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황헌만의 사진기행
황헌만 지음 / 역사만들기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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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쟁이가 없어도 삶은 늘 아로새겨집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61] 황헌만, 《임진강, 황헌만의 사진기행》(역사만들기,2011)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는 한강·낙동강·금강·섬진강을 다스리겠다고 하면서 아주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들입니다. 이른바 ‘4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여 토목공사를 벌입니다.

 사람은 사람다울 때에 아름답고 자연은 자연다울 때에 빛납니다. 멧자락은 멧자락대로 살리고 물줄기는 물줄기대로 살려야 어여뻐요. 삽차·밀차·시멘트·쇠붙이 들을 쓰면서 물줄기를 곧게 펴는 일은 물줄기를 살리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들여 돈을 쓰는 일이 될 뿐이에요. 아마 관광지 만드는 일은 될 수 있을 테지만, 사랑스럽거나 따사로운 물줄기를 누리는 일은 되지 못해요.

 하나하나 돌이키면, 물줄기가 물줄기다울 수 없는 이 나라는 아이들이 아이답게 태어나서 자라지 못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병원에서 사랑 아닌 의료처방을 받으며 태어납니다. 따사롭고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태어나기 너무 힘듭니다. 아니, 아이들을 따사롭고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낳아 어루만져야 하는 줄을 모두 잊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한테 무턱대고 예방주사와 항생제를 놓을 뿐 아니라, 갓난쟁이한테 쓰는 종이기저귀라든지 가루젖은 아기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데, 널리 만들고 널리 팔며 널리 써서 널리 쓰레기를 낳습니다. 종이기저귀와 가루젖을 만들기까지 공장을 얼마나 돌리며 쓰레기가 태어나고, 종이기저귀를 쓰고 가루젖을 먹인 다음 쓰레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돌아보는 어버이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자라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지만, 막상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아이들 삶에 어떤 빛줄기가 되는 슬기를 보여주거나 가르치는가를 헤아리는 어버이는 드물어요. 이에 앞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부터 아이들하고 무엇을 하면서 나누어야 하는가를 찬찬히 짚지 않습니다. ‘유아발달’이나 ‘지능발달’이나 ‘정서순화’ 따위가 아닌 ‘어린이 삶’과 ‘사람 삶’을 돌아보면서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지 않아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하나같이 바쁩니다. 모두들 너무 바빠 아이들을 집에서 어여삐 사랑하거나 아끼지 않습니다. 아이들하고 살아가며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익히며 자라야 아름다운가를 깨달으려 하지 않습니다. 돈은 벌지만 삶은 나누지 못하고, 돈은 쓰지만 사랑을 꽃피우지 못합니다.

 삶이 없는 자리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먼 뒷날 대학교에 가서 사진학과를 다니거나 나라밖으로 사진배움길을 떠난다 해서 훌륭한 사진쟁이 하나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사랑을 꽃피우지 못한 아이들이 사진기를 손에 쥔들 붓을 손에 쥔들 자판을 손에 쥔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을 빚을 수 없습니다.

 토목공사가 없어도 금강은 금강입니다. 토목공사가 없을 때에 금강은 금강입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없어도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따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을 때에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뛰놀 밑터를 얻습니다.

 사진쟁이가 없어도 사진은 사진입니다. 사진은 사진기를 손에 쥔 사진쟁이가 찍어야 이루어진다 할 테지만, 사진·사진기·사진쟁이 하나 없어도 삶은 삶이요 사랑은 사랑이에요. 그림쟁이 있어 그림을 거룩하게 빚어야 어떤 문화나 예술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글쟁이 있어 글을 놀랍게 일구어야 어떤 역사나 사회가 거듭나지 않아요.

 사진은 없어도 됩니다. 삶이 있으면 되고, 사랑이 있으면 됩니다. 삶이 있을 때에는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딱히 보람이나 뜻이 없습니다. 삶이 있으면서 사진과 그림과 글이 있어야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보람이나 뜻이 있어요. 다시금, 사진은 없어도 그만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되고, 삶이 있으면 넉넉합니다. 사랑이 따숩게 숨쉴 때에는 춤이든 노래이든 영화이든 따로 값이나 빛이 없어요. 사랑이 펄떡펄떡 숨쉬면서 춤과 노래와 영화가 있어야 춤과 노래와 영화가 값이며 빛이 있어요.

