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4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개죽음·참죽음·막죽음·늙어죽음
 [만화책 즐겨읽기 68] 데즈카 오사무, 《불새 4》



 둘째 오줌기저귀 빨래로 하루를 열고 하루를 닫습니다. 비가 흩뿌리는 날이라든지 어제처럼 갑작스레 날이 서늘해지면서 집안에 물기가 사라지는 날에는 틈틈이 자주 빨래를 해야 합니다. 가만히 살피면, 갓난쟁이는 오줌을 신나게 눌 때에는 십 분에 한 장씩 기저귀를 내놓습니다. 금세 갈고 금세 또 갈며 다시금 금세 갑니다. 옆지기는 어제 갑자기 날이 쌀쌀해지니 아기가 이를 느껴 오줌을 자주 누는가 보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겠지,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나, 고개만 끄덕일 수 없습니다. 기저귀 빨래가 쌓이지 않게 자주 빨아야 합니다. 보송보송 마른 기저귀가 넉넉히 있도록 일해야 합니다. 기저귀를 자주 빨아 집안에 너는데, 바깥에는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데, 뜻밖에도 빨래는 ‘아기가 오줌기저귀를 금세 내놓듯’ 금세 마른다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아기는 오줌기저귀를 자주 내놓고, 아버지는 콧물이 자꾸 고여 코를 자주 풀어야 합니다. 이런 날은 몸을 잘 간수해야겠다고 느낍니다. 찬바람을 잘못 쐬거나 찬물을 잘못 만지면 퍽 여러 날 몸이 다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저것 가리거나 따지지 못합니다. 몸이 아픈 옆지기가 집일을 조금도 건사하지 못하는 터라, 여기에 마음 조금 쓰고 저기에 몸 조금 쓰면서 바쁘게 몰아칩니다. 이것저것 한다고 애쓰지만 정작 어느 하나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합니다. 날마다 열 시간을 집일에 들인들, 아니 열두 시간이나 열네 시간을 집일에 들인들, 깔끔하게 매조지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하기는, 내 어머니를 비롯해서 옆지기 어머님이나 이 나라 모든 어머님들은 당신들 흘린 땀방울과 눈물방울 보람을 제대로 누린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 어머니들 사랑과 믿음을 뭇사람들 누구나 고이 건사하면서 섬긴 적이란 한 번도 없다고 느낍니다.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닌 지난날, ‘어머니 사랑이 어떠한가’ 하는 이야기를 학교에서 한 차례라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국민학생 때에는 효도편지 쓰기를 숙제처럼 했습니다. 그저 숙제일 뿐입니다. 어머니 몫과 어머니 자리와 어머니 삶을 아름다이 여긴다거나 돌본다거나 껴안는다거나 하도록 이끌지 않아요.

 여자아이한테 ‘너는 앞으로 어머니가 된단다’ 하고 깨우치는 교사나 둘레 어른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남자아이한테 ‘너는 앞으로 아버지가 된단다’ 하고 일깨우는 교사나 둘레 어른 또한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자아이한테든 남자아이한테든 ‘너희는 앞으로 어버이가 된단다’ 하고 가르치는 교사나 둘레 어른을 알지 못해요.


- “듣자 하니 야마토의 왕은 멋대로 거짓 역사를 만들어 자신이 신의 자손이라 발표하려 한다는데, 그런 짓은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쿠마소의 왕으로서 올바른 역사, 올바른 일본의 모습을 글로 써 남기려 한다.” (25쪽)
- “야마토에서도 뭔가 열심히 쓰고 있는 것 같던데. 왕에게만 유리한 만들어진 역사 말이야.” “맞습니다.” “하지만 이건 거짓 역사가 아니야. 이 쿠마소, 아니, 이 왜국이, 어떻게 생겨서 어떻게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를 바르게 적었지. 특히, 야마토 정부를 만든 자네 선조들이, 얼마나 작고 약한 나라를 괴롭히고 침략하고 착취했는지를 모두 조사해 적은 거야! 난 이걸 자손에게 남겨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싶다.” (66쪽)



 제도권학교 열두 해는 기능인을 낳습니다. 그렇다고 이 기능인이 재주나 솜씨가 돋보이도록 이끌거나 돕지 못해요. 제도권학교를 꾸짖는 대안학교라 해서 기능인 낳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대안학교라 해서 아이들한테 ‘어머니 길’이나 ‘아버지 길’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아울러 ‘어버이 길’을 물려주지 못합니다.

