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코의 술 애장판 1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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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을 사랑하는 더 큰 꿈
 [만화책 즐겨읽기 63] 오제 아키라, 《나츠코의 술 (1)》


 밤하늘 구름이 걷혔습니다. 한가위를 앞두고 구름이 잔뜩 끼다가는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더니,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해맑은 밤하늘입니다. 밤 한 시 반에 쉬를 누러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마당과 앞 들판을 환하게 비추는 달이 보입니다. 달은 차츰 이울어 곧 반달이 될 텐데, 보름이 아닌 달이건만 몹시 환합니다. 깜깜한 온누리에 고루 불을 비추듯, 하얗게 맑은 달빛이 멧자락과 논밭을 살포시 덮습니다.

 설날이나 한가위 언저리에는 꼭 보름달이 아니어도 아주 밝고 맑습니다. 도시에서는 이 밝고 맑은 달빛을 느끼기 어려울 텐데, 느끼기 어렵더라도 달은 언제나 밝고 맑은 빛줄기를 내뿜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목숨붙이한테 밝고 맑은 빛줄기를 나누어 줍니다.

 문득 느낍니다. 짙게 낀 구름이 달빛을 가로막을 때에도 달은 한결같이 밝고 맑은 빛줄기를 비추었습니다. 사람들은 구름 때문에 달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달빛은 언제나 곱습니다. 곧, 구름이 짙게 낀 낮에는 햇볕과 햇빛을 못 느끼겠지요. 그러나, 구름이 짙게 낀 낮에도 햇볕과 햇빛은 밝고 맑게 내리쬡니다.


- “흥, 도쿄에는 알코올이 첨벙첨벙 들어간 가짜 술밖에 없지.” (24쪽)
- “여기는 모든 공정을 컴퓨터로 제어하는 관리실입니다. 공장 전체 온도, 습도도 유지돼, 사계절 양조가 가능해졌습니다.” “사계절 양조? 1년 내내 술을 빚나요?” “예.” ‘5월이 되면 할아범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여름에는 술을 빚지 않는다 … 옛날에 들은 할아범의 말을 떠올렸다. ‘나츠코, 누룩은 생물이야.술 빚기는 첫째가 누룩, 둘째가 술밑, 셋째가 빚기라는 말이 있는데, 아주 소중히 보살펴 주면 건강하게 자라 준단다.’’ (45∼46쪽)



 어버이가 아이한테 베푸는 사랑을 아이가 송두리째 느끼라고 바랄 수 없습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 보내는 사랑을 어버이가 남김없이 느끼라고 꿈꿀 수 없습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서로서로 깊으며 너른 사랑을 늘 주고받습니다. 받는 쪽에서 느끼지 못하더라도 사랑은 고이 흐릅니다. 주는 쪽에서 잘 가는가 알지 못하더라도 고이 퍼집니다. 구름이 끼어 달빛이나 햇빛을 제대로 못 느낀다고 하지만, 구름이 있건 없건 달빛이나 햇빛은 언제나 그대로예요. 사람들 마음에 짙은 구름 같은 무언가 슬며시 끼어서 사랑을 옳게 느끼지 못한달지라도 사랑은 노상 그대로입니다.

 겉이 모두가 아닙니다. 겉만 보며 섣불리 헤아릴 수 없습니다. 겉으로 삶을 나누지 않습니다.

 돈이 모두가 아닙니다. 돈만 보며 섣불리 헤아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삶을 나누지 않습니다.

 사랑을 눈으로 보도록 할 수 없습니다.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사랑은 슬픕니다. 사랑이기에, 내 사랑을 맞아들일 사람이 사랑인 줄 깨닫지 못하더라도 그예 맑고 밝게 내 사랑이 고이 흐르도록 다스립니다.

 깊은 저녁, 네 살 첫째 아이 손을 잡고 밤길을 걸으며 달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냥 호젓한 시골자락 밤길을 살며시 마실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먼저 달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버지, 저기 달이에요.” 하면서 내 손을 잡아당기며 손을 들어 가리킵니다.

 아이하고 밤길 걷기를 하러 나올 때, 짙게 우거진 나무숲 사이로 언뜻선뜻 비치는 달빛을 보았습니다. 더 깊어야 달이 훤히 보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무숲이 끝나는 마을길에서는 달이 잘 보이더군요. 아이는 이때에 달을 알아차립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나무숲 사이로 살짝 비치는 달빛을 알아봅니다.

