과 친환경을 외치지만, 정작 유기농과 친환경으로 일군 곡식과 고기를 제값을 치러서 사다 먹으려 하지 않아요.


.. “책은 소리를 내지 못해요. 책은 악보 역할을 하는 거예요. 독자는 마음속으로 읽는 소리를 자기도 모르게 발음하게 돼요 … 사람이 만든 기계는 마음속에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 “당신에게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의 사고가 충분히 깨끗하지 못해서 그래요.” … “과학을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과학의 업적은 처음엔 한정된 소수가 점유하죠. 자기들만의 사사로운 이해를 위해 사용하고요 … 사람은 누구나 자기 주변에 사랑의 공간을 지어서 자기 자식에게 선사해야 합니다. 자식에게 줄 사랑의 공간을 마련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은 죄악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점을 깨닫고 행한다면 온 지구가 사랑이 환히 빛나는 우주의 한 점이 될 것입니다.” ..  (45, 46, 66, 72쪽)


 여든이 가까운 마을 어른 한 분은 한미자유무역협정 새소식을 들으면서 이제 소는 그만 키워야겠다고 말씀합니다. 다른 어른들은 맞장구를 치면서 형님 이제 소 그만 하셔요 하고 말씀합니다. 마을 어른은 소 사료 한 푸대에 만육천 원이라 하면서, 소를 안 하고 싶어도 소를 팔려 하면 도무지 값을 안 치니 팔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틀림없이 팔려고 키우는 소라 할 텐데, 마을 어른은 소가 좀 예뻐야지 소가 예쁘니까 키우지 하는 말을 덧붙입니다. 시골살이를 하며 목돈을 얻는 소라 할 테지만, 딸아들이 무럭무럭 자라던 지난날이든 딸아들이 도시로 떠난 오늘날이든 마을 어른한테 소는 일소이자 한식구입니다.

 나는 우리 네 식구 살아갈 시골마을로 전라남도 고흥을 꼽았습니다. 다른 ‘좋다 하는’ 마을이 많다 하지만, 굳이 전라남도 고흥을 찾았습니다. 둘레에 아는 사람이 없고, 내 어버이나 다른 살붙이 가운데 이곳에서 살아가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아무런 줄도 끈도 없는 터입니다. 오직 한 가지 있다면, 나와 옆지기가 이곳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예쁘게 살아갈 만하다고 느끼고, 우리 딸아들이 무럭무럭 크기에 좋은 터라고 느끼며, 딸아들이 저희 어버이랑 내내 함께 살든 도시로 나가서 살든, 딸아들이 나이들고 힘들 무렵 언제라도 고이 안겨 예쁘게 삶을 돌볼 만한 터라고 느껴요. 두 번째 고향이나 세 번째 고향 같은 데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 집안 사람들 누구나 일하며 쉴 좋은 보금자리가 될 터라고 느껴요.

 고속도로 안 지나가고 기차길 없으며, 이 나라에 흔하디흔한 골프장이 한 군데도 없어요. 공장은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던데, 시멘트 만드는 공장이 아주 외진 데에 한 군데 보였어요. 읍내가 있고 면내가 있으나, 이곳 분들은 너나없이 흙과 바다와 하나되어 살아가요. 자동차가 어지러이 다니는 데가 없어요. 제주나 해남이나 남원이나 보성처럼 관광지로 이름나지 않아요. 여수나 목포나 거제나 광양처럼 커다래지며 시끌벅적하지 않아요. 조용하게 폭 싸인 작은 시골이고, 오붓하게 자연을 어깨동무할 수 있는 예쁜 시골이에요.


