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은 대로 글쓰기


 어릴 적 어머니 곁에서 손빨래를 배운 버릇 그대로 내가 아버지 되어 살아가는 오늘 손빨래를 합니다. 내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어린 나날 옆지기 어머님하고 함께 살아오면서 보고 배운 결에 따라 오늘 손빨래를 합니다.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난 아이들은 저희가 받은 사랑을 따사로운 손길과 마음길로 나눕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난 아이들은 이웃이나 동무가 나누는 사랑을 받을 때에도 어수룩하지만, 이 아이들 스스로 둘레 이웃이나 동무한테 따사로이 사랑을 나누는 길을 잘 모릅니다.

 내 어버이가 나한테 베푼 밥차림 입맛이 오래도록 혀에 맴돕니다. 나는 내 혀에 맴도는 입맛을 떠올리면서 내 아이한테 밥상을 차려서 베풉니다. 나는 내 몸에 좋다고 느끼는 밥을 즐거이 먹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추켜세운달지라도 나는 내 몸에 좋다고 느끼지 못하면 하나도 반갑지 않은 밥입니다.

 내 보금자리 샘가에서 뛰노는 푸른개구리를 바라보면서 ‘푸른개구리는 이렇게 생기고 이만 한 크기로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충청북도 멧자락에서 푸른개구리는 날이 추워 벌써 자취를 감추었기에 충청북도에서 살아가던 때에는 시월이 막바지로 달릴 때에 푸른개구리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라남도 아랫녘에서는 샘가에서 함께 물놀이를 하는 푸른개구리를 바라봅니다. 십일월에도 푸른개구리를 본다면 나는 이곳에서 십일월까지 푸른개구리 이야기를 할 테지요.

 인천 골목동네 마실을 하면서 곧잘 석류나무를 보았습니다. 탱자나무도 보고 호두나무도 보며 대추나무도 보았습니다. 나는 내가 본 대로 생각하고 본 대로 이야기하며 본 대로 느낍니다. 보지 못하고서는 생각하지 못하며, 겪지 못하고서는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한 번 읽고 나서 참 좋았다고 떠올리는 사람들 책을 다시금 찾아서 읽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책은 일찌감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쓴 책하고 견주어 손이 덜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겪지 못한 이야기는 눈으로 읽든 머리로 읽든 알아차릴 수 없으며, 느낄 수 없는데다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맑은 누리를 겪지 못하고서는 맑은 넋을 알 수 없어요. 밝은 보금자리를 겪지 못하고서는 밝은 보금자리를 헤아릴 수 없어요. 머루와 다래를 손수 따서 맛보아야 머루맛과 다래맛을 압니다. 쑥을 뜯고 달래를 캐서 먹어야 쑥맛과 달래맛을 알아요. 낫을 쥐어 나락을 베어야 낫질을 알겠지요. 짐을 짊어지고 멧등성이를 오르내려야 땀흘리는 고단함을 알 테지요.

 겪을 수 있어야 쓸 수 있어요. 겪는 삶이어야 글을 쓰는 삶이에요. 겪을 수 있어야 그림을 그리고, 겪을 수 있을 때에 사진을 찍으며, 겪는 자리에 선 뒤에야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가을을 느끼며 가을 이야기를 씁니다. 시골자락 할매와 할배랑 어울리며 시골자락 할매와 할배 이야기를 씁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을 맞으며 산들바람 이야기를 씁니다. 나뭇잎 나부끼는 푸른바람을 쐬면서 푸른바람과 가을잎 이야기를 써요. 밤새 풀벌레소리를 듣기에 풀벌레소리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맨발로 흙땅을 달리고 나서 맨발에 밟히는 흙내음과 흙살 이야기를 써요. (4344.10.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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