 제도권학교나 대안학교나 지식 교육 테두리에서 맴돕니다. 그렇다고 너른 지식이나 깊은 지식에 가 닿지 못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열린 삶을 일구게끔 돕지 못해요. 아름다운 삶이나 아름다운 사랑이나 아름다운 사람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착한 삶이나 착한 사랑이나 착한 사람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참다운 삶이나 참다운 사랑이나 참다운 사람을 밝히지 못합니다.

 나는 제도권학교 열두 해를 보내고, 대학교를 그만두기까지 다섯 학기를 보내며, 어른이 되어 대안학교에서 세 해 남짓 아이들과 어울리는 동안, 이들 배움터 가운데 어느 곳에서도 ‘삶’을 느끼거나 배우거나 깨닫거나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어디에서나 ‘지식’만 조각조각 난 채 있을 뿐이었어요. 어설픈 기능인과 어줍잖은 지식인 테두리에서만 맴돌 뿐이었어요.

 이웃나라 일본에서 독도를 자꾸 일본땅으로 삼으려고 우긴다 하지만, 이 나라 한국에서 독도를 한국땅으로 느끼도록 하는 참배움이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아니, 독도라는 섬을 한국땅다이 돌보거나 아끼거나 사랑한 적조차 없어요. ‘독도 영유권 정치 문제’로만 떠들썩합니다. 독도라 하는 작은 섬 삶이나 자연이나 발자취를 찬찬히 헤아리면서 나누는 교사나 학생은 없습니다. 독도뿐 아니라 ‘학생들이 나고 자란 고향마을’이나 ‘교사가 나고 자란 고향동네’ 이야기를 교과서에 담은 적이란 없고 이야기하는 적도 없으며 함께 나누는 적 또한 없습니다.


- “난 저 (불새) 생피를 꼭 마시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그게 누구죠? 폐하인가요? 아니면 연인?” “아버지한테는 절대로 안 줘! 아버지는 권위를 세우기 위해 무덤이 완성되면 2천 명의 사람을 생매장할 속셈이다.” “히익, 그게 정말이에요?” “아버지가 직접 말했어. 그 산 제물은 무작위로 뽑힐 거다. 아무 죄도 없이 산 채로 묻히는 거야. 만일 죽지 않는 몸이 된다면, 스스로 땅을 파고 나올 수 있겠지.” (48쪽)
- “바보 같으니! 왜 불새를 잡아 피를 마시지 않았죠? 그러면 늙지도 않고.” “젊은이, 인간은 죽지 않는 게 행복이 아니야.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한 거지.” (85쪽)


 나한테는 책이 많습니다. 서른일곱 해를 살아오면서 내 돈을 치러 장만하고 읽어 그러모은 책이 몇 만 권 됩니다. 읽은 다음 내놓았다든지 읽었으나 장만하지 않은 책까지 치면 내 손을 거친 책은 꽤 많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 책들을 내 아이들한테 물려줄 마음이 없습니다. 내 아이들이 저희 아버지 책을 읽도록 이끌 마음 또한 없습니다. 책이란, 스스로 마음이 우러나오면서 집어들어 펼쳐 가슴으로 곰삭인 다음 몸으로 살아내야 책입니다. 어버이 되는 사람이 잔뜩 쌓아놓고 ‘이 좋은 책’을 읽으라고 들이민대서 책이 되지 않아요. 더구나, 나는 이 책들을 지난 스물 몇 해에 걸쳐서 읽었습니다. 아이들보고 이 책들을 읽어내느라 아버지하고 똑같은 나날을 쓰라고 등떠밀 수 없어요.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저희 삶을 일구면서 저희 책을 읽어야 해요. 아이들은 아이들 깜냥껏 저희 삶을 사랑하면서 저희 사람을 사귀어야 해요.

 나와 옆지기는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넣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학교에 넣고 안 넣고는 대수롭지 않아요. 나와 옆지기는 우리 아이들이 여느 제도권학교나 대안학교라는 데에서 자질구레한 지식조각에 파묻혀 푸른 나날을 흘려보내도록 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책을 읽고 사랑책을 느끼며 삶책을 맞아들이도록 도우면서 보듬고 싶어요. 내 어머니인 친할머니를 사귀고, 옆지기 어머니인 외할머니를 만나도록 도우면서 보듬고 싶습니다. 때로는 종이에 담은 슬기를 보여주기도 할 테지만, 종이에 담기지 않은 수많은 땀과 주름과 굳은살이 무엇인가를 살갗으로 부비면서 녹일 수 있도록 온식구 복닥이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생각할 일이에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언제부터 초등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했나요. 언제부터 대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사회살이를 못한다’고 하나요. 아이들이 꼭 영어를 해야 하나요. 러시아말을 익히거나 일본말을 배우면 안 되나요. 아니, 스웨덴말이나 에스파냐말을 익히면 안 될는지요. 나라밖 말은 따로 안 배우면서 전라도말이나 경상도말이나 제주도말을 익히면 안 될는지요. 아이들은 아이들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뿌리내리게끔 어버이는 곁에서 조용히 어깨동무하는 길동무와 같이 지내야 한다고 느낍니다.