.. “더러워진 곳은 누가 청소하고? 다른 사람이? … 자기 주변을 더럽히는 자가 깨끗한 곳에 오면 쓰레기도 같이 가져올 거야. 더럽힌 곳을 먼저 치워. 그러면 자기 죄도 씻을 수 있어 … 러시아에서 탄 냄새 나는 굴뚝의 공장들이 일 없이 멈춰 서 있는 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우연히 그런 게 아니야 … 당신이 살던 곳, 지금 사는 곳도 옛날엔 창조주가 보살피던 숲이었지. 그 복된 낙원 오아시스를 오늘 어떻게 만들어 버렸지?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큰 의미가 없어. 오히려 황폐한 버려진 땅에 자기 손으로 채소를 가꾼 다츠니키들. 이들을 알아줘. 밭의 풀 한 포기 한 포기가 다 그들을 사랑하고, 우주의 따스함을 선사하려 애쓰지 … 당신 곁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비추세요.” ..  (225∼226쪽)


 지난 석 달 동안 고흥군 군내버스를 타고, 또 고흥군 군립도서관 계장님 자동차를 얻어 타며 이곳저곳 돌아다녔어요. 요 며칠은 제 자전거를 몰며 이곳저곳 둘러보았어요. 읍내이든 면내이든 더없이 차분하면서 갖출 것을 알뜰히 갖추어요. 놀러 오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을 테지만, 우리 식구처럼 살러 오는 사람이 쏠쏠히 있어요. 흙과 바다를 껴안고 살아가는 고흥땅 어버이 품을 떠나 큰도시 학교와 일터를 찾아 떠나는 젊은이가 훨씬 많기는 하지만, 큰도시 학교와 일터를 찾는다면서 떠나고 나면 시끄러운 소리와 매캐한 바람을 마시며 지내는 이들은 머잖아 깨달을 수 있겠지요. 어쩌면 못 깨닫고 말아 고향마을로 못 돌아올는지 모르는데,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고, 풀벌레가 울면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가을날 나락이 익는 소리와 길가 가득 나락을 말리는 내음을 느끼는 터에서 숲과 바다와 들을 헤아리며 몸과 마음이 맑아져요. 몸과 마음이 맑아질 때에 내 삶이 살아나요. 싱싱하게 살아숨쉴 수 있어요. 싱그러이 꿈꿀 수 있어요.

 올가을 어김없이 감이 주렁주렁 맺혀요. 올가을 지난해와 똑같이 가을걷이를 해요. 마을 할매들은 품앗이로 마늘을 심어요. 밭자락에 한 가지 푸성귀만 심을밖에 없지만, 내 식구 먹을 텃밭에는 온갖 푸성귀 골고루 자라요. 아이들이 도시에 나가 살도록 학교에 보내느라 애써야 했기 때문에 논이든 밭이든 한 가지 곡식과 푸성귀만 심어 돈을 벌어야 하겠지요. 이렇게 흙을 일구며 아이들을 ‘도시사람 되도록’ 가르쳤겠지요.

 우리 식구는 집을 마련하고 도서관 새로 열 건물을 짓고 나면 다른 논밭을 장만할 돈이 없어요. 우리 식구는 이곳 시골마을에 들어오더라도 흙을 일구는 살림은 꾸리지 못해요. 그래도 집 둘레로 집보다 넓은 텃밭이 있고, 도서관 둘레로 도서관보다 넓은 흙땅이 있어요. 아이들하고 이 자리에 푸성귀를 심고 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그냥 풀밭으로 두고는 아이들 흙놀이터로 삼ㅇ을 수 있어요. 고마운 마을이고 고마운 집이며 고마운 흙이에요. 고마운 선물인 흙이며 바람이며 햇볕이며 이웃이며 천천히 느끼면서 받아들이는 나날을 한 해 두 해 꾸리다 보면, 언젠가 짚 앞 논배미 하나 얻어서 나락을 꽂아 볼 수 있을 테고, 집 둘레 다른 빈집을 얻어 밭으로 돌본다든지, 울타리 빙 둘러 나무를 심을 수 있겠지요. 좋은 터에 보금자리를 닦을 수 있으면 좋은 꿈이 잇달아 피어납니다.


