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여행 - 케이트가 만난 인상주의 화가들
제임스 메이휴 지음 / 크레용하우스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가슴에 샘솟는 사랑으로 그림읽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93] 제임스 메이휴, 《미술관 여행》(크레용하우스,2001)



 책을 많이 읽는대서 무언가를 더 잘 알거나 더 제대로 알거나 더 널리 알지는 않습니다. 그저 책을 많이 읽었을 뿐입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더 많이 읽느냐 더 적게 읽느냐를 따져서는 안 되고, 따질 까닭이 없으며, 따진들 부질없습니다. 책 하나를 손에 쥐어 읽는 동안 내 삶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살펴서 어떻게 살찌우려 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책읽기는 지식쌓기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지식쌓기를 이루려고 책읽기를 할 테지만, 마음읽기와 사랑읽기로 이루는 삶읽기로 나아가는 길이 참답다 할 책읽기라고 느낍니다. 곧, 내 삶을 아름다이 일구는 길을 스스로 깨닫거나 찾으려고 손에 쥐는 책이 돼요.

 나는 내 마음그릇에 따라 내 마음을 건드리는 책을 살핍니다. 내 마음그릇을 아직 넓게 열거나 갈고닦거나 추스르지 못했을 때에는 이런 마음그릇 깜냥에 맞게 책을 찾아서 읽어야 합니다. 내 나름대로 내 마음그릇을 찬찬히 다스리면서 사랑스레 돌본다고 느낀다면, 이러한 결에 맞추어 조금씩 테두리를 넓힐 수 있습니다.

 언제나 내 삶대로 읽는 책입니다. 언제나 내 몸에 맞추어 먹는 밥입니다. 적게 먹는 사람이면서 커다란 밥그릇에 소복하게 담은 밥을 먹을 수 없어요. 뷔페집 같은 데에서 신나게 먹을 수 있다지만, 조그마한 내 밥통에 잔뜩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갑작스레 잔뜩 먹으면 배앓이를 해요. 배에 탈이 납니다.

 숱한 지식조각을 머리에 집어넣을 때에는 머리앓이를 합니다. 갖은 조각이 이리저리 뒤섞이면서 제자리를 못 찾습니다. 제자리를 못 찾는 지식조각으로는 가슴을 움직이는 슬기나 믿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먹을 만큼 먹는 밥이어야 하고, 담을 만큼 담는 지식이어야 하며, 다스릴 만큼 다스리는 넋이어야 해요. 내가 좋아하는 삶을 헤아리고, 내가 즐길 만한 일거리를 찾으며, 내가 느긋하면서 넉넉하고 따사로이 살아갈 터전을 느껴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내 사랑을 마음껏 펼칠 보금자리를 찾아서 알뜰살뜰 꾸려야 아름답습니다. 나 스스로 내 사랑을 가득 쏟아 따사로이 읽을 책을 찾아서 받아들여야 아름답습니다. 이리하여,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이든 사진이든 춤이든 무엇이든, 내 마음밭을 일구는 결을 톺아보면서 하나하나 들여다봅니다. 어떤 비평가들 잔소리에 휘둘리며 읽는 그림이 아닙니다. 어떤 전문가들 말밥에 어질어질 휘말리며 읽을 그림이 아니에요. 내 마음속에서 좋아하는 꿈이 피어오르는 무언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림 하나를 바라보면서 내 마음속에서 어떤 이야기꽃이 피어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 오늘은 할머니의 생일이에요. 할머니는 케이트하고 미술관에 가기로 했어요. 케이트는 미술관을 무척 좋아하지요. 그곳엔 케이트만의 비밀이 있거든요 ..  (3쪽)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가 좋아하는 결을 살리면서 씁니다. 내가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억지로 쥐어짤 수 없습니다. 돈을 억수로 안기더라도 내 마음으로 우러나지 않을 때에는 아무 글을 못 씁니다.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내가 사랑하는 결을 보듬으면서 그립니다. 내가 그리고 싶지 않은데 그림을 함부로 그릴 수 없어요. 그림대회가 되든 자화상이 되든 내 가슴이 뭉클뭉클 움직여야 비로소 붓을 놀립니다.