- “넌 지금 고귀한 순장을 모독하고 있어!” “형, 난 죽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야. 개죽음을 막고 싶을 뿐이야.” “개죽음? 개죽음이라고? 위대한 제왕의 죽음을 슬퍼해 몇 십 명의 인간이 그 뒤를 따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냐! 영화로 만들면 틀림없이 히트칠 거야. 그걸 가지고 개죽음이라니.” “그래, 개죽음이야.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죽어야 하는 거야?” (163쪽)


 데즈카 오사무 님 《불새》(학산문화사,2002) 넷째 권을 읽습니다. 《불새》 넷째 권을 읽으니, 참말 ‘죽음’이 무엇인가를 자꾸 되뇔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죽음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슬픈 넋을 자꾸 헤아릴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사람들은 개죽음입니다. 싸움터에서 총이나 미사일이나 탱크 따위에 목숨을 빼앗겨도 개죽음이지만, 대한민국 군대에서 지뢰를 밟고 죽는다든지 고참이나 간부한테 얻어맞아 죽어도 개죽음이에요.

 어른들은 늙어서 죽어야 합니다. 참말 늙어서 죽어야 해요. 늙어서 몸이 더는 움직이지 못할 때에 곡식을 끊고 조용히 숨을 거두어야 해요.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 날까지 온힘을 다해 온사랑을 나누면서 살아내야 비로소 어른이에요.

 어른들은 보험 걱정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에서는 보험을 부추기거나 북돋아서는 안 됩니다. 돈을 쌓아 돈을 받는 보험도 올바르지 않고, 나라에서 세운 공단에서 보험을 맡아 주는 일도 올바르지 않아요. 사람들 누구나 늙으면 죽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 누구나 다치면 아프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 누구나 내 목숨과 이웃 목숨을 아끼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늘 느껴요. 나는 개죽음이 싫어요. 개죽음이 싫어 둘째 아이가 군대에 끌려가지 않기를 바라요. 아니, 이 나라에 군대가 사라지기를 바라요. 이웃나라에도 군대가 없어져야 한다고 꿈꾸어요.

 나는 즐겁게 죽고 싶어요. 즐겁게 죽기 앞서 즐겁게 살고 싶어요. 막 죽고 싶지 않아요. 나는 늙어서 죽고 싶어요. 자동차에 받혀 죽는다든지, 아파트더미에 깔려 죽는다든지, 돈더미에서 허우적거리거나 돈가뭄에서 굶주리며 죽고 싶지 않아요. 푸른 수풀과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조용하게 흙으로 돌아가서 개미밥과 지렁이밥과 흙밥이 되고 싶어요.


- “컴퓨터는 인간을 보좌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두뇌를 대신할 수는 없어.” (196쪽)
- “왜냐고?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우주 비행사로 자랐기 때문에 부모니 형제니 애정이니 인정 따위는 필요없었던 거야. 나는 18살 때까지 센터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 나갔다간 잡균을 묻혀 돌아올, 요컨대 우주의 어느 별에 잡균을 퍼뜨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지.” (279쪽)


 고운 꿈을 사랑하는 삶이라면, 살아가는 동안 즐겁고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때에도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기운이 샘솟거나 넘쳐서 온몸 쑤시도록 일한 이튿날에도 멀쩡히 일어나서 씩씩하게 살아내는 젊은 날은 젊어서 좋습니다. 이와 함께, 기운이 다시 샘솟기 힘들어 몸을 꽤 쓰고 난 이튿날에는 골골대거나 앓아눕는 ‘저무는 날’은 늙는 날대로 좋아요.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받아 들뜬 부푼 가슴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 사랑을 물려주면서 시나브로 식는 몸에서 숨결이 빠져나가는 서운함도 눈물과 함께 받아들이며 죽어야 합니다. 나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 있는 사람이에요. 나는 삶과 죽음이 똑같이 고마운 사람이에요. (4344.9.20.불.ㅎㄲㅅㄱ)


― 불새 4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2.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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