 (2) 사랑스레 살아갈 터


 블라지미르 메그레 님이 아나스타시아한테서 이야기를 듣고 찬찬히 생각을 받아적은 책 셋째 권 《사랑의 공간》(한글샘,2007)을 읽습니다. 진작에 다 읽을 수 있었으나, 우리 네 식구 새 보금자리를 어떻게 어디에서 꾸려야 좋을까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아주 천천히 삭이며 읽습니다. 몇 쪽을 읽은 다음 오래도록 생각에 잠깁니다. 몇 쪽을 더 읽고 나서 차분하게 내 삶을 돌아봅니다. 내가 사랑할 삶을 돌아봅니다. 한식구로서 모두 아끼며 좋아할 삶을 헤아립니다.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사랑할 만한가를 가눕니다. 옆지기가 아끼면서 좋아할 삶을 생각합니다.

 《사랑의 공간》은 책이름 그대로 ‘사랑스레 살아갈 터’를 말하는 이야기책이면서, 사람들마다 다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 다르게 살아가는 동안 다 다르게 일굴 아름다운 사랑이 깃들 보금자리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달아 찾을 수 있다고 들려주는 길동무책입니다.


.. 아나스타시아는 말했다. 내가 아들과 어울리려면 나 스스로 일정 수준의 깨끗한 생각을 가져야 하고 속내가 정화돼야 한다고 했다 … “모든 사람들이 받는 교육의 틀로 그 아이를 몰아넣으면서 어찌 그 애가 불운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부모들은 모두 자기 아이들이 커서 행복하길 바라지만 아이들은 커서 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져. 그리 행복하지 않아 … 블라지미르, 주변을 더 주의깊게 살펴봐. 풀, 나무, 꽃들이 자라지. 여기에 물 주는 시간을 미리 날짜 별로 시간 별로 정할 수 있을까?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데, 누군가가 물 주는 날짜와 시간을 지혜롭게 미리 처방했다 해서, 당신은 꽃에 물을 주지는 않겠지.” … “아이들을 방해하지 말고, 하느님이 바라시는 모습으로 그들을 생각해야 해 … 부모의 의무는 그 창조의 빛을 온갖 꾸며낸 독선의 지혜로 가리지 않는 것이야 … 문이 닫힌 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맹이 없는 논쟁은 무한히 계속할 수 있어. 그러나 문을 열기만 하면 모두가 다 훤히 알게 되고 논쟁의 여지가 없어져. 모두 각자의 진리를 볼 수 있으니까.” ..  (18, 152, 153쪽)


 나부터 스스로 예쁜 어버이로 살아갈 때에 아이들 또한 예쁜 아이들로 저희 어버이를 맞아들입니다. 나부터 스스로 착한 어버이로 지낼 때에 아이들 또한 착한 아이들로 저희 어버지를 바라보아요.

 바란다면 꿈을 꾸고, 꿈을 꾼다면 그대로 살아갈 노릇입니다. 바라는 나날을 꿈꾸며 천천히 이루면 됩니다. 싱그럽고 푸른 먹을거리를 바라기에 싱그럽고 푸른 먹을거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고 꿈을 꿉니다. 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신나게 걷습니다.

 좋은 책 하나 읽고 싶다면 좋은 책 하나란 어떤 줄거리를 어떻게 담은 책인가를 곰곰이 꿈을 꿉니다. 곰곰이 꿈을 꾸고 나서 책방마실을 할 때에 내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을 사로잡는 책한테 다가갑니다. 내 지갑을 기쁘게 열어 내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이끄는 사랑스러운 책을 장만합니다.

 좋은 집을 바라는 우리들은 좋은 마을에서 좋은 마을사람으로 뿌리내릴 길을 헤아립니다. 좋은 마을에서 우리부터 좋은 사람으로 지내며 좋은 보금자리가 되도록 일구자고 꿈을 꿉니다. 바라면서 꿈이 생기고, 꿈이 생기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살아낼 기운을 얻습니다.