 네 눈이 천천이 뜨이는구나. 네 가슴이 조금씩 열리는구나. 네 마음이 차츰차츰 무르익는구나.

 나는 두 아이 아버지이지만, 두 아이를 낳을 때까지도 이 두 아이가 맞아들일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가를 옳게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갓 태어나 처음 마주할 살가운 둥지가 어떠한 빛깔과 어떠한 내음과 어떠한 모습이 되도록 다스려야 하는가를 알뜰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 “하지만 환상이 아니야. 타츠니시키라고. 전쟁 전에 분명히 재배되던 종이야.” (17쪽)
- “손 내라.” “뭐야?” “열어 봐, 나츠코. 그 안에 네 오빠의 목숨이 들어 있어!” “이, 이건?” “이삭 12포기! 볍씨 1350알이야! 나트치시키다! 나츠코!” (105쪽)
- “이거 마음에 드는군. 맛있어서 우는 손님은 처음입니다! 언제든 오세요. 아주 싸게 해 줄 테니까!” “아뇨, 다시는 안 올 거예요. 아마.” “왜?” “고향으로 돌아갈 거예요.” (185쪽)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르다지요. 가시내와 사내가 다르다지요. 틀림없습니다. 서로 다른 삶이고 사람이며 사랑입니다. 어머니 삶과 아버지 삶이 같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사랑이 같을 수 없어요. 서로 다른 결이고 서로 다른 무늬이며 서로 다른 꿈입니다.

 어떠한 아버지라 하더라도 내 아이 목숨이 살가이 자리를 잡기까지 첫 열 달을 몸속에 고이 품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반편쟁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내 아이 목숨이 될 씨앗을 몸속에 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고운 목숨씨를 몸속에 품으면서 살아요.

 학교에서는 그냥 성교육을 하지만, 성교육은 아주 부질없습니다. 성교육이란 사랑교육도 삶교육도 사람교육도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부질없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우면서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목숨을 저마다 몸속에 품으며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버이가 되는가를 깨닫게끔 이끌지 않으니, 성교육은 아주 부질없으면서 뜻없고 값없어요. 곧, 성교육을 학교에서 제대로 하자면, 남녀 생식기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준다든지 피임(아기 안 배기)하는 법을 가르친다든지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사랑하면서 함께 살아갈 고운 옆지기를 만나서 앞으로 함께 돌보며 살아갈 고운 아기를 생각할 때에 비로소 짝짓기를 해야 올바르다는 삶을 가르쳐야 해요.

 그러나, 이러한 삶은 지식으로 가르칠 수 없어요. 삶은 지식이 아닌 삶이기에,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제 나이에 걸맞게 제 삶을 바로보면서 아름다이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제 목숨씨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내 목숨씨가 또다른 목숨씨로 이어지는 흐름’을 알려줄 수 있어요.


- “나츠코! 기다려라.” “여보, 나츠코를 독차지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도, 독차지? 내가 언제!” (13쪽)
- “타오! 이제 넌 아버지를 볼 수 없단다. 이제 아버지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어. 널 끌어안을 수도, 손을 잡을 수도 없어. 아버지는 죽었다. 하지만 그 뼈는 언젠가 흙이 되고 이 대지의 일부로 바뀌어 나무와 물과 벼와 인간을 기르겠지. 짧은 시간에 아버지가 네게 무엇을 남겼는지, 네게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는지, 타카오, 이 대지에게서 들어라. 이 대지에게서 배워라.” (120∼121쪽)


 내 삶을 사랑하는 더 큰 꿈을 이야기하는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1) 1권을 읽습니다. 일본 도쿄에 깃든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나츠코’는 광고회사에서 ‘술 광고’에 넣을 글을 씁니다. 나츠코는 일본 시골마을에서 대물림으로 잇는 ‘일본 옛술 빚는 일’을 하는 집에서 태어난 둘째 아이입니다. ‘일본 옛술 빚는 일’을 하는 집안 첫째 아이는 몸이 아파 서른 나이에 일찍 숨을 거둡니다. 책이름에 잘 나오듯, 일본 옛술을 옛모습 그대로 빚는 삶을 보여주는 이 만화책에서 나츠코는 커다란 도시 도쿄를 떠납니다. 처음에는 시골을 떠나 커다란 도시에서 뜻을 이루며 살아가려 했지만, 커다란 도시에서 살다가 새삼스레 ‘훨씬 커다랗다’ 할 만한, 따지고 보면 크니 작니 하고 가를 까닭이 없이 아름답다 할 만한 참다운 꿈을 가슴으로 품습니다. 예전에는 ‘여느 회사원한테 커다랗다 여길 만한 꿈’을 좇느라 허둥지둥했다면, 이제는 ‘내 삶을 사랑하는 커다랗다 여길 만한 꿈’을 깨달아 조바심이 사라졌다고 할 만해요.