 나 스스로 가슴으로 북받치는 느낌이 있을 때에,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내 가슴속 깊이 아로새깁니다. 나 스스로 가슴으로 치솟는 느낌이 있을 때에,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내 가슴속 넓게 펼쳐놓습니다.

 좋아하는 나무 앞에 서 보셔요. 좋아하는 꽃 키높이에 맞추어 앉아 보셔요. 좋아하는 내 아이하고 눈을 마주보면서 코를 살짝 대 보셔요. 그림 하나에 담을 이야기란, 글 한 줄에 실을 이야기란, 사진 한 장에 깃들일 이야기란, 어떤 이야기가 될 때에 착하면서 해맑을까 곱씹어 보셔요.


.. “케이트야, 여기 이 아름다운 꽃들을 좀 보렴.” “할머니, 난 물감 얼룩만 보이는걸요.” “그래, 그 물감 얼룩들이 모여서 그림이 되는 거란다. 뒤로 몇 걸음만 물러서서 보면 꽃이 잘 보일 거야.” ..  (4쪽)


 수많은 사람들한테 돋보이는 이야기일 때에 내 가슴을 찌릿 울리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사랑받았다는 이야기일 때에 내 마음이 번쩍 깨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내 삶을 알아야 하고, 내 삶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삶을 믿어야 하고, 내 삶을 느껴야 합니다.

 그림책 《미술관 여행》(크레용하우스,2001)을 떠올립니다. 제임스 메이휴 님은 《미술관 여행》이라는 그림책에서 ‘케이트’라는 아이가 ‘할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을 살포시 보여줍니다. 어린이 케이트가 ‘그림읽기’를 하는 길을 넌지시 밝혀요.

 어린 케이트는 비평가나 전문가 눈·코·귀·입을 빌지 않아요. 오직 어린 케이트 가슴을 믿고 어린 케이트 사랑을 꿈꾸면서 그림을 읽어요.


.. 그때 르느와르 아저씨의 그림이 눈에 띄었어요. 한 소녀가 꽃다발을 들고 극장에 앉아 있는 〈첫나들이〉라는 그림이었어요. “할머니께 저 꽃다발을 선물하면 무척 좋아하실 텐데…….” 케이트는 그림 가까이 다가가서 눈을 꼬옥 감았어요 ..  (21쪽)


 케이트한테는 ‘인상주의 화가’나 ‘르느와르’라는 이름이 덧없습니다. 이런 이름을 알자고 그림을 읽지 않습니다. 이런 이름을 외우려고 그림을 배우지 않습니다. 이런 이름 뒤를 잇자며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또다른 루벤스’가 될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불쌍합니다. ‘고흐를 뛰어넘겠다’는 뜻을 품으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가엾습니다. ‘대학교수’가 되거나 ‘예술쟁이’가 되겠다며 그림을 그린다면 그지없이 안쓰럽습니다.

 좋아서 그리는 그림이에요. 사랑을 불태우려고 그리는 그림이에요. 삶을 밝히면서 꿈을 활짝 드러내는 그림이에요.

 좋아서 그림을 그리고, 좋아서 그림을 읽습니다. 사랑해서 그림을 그리고, 사랑해서 그림을 간직합니다.

 그림책 《미술관 여행》은 미술관 마실을 하면서 ‘그림읽기 실타래’를 푼다고 할 만합니다. 이렇게 느끼면서 책을 덮어도 나쁘지 않아요. 조금 더 생각하거나 한껏 부푼 사랑을 하고 싶다면, 어린 케이트가 할머니를 사랑하는 넋으로 읽는 그림으로 이루는 예쁜 꽃다발을 나 또한 내 가슴으로 곱다시 껴안는 길을 살펴보셔요. 어린 케이트한테는 물감 얼룩이 모인 그림도 좋은 그림일 텐데, 주름진 살결로 천천히 걷고 천천히 생각하는 따스한 할머니 손길이야말로 좋은 그림입니다. (4344.9.10.흙.ㅎㄲㅅㄱ)


― 미술관 여행 (제임스 메이휴 글·그림,사과나무 옮김,크레용하우스 펴냄,2001.5.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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