.. “고마워. 착하다. 넓은 마음, 사랑 감사해. 사람들은 알게 될 거야. 반드시 가슴으로 느낄 거야. 지구에서 푸른 빛, 사랑의 빛을 절대 거두지 마.” … “우선은 노랫말 없이 해 보거라, 아네츠카. 새소리를 듣고, 졸졸거리는 물소리, 나뭇잎의 살랑임, 그리고 바람이 세차게 나뭇가지에서 우는 소리를 목소리로 따라해 보거라. 풀에서도 여러 가지 소리가 나지. 원하기만 하면 사방에서 여러 가지 깨끗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 ..  (85, 100쪽)


 아이들을 학교에 넣어야 한다면 아이들한테 무엇을 바라는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자라나며 아이들 스스로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가부터 찬찬히 짚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회사원 되기를 바라나요. 아이들이 예술쟁이가 되기를 바라나요. 아이들이 의사나 판사가 되기를 바라나요. 아이들이 저희 삶을 사랑하며 저희 어버이를 아끼고 저희 이웃을 보살필 줄 아는 예쁜 젊은이로 살아가기를 바라나요.

 나는 우리 아이가 흙과 햇볕과 물과 바람과 푸나무를 사랑하면서 아이 삶을 마음껏 누리기를 바랍니다. 아이 먹을거리를 아이 손수 기르고, 아이가 지내는 나날을 아이 스스로 글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마음껏 담아서 펼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사랑스러운 마을에서 사랑스러운 몸가짐으로 사랑스러운 삶을 일구는 나날을 고스란히 아이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꽃피우는 한편, 아이 춤과 노래와 이야기로 여미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좋은 삶을 누리면서 좋은 사랑을 길어올리면 돼요. 좋은 꿈을 북돋우면서 좋은 빛줄기를 나누면 돼요. 좋은 밥을 먹으면서 좋은 삶을 보듬으면 돼요. 어버이 된 나는 아이들한테 돈을 물려줄 수 없어요. 아이들이 씩씩하게 디디면서 흐뭇하게 어우러질 보금자리 하나 마련해서 지킬 수 있어요.


.. “새싹은 잘 보이지 않아. 모두한테 바로 보이는 게 아니야. 마음에 튼 싹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 “영혼이 건강하고 풍부한 사람은 어떤 부와도 비교할 수 없어요.” … “때가 되면 인류는 깨달을 거야. 대학자들이 할머니를 찾아 채소밭으로 올 거야. 배고픔에 지쳐 토마토를 좀 달라고 애원하게 될 거야. 학자와 그가 만든 것들은 오늘 할머니에게 필요없어. 노인은 학자들이 만든 것들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아. 노인은 학자 없이도 잘 살 수 있지만 학자는 노인 없이는 못 살아. 그는 허상의 껍데기 세계 속에, 곽 막힌 세상에 사는 거야. 할머니는 자연의 흙에, 삼라만상의 모두와 함께 하는 거야. 우주에게 할머니는 필요하지만, 그는 필요없어.” ..  (178, 188, 213쪽)


 아이는 아직 참 작고, 어버이인 나는 아직 몸뚱이가 크니까, 나는 아이를 안거나 업으며 시골길을 거닐 수 있습니다. 이제 첫째 아이는 네 살을 지나 다섯 살이 될 테니, 이 아이를 안거나 업으며 길을 거닐면 등허리와 팔이 꽤 저립니다. 아이가 더 크면 더 힘들거나 더 저릴 테지요.

 힘들 때에는 힘들다고 느끼면서 좋습니다. 가뿐할 때에는 가뿐하다고 느끼며 좋아요. 내 몸뚱이에서 솟는 따스함을 아이한테 주고, 아이 몸뚱이에서 피어나는 따뜻함을 어버이가 받습니다. 삼백 살이 넘은 굵직한 느티나무를 살며시 껴안습니다. 아버지가 느티나무를 가만히 껴안으며 숨소리를 느끼려 하니, 아이도 느티나무를 가만히 껴안으며 귀를 댑니다.

 어버이가 마시는 물을 아이가 마십니다. 어버이가 마시는 바람을 아이가 마십니다. 어버이가 디딘 땅에서 아이가 살아갑니다. 어버이가 손에 무엇을 쥐느냐에 따라 아이가 손에 쥘 무언가는 늘 바뀝니다.