 황헌만 님이 빚은 사진책 《임진강, 황헌만의 사진기행》(역사만들기,2011)을 넘기면서 생각합니다. 이만 한 사진책 하나 태어나서 임진강 물줄기를 적바림할 만한 뜻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 애써 이만 한 사진책까지 하나 빚어야 할까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황헌만 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1년. 나는 허공을 나는 새와 대화를 하고, 허공을 가득 메운 역사와 호흡했으며, 임진강만이 알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았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황헌만 님은 꼭 한 해 네 철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새를 담고 하늘을 담습니다. 임진강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그러나, 사진책 《임진강》에 ‘이야기’가 담겼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사진책 《임진강》에 어떤 ‘삶이 깃든 이야기’와 무슨 ‘사랑이 어린 이야기’를 담았을는지요.

 황헌만 님은  “황헌만이 할 수 있는 임진강 사진. 황헌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임진강 이야기. 그것은 우리 땅의 숨소리라고. 임진강은 우리 땅의 숨소리다. 그 숨과 함께 살아 흐르는 이 땅의 역사를, 이 땅의 자연을 전하고 싶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황헌만 님은 황헌만 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제 깜냥껏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에요.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황헌만 님이 배병우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배병우 님이 강운구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으며, 강운구 님이 김지연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는데다가, 김지연 님이 임응식 님처럼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모두들 당신 삶결에 걸맞게 사진을 찍어요.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좋아하는 길을 걷는 나날을 삶자락 하나로 갈무리하면서 사진으로 빚어요.

 황헌만 님은 “사진가로서 갖춰야 할 사명감. 내 나이 60을 넘어서면서 갖는 나의 화두. 이 땅을 본 감동을 황헌만 식으로 기록하여 전하고 싶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임진강》은 ‘황헌만 님이 느낀 감동’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다만, 사진책 《임진강》은 이 대목에서 비롯해서 이 대목에서 제자리걸음을 걷다가 이 대목에서 그치고 맙니다.

 왜 임진강을 사진으로 적바림해야 하나요. 황헌만 님 삶에서 임진강은 무엇인가요. 역사이니 숨소리이니 우리 땅이니 사진 사명이니 하는 말마디에 앞서 ‘사진삶’과 ‘사진사랑’으로서 무슨 뜻과 꿈과 넋으로 임진강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두툼하고 무거우며 커다란 사진책 《임진강》을 읽는 내내 어느 대목 어느 글 어느 사진에서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나이 예순은 대수롭지 않고, 사진쟁이 한길 또한 대단하지 않아요. 이제 막 사진기를 손에 쥐고 임진강을 고작 며칠 둘러본 다음 사진을 찍는다 해서 임진강 ‘참모습 참사랑 참삶’을 못 본다 할 수 없어요. 임진강을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바라보며 임진강 어귀나 둘레에서 뿌리내려 살아야 비로소 임진강을 온몸으로 느낀다 할 수는 없어요.

 사진쟁이가 없어도 삶은 늘 아로새겨집니다. 글쟁이가 없어도 삶은 언제나 적바림됩니다. 그림쟁이가 없어도 삶은 노상 그려집니다.

 흙을 일구는 일꾼 손마디에 아로새겨지는 삶입니다. 그물을 붙잡는 일꾼 팔뚝에 적바림되는 삶입니다.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 밥상을 차리는 살림꾼 볼우물에 그려지는 삶입니다.

 삶을 헤아려 주셔요. 삶을 사랑해 주셔요. 내 삶을 따사로이 보듬어 주셔요. 내 사랑을 넉넉히 나누어 주셔요. 사진쟁이가 사진으로 빛을 모두어 빛을 뿌리는 처음과 끝은 ‘삶사랑’ 하나입니다. (4344.10.23.해.ㅎㄲㅅㄱ)


― 임진강, 황헌만의 사진기행 (황헌만 사진,역사만들기 펴냄,2011.3.14./6만 원)
 

 

(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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