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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시스터즈 3
쿠마쿠라 다카토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따스한 말 한 마디로 살아나는 이웃
[만화책 즐겨읽기 69] 쿠마쿠라 다카토시, 《샤먼 시스터즈 (3)》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려면 사랑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지 못한다면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돈은 주고받지만 사랑은 주고받지 못하는 삶일 때에는 메마르거나 슬프거나 딱합니다. 이름이나 힘(권력)은 주고받거나 휘두르지만 사랑은 주고받지 않는 삶일 적에는 딱딱하거나 안쓰럽거나 고단합니다.
한창 무르익는 가을날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가을비가 내리면서 가을바람 퍽 스산합니다. 한가위를 이레째 지나니 보름달은 반달이 됩니다. 반달이 뜬 밤하늘인데 마당은 아직 환합니다. 한가위와 설날 앞뒤 반달이나 초승달은 몹시 밝아 온누리에 고운 빛살을 뿌립니다.
별이 총총 떴습니다. 반짝이는 별을 올려다봅니다. 텃밭 가장자리에 서서 쉬를 눕니다. 밤오줌을 누는 텃밭 맞은편에는 개똥벌레가 조용히 앉아서 쉽니다. 깊은 밤이건만 한낮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나도 옆지기도 아이들도 하루 내내 풀벌레 노랫소리를 맞아들이며 살아갑니다. 내 마음을 살찌우거나 차분히 다스리는 소리라 한다면, 봄에는 멧새 소리요 여름에는 개구리 소리요 가을에는 풀벌레 소리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한 해 내내 노상 똑같은 자동차 소리나 텔레비전 소리나 손전화 소리는 내 마음을 조금도 살찌우지 않을 뿐더러 내 마음을 하나도 차분히 다스리지 못합니다.
- “할아버지는 쫓기가 어렵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쉽게 퇴치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글쎄, 그 인형들 입장에서는 간단한 게 아닐지도 모르지. 할아버지는 저쪽의 존재까지도 배려하셔서 그러신 거야. 사람들 몰래 공양해 버리면 우리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 인형들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26∼27쪽)
- “하지만 크든 작든, 특이한 상황이나 배경은 무언가를 케사랑파사랑이나 텐사라바사라로 변화시킨단다. 사람들은 배경을 보지 않고 사건 자체만 보지. 하지만 배경을 빼놓고 무리하게 판단하면 오해가 생기는 법이다.” (143쪽)
사람은 사랑을 주고받아야 사람다이 살아간다지만, 사랑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가 들려줄 말 한 마디에 사랑이 깃들기 마련입니다. 내가 듣는 말 한 마디에 사랑이 담기곤 합니다. 머나먼 남쪽 나라나 멀디먼 북쪽 나라에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내 목숨부터 내 어버이 사랑이 만나 이루어집니다.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 목숨 또한 이녁 어버이 사랑이 만나 이루어집니다. 서로서로 어떤 삶이요 어떤 꿈이요 어떤 빛인가를 살포시 헤아릴 때에, 비로소 내가 이제껏 받은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아챕니다. 다 함께 어떤 눈빛이요 어떤 눈길이요 어떤 눈썰미인가를 가만히 돌아볼 때에, 바야흐로 내가 여태껏 건넨 사랑이 어떠한가를 깨닫습니다.
동냥하는 사람한테 백만 원을 선물해야 사랑이 아닙니다. 어린이가 동냥하는 사람한테 백 원을 선물한대서 사랑이 아니라 하지 않습니다.
책을 백만 권쯤 읽어야 무언가 대단한 지식을 얻지 않습니다. 십만 권이나 만 권이나 천 권쯤 책을 읽어야 무언가 깊은 생각을 얻지 않아요. 책을 한 권이나 열 권을 읽든, 또는 책을 아예 읽지 못하든, 내가 하루하루를 어찌 받아들이면서 곰삭이는가에 따라 깊거나 너른 사랑을 얻습니다.
- “그래도 상관없어. 그래도 (고양이) 미케는 내게 소중한 존재니까.” “……. 미케는 이미 마을로 내려갔어. 쳇. 부럽군.” (58쪽)
- “백성들의 귀중한 휴일. 하지만 그건 대부분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을 때 이야기고, 최근에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게 되었지.” (165쪽)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언제나 느낍니다만, 두 아이는 저희 어버이한테서 뭔가 대단한 선물을 받아야 좋아하지 않습니다. 두 아이는 저희 어버이가 살며시 웃는 낯빛으로도 몹시 좋아합니다. 살그머니 안아서 등을 토닥여도 좋아합니다. 무릎에 앉혀도 좋아합니다. 손을 잡고 멧길을 오르내려도 좋아합니다. 저녁나절 함께 마당에 나와 달이나 별을 올려다보아도 좋아합니다. 텃밭에서 함께 풀을 뽑아도 좋아하고, 같이 고추를 따거나 오이를 따도 좋아해요.