 (3) 아나스타시아 집안이 아이와 살아가는 길


 《사랑의 공간》에서는 아나스타시아 집안이 예부터 아이를 어떻게 낳고, 아이와 어떻게 살며, 아이 스스로 어떤 길을 걷도록 돕는가 하는 이야기를 살포시 나눕니다.

 아이를 낳으려 하는 어버이는 어떻게 살아가고,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어떤 일을 하며,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는 어디에서 보금자리를 사랑스레 일구는가 하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눕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트는 새벽동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아나스타시아는 예부터 당신 집안이 이렇게 흘러왔다고 느끼면서 깨달은 이야기가 있으면,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은 우리 집안이 예부터 어떻게 흘러왔다고 느끼면서 깨달을까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내 어버이는, 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는, 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는 먼 옛날 어디에서 어떤 일놀이를 누리면서 당신 아이들하고 어우러졌을까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하며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들 먹을거리를 마련해서 함께 먹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들 잠자리에서 생각에 잠기고, 아이들과 시골길을 거닐거나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다니며 생각에 잠깁니다.


..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누구도 왜 다름아닌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설명하지 못해요.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중요한 사람은 단 한 명, 자기가 선택한 사람입니다 … 블라지미르는 과거의 자신을 멋지게 치장하려 하지 않았어요.” ..  (36, 43쪽)


 내 어버이들은 무엇을 할 때에 즐거웠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어떤 일을 즐겼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먼 뒷날에 새로 태어날 아이들을 얼마나 헤아렸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고속도로를 생각해 보았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공장을 꿈꾸어 보았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운동경기나 정치제도나 제도권교육이나 수출이나 토목공사나 관광단지 들을 헤아린 적이 있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돈을 얼마나 바랐을까요. 내 어버이들 손에는 굳은살이 어느 만큼 박혔을까요. 내 어버이들은 이웃을 어떻게 사귀었을까요. 내 어버이들 살던 집은 누가 어떻게 짓고 손질했을까요.


.. “부탁입니다. 여러분들! 직업을 하루 빨리 바꾸세요. 창조주의 위대한 조물인 지구를 해치는 모든 직업을. 부탁입니다. 여러분! 지구에 계속 해를 가하면 지구상의 누구도 행복할 수 없어요.” ..  (252쪽)


 사랑을 누릴 만한 일을 해야 사랑을 누립니다. 사랑이 꽃피울 만한 일을 해야 사랑이 꽃피웁니다. 사랑이 자랄 만한 놀이를 함께 해야 사랑이 자랍니다. 사랑이 무르익을 만한 보금자리를 돌보아야 사랑이 무르익습니다.

 돈을 바라며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는다면 돈이야 벌겠지요. 경제성장이야 이루겠지요. 그리고, 돈을 벌고 경제성장을 이루는 만큼 우리 삶 한구석이나 우리 삶 구석구석이 와르르 무너지겠지요. 고속도로를 새로 깔면 자동차야 더 빨리 싱싱 달릴 테지만, 그만큼 자동차 배기가스와 고무바퀴 먼지가 날릴 뿐 아니라, 싱그러운 숲자락이 사라져요.

 이야기책 《사랑의 공간》은 아나스타시아 집안 사람들이 무엇을 사랑하면서 살아왔는가를 보여줍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버이 두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가를 온몸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4344.10.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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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2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특히 감기가 심해서
멍하니 된장님의 글을 읽다가 갑자기 울컥해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요즘 지쳤나봐여, 살아갈 터에 대한 글이 유난히 뭉클하게 다가오네요.

숲노래 2011-10-28 16:34   좋아요 0 | URL
좋은 터에서 살아가면서
어른과 아이가 모두
몸이랑 마음을
사랑스레 쉴 수 있으면 넉넉하리라 믿어요.

차근차근 마녀고양이 님네
보금자리를 돌보아 보셔요~

차츰차츰 기운 차리시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