 그런데, 만화책을 읽으면서, 너무 남우세스럽게도 피식 하고 웃었습니다. 이 만화책에서뿐 아니라 일본 사회나 역사나 문화를 살피면 거의 비슷한데요, 나츠코네 집안은 ‘전통 있는 술도가’라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전통이란 기껏 150년입니다.

 1980년대에 그린 만화이니까, 이때부터 150년이라면 1830년대입니다. 1830년대부터 하던 집안일인데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요. 고작 150년밖에 안 되는 나이에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이 얼마나 어줍잖은가 잘 알겠지요.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150년이라는 나날을 ‘대단한’ 전통으로 삼습니다. 한국에서는 150년이라는 나날은 전통에 낄 수 없다고 여기지만, 막상 한국에서 ‘한국 옛술을 옛모습 그대로 빚는’ 집을 찾아볼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있기나 있을까요.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참말 있기는 있을까요.

 흙을 일구며 살아온 ‘전통’을 거룩하게 여기는 한국사람이 있나 궁금합니다. 즈믄 해를 흙을 일구며 살았다는 ‘전통’을 아름답거나 훌륭하게 여기면서 ‘2010년대 오늘날 당차게 농사꾼으로 살아가려는 꿈’을 키우는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가 있는지 아주 궁금합니다.


-  “오빠가 늘 말했어요. 난 삼류인 특급보다 일류인 2급을 만든다고. 해님 같은 술을 만든다고.” “해님?” “오빠가 좋아하는 말이에요.” ‘나츠코, 술이란 참 이상하지. 이 투명한 액체 안에 많은 맛을 촘촘히 감췄어. 아무 색도 없는 태양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빛깔 무지개가 되어 빛나는 거랑 똑같아. 나츠코, 술은 해님의 빛이란다. 신이 주신 최고의 은혜야.’ (57∼58쪽)
- “일곱 빛깔 맛이 나지 않는 걸 일곱 빛깔의 빛이라고 쓰고, 혼조조인데 알코올에 대한 걸 숨기고 쓰는 거요? 광고가 그런 건가요?” (72쪽)
- “일시적인 감성이야. 그런 건. 넌 그런 감상 때문에 카피라이터가 되는 꿈을 버리겠다는 거군!” “버리려고요. 감상이 아니에요. 더 큰 꿈이 생겼어요.” (193족)



 만화책 《나츠코의 술》을 읽다가 ‘피식 웃었’지만, 이내 ‘슬프게 웃’고 맙니다. 한국땅에서는 고작 150년이라는 나날조차 제대로 잇는 일이 한 가지조차 없다고 할 만하기 때문입니다. 판소리를 150년 이어서 하는 집안이 있을까요. 도자기를 150년 이어서 굽는 집안이 있을까요. 종이를 150년 이어서 뜨는 집안이 있을까요. 갖바치나 대장장이나 신기료를 150년 이어서 하는 집안이 있을까요.

 어쩌면,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회사원살이를 대물림으로 시킨다’든지 ‘공무원살이를 대물림으로 시킨다’든지 하려는 설익은 전통(?)만 있는지 모릅니다. ‘대학교 졸업장을 대물림으로 따도록 시킨다’는 엉터리 전통은 있겠지요. 아파트에서 살고, 자가용을 몰며, 도시에서 갖가지 물질문명을 누리도록 하는 바보스러운 전통은 많겠지요.

 일본에서는 고작 150년 술빚기를 하면서도 ‘술 한 방울에 해님이 깃드는 무지개 빛깔’을 말할 만큼 아름다운 꿈을 건사합니다. (4344.9.15.나무.ㅎㄲㅅㄱ)


― 나츠코의 술 1 (오제 아키라 글·그림,박시우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7.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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