아이들하고 마실을 할 때에 시골버스를 탄대서 아이들이 서운해 하지 않습니다. 자가용 없는 우리 살림입니다만, 누군가 자동차를 태워 준대서 아이들이 즐거이 여기지 않습니다. 몇 천 원짜리 얼음과자를 얻어먹어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백 원짜리 얼음과자로도 좋아합니다.
따스한 어버이 품을 좋아하는 아이들입니다. 포근한 어버이 손길을 좋아하는 아이들입니다. 넉넉한 어버이 가슴을 좋아하는 아이들입니다. 시원스레 열린 어버이 마음밭을 좋아하는 아이들입니다.
돌이켜보면, 어른과 어른 사이에서도 따스한 품과 포근한 손길과 넉넉한 가슴과 시원스레 열린 마음밭만큼 좋은 벗이 없어요. 돈 많은 벗이 좋을까요. 이름 거룩한 스승이 좋을까요. 대단하다는 힘을 휘두르는 피붙이가 좋을까요.
가을에는 가을을 실컷 누려야 좋습니다. 겨울에는 겨울을 마음껏 맞이해야 좋습니다. 봄에는 봄을 껴안고, 여름에는 여름을 바라보아야 좋아요. 우리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 그대로 사랑스러우면서 반갑습니다. 내 옆지기는 내 옆지기 그대로 아름다우면서 고맙습니다.
- “이런 별것 아닌 일에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고. 미즈키. 너무 걱정하지 마. 앞으론 점점 좋아질 거야. 아직 초등학생이잖아. 나도 옆에서 응원해 줄게! 알았지?” (93쪽)
쿠마쿠라 다카토시 님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2004) 3권을 읽습니다. 셋째 권에서는 따스한 말 한 마디로 살아나는 이웃을 이야기합니다. 내 이웃은 내가 들려주는 따스한 말 한 마디로 살아나는데, 나 또한 내 이웃한테서 듣는 따스한 말 한 마디로 살아납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서로 따숩게 얼싸안으면서 포근히 보듬는 작고 가녀린 손길로 사랑을 이룹니다.
지식은 사랑을 이루지 않습니다. 지식은 지식입니다. 돈은 사랑을 빚지 않습니다. 돈은 돈입니다. 널따란 아파트는 사랑을 길어올리지 않습니다. 널따란 아파트는 널따란 아파트예요.
이런저런 복지 정책이나 교육 정책이나 건설 정책이 선대서 이 나라 사람들한테 사랑을 나눌 수 없습니다. 정책은 정책일 뿐이에요. 아무런 정책이 없더라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어떠한 정책 하나 내놓거나 마련하지 못하더라도 착하게 사랑하면서 고운 사랑길을 걸을 수 있으면 돼요.
- “너에게 이미 충분히 봉사했으니, 다음은 또 다른 사람에게 행운을 주겠지. 너도, 즐거웠던 기억은 잊지 말거라.” (149쪽)
- “지금은 신들조차도 거의 불러 주시지 않게 되었으니……. 그래도 이 근처는 아직 괜찮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우리들을 기억해 주시는 분이 계시니까요.” “그런 사람이 없으면 올 수 없는 거야?” “그렇죠. 그건 아가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아가씨가 여기를 떠났을 때 여기에서 아가씨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173∼174쪽)
무언가 대단하다 싶은 줄거리나 고빗사위가 있어야 재미난 만화책이 아닙니다.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알뜰히 담아낼 때에 차분히 들여다보는 만화책입니다. 김수정 님 〈아기공룡 둘리〉나 김동화 님 〈요정 핑크〉나 이진주 님 〈달려라 하니〉는 딱히 대단하다 싶은 줄거리나 고빗사위가 없는 만화입니다. 그렇지만 이 만화들은 오래도록 널리 사랑받아요. 왜냐하면, 삶을 옳게 바라보며 착하게 사랑하는 사람들 손길을 따숩게 그리거든요.
《샤먼 시스터즈》 또한 1권부터 3권에 이르기까지 ‘착한 사랑 따순 손길’을 차분히 그립니다. 눈부신 줄거리가 없고 돋보이는 사람(주인공)이 없습니다. 차분한 삶이고 수수한 사람들입니다. 그저 말 한 마디 따뜻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나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순도순 어울리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누구나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목숨으로 살아갑니다. (4344.9.20.불.ㅎㄲㅅㄱ)
― 샤먼 시스터즈 3 (쿠마쿠라 다카토시 글·그림,문준식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4.7.15./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