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가 빼꼼
마에다 마리 글.그림, 박은덕 옮김 / 보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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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으로 그림읽기·글읽기·사랑읽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8] 마에다 마리, 《모자가 빼꼼》(보림,2011)



 모자와 고양이가 나오는 그림책은 몇 살 아이한테 읽히는 그림책일까 생각해 봅니다. 이 그림책을 장만해 놓고는 네 살 아이와 갓난쟁이 한 살 아이 가운데 누구한테 읽히려 했는지 헤아려 봅니다.

 아마, 갓난쟁이는 책을 읽을 수 없을 테고, 네 살 첫째한테 읽히려 했다고 여길 만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아이들에 앞서 아버지인 나부터 보고 싶었다고 해야 옳습니다. 아이들은 책방마실을 할 수 없고, 아이들은 누리책방에서 책을 장만할 수 없으니까요. 오직, 어버이가 책을 하나하나 살피거나 따지거나 읽은 다음 아이들이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버이가 고르는 책을 아이들이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버이가 책을 살피는 눈썰미가 아름답다면, 아이들은 아름답게 받아들일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버이가 책을 돌아보는 눈길이 따스하다면, 아이들은 따스하게 맞아들일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버이가 책을 고르는 눈매가 사랑스럽다면, 아이들은 사랑스레 껴안을 만한 책을 읽을 수 있어요.

 그러나, 어버이에 앞서 ‘아름다운 책 하나’ 일구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아름답다고 느낄 글’을 쓰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아름답다고 느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아름답다고 느낄 글과 그림’을 한데 그러모아 ‘아름답다고 느낄 책’을 엮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맛나고 좋은 밥을 차리는 어버이에 앞서, ‘맛나고 좋은 밥이 될 곡식이나 푸성귀나 고기 같은 먹을거리’를 일구거나 짓거나 보듬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흙일꾼이 있어야 하고, 고기잡이가 있어야 합니다. 집짐승을 치고 집짐승을 잡아 고기로 다지는 일꾼이 있어야 해요. 이들 일꾼 손을 거쳐 가게에 놓인 먹을거리를 사고파는 가게 일꾼 또한 있어야 합니다. 흙일꾼과 고기잡이랑 가게를 잇는 징검돌 노릇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해요.

 시골자락에서 손수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호미나 낫이나 삽 같은 연장을 만드는 또다른 사람 손길을 얻어야 합니다. 내 둘레 내가 잘 모르는 고마운 사람들 따사로운 빛줄기를 하나둘 받아들입니다. 이 빛줄기를 아이들한테 살며시 물려주고 이어줍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이란 어버이가 돈이 있어 넉넉하게 장만해서 읽히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고마운 이웃이 아름다운 넋으로 아름다운 땀을 흘려 아름다운 사랑으로 빚은 따사로운 책이에요.

 마에다 마리 님이 빚은 그림책 《모자가 빼꼼》(보림,2011)은 아무래도 세 살 밑 아이들한테 읽히는 ‘두꺼운종이 그림책’입니다. 그러나, 어버이요 어른인 나부터 즐겁게 보는 그림책입니다. 꼭 퍽 어린 아이들한테만 읽혀야 할 책이 아니에요. 투박하면서 따사로운 손길로 그린 그림은 수수하면서 너그러운 마음길이 담긴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진보도 개혁도 보수도 수구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예 삶을 말합니다. 그저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그냥 그대로 사랑을 들려줍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때로는 방바닥에 나란히 드러누워 팔베개를 하면서 천천히 넘기면 좋을 《모자가 빼꼼》입니다. 기찻간에서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읽을 수 있습니다. 고양이를 옆에 앉히고 함께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됩니다. 내 삶을 사랑하는 넋으로 읽으면 됩니다. 옆지기나 짝꿍을 사랑하는 몸짓으로 읽으면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함께 읽으면 됩니다. 조용히 즐기고, 오붓하게 나눕니다. 어른들은 으레 미술관 같은 데에 가서 ‘그림만 달랑 있는 모습’을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가슴이 촉촉히 젖어든다고 하는데, 미술관에 가서 커다란 그림을 ‘아무 풀이말 안 달린 날것 그대로’ 받아들이며 마음으로 그림읽기를 하듯, 《모자가 빼꼼》을 집안에서 혼자서, 또는 아이하고, 또는 어른끼리 찬찬히 넘기면서 마음으로 어떤 느낌이 샘솟는가를 헤아리며 그림읽기를 하면 즐겁습니다.

 마음으로 그림읽기를 할 수 있을 때에, 마음으로 글읽기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사진읽기를 하면서, 마음으로 내 곁 고운 사람들 사랑읽기를 할 수 있습니다. (4344.9.21.물.ㅎㄲㅅㄱ)


― 모자가 빼꼼 (마에다 마리 글·그림,박은덕 옮김,보림 펴냄,2011.2.28./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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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9-21 13:38   좋아요 0 | URL
5번째와 6번째의 단락의 글을 보니 예전에 제가 썼던 글이 생각났어요. 복사 붙이기 하면,

"내가 단 하루라도 혼자의 힘으로 사는 게 가능한 일이던가. 누군가가 땀 흘려 일해 지은 집에서 살고, 누군가의 노고로 수확한 쌀로 밥을 먹고, 누군가의 수고로 만든 옷을 입고 사는 나"

정말 그래요. 타인의 도움 없이는 우린 하루도 살 수 없어요. 그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해요. 서로 도우면서...

따스함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숲노래 2011-09-21 14:15   좋아요 0 | URL
이웃이 있어 고맙고,
나는 이웃한테 사랑을 베풀며 고마운 사람이 되고요.
서로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즐거운 삶이라고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