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생각
― 사진과 사랑


 첫째 아이를 낳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습니다. 한국땅 여느 남자라 한다면 집밖일을 하느라 집안일은 옆지기한테 도맡겼을 테며, 아이키우기 또한 옆지기가 도맡도록 했겠지요. 어느 아버지라 하더라도 ‘나도 내 아이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하고 말할 테지만, 막상 ‘아이하고 같은 곳에서 함께 눈을 마주하면서 살아가는 겨를’은 얼마 안 되리라 느낍니다.

 집에서 두 아이를 건사하고 살림을 도맡는 아버지로서 생각합니다. 왜 이 나라 여느 아버지라 하는 사람들은 아이키우기와 살림하기와 집안일을 어머니한테 떠넘길까 궁금합니다. 여느 한국땅 아버지로서 집밖에서 돈만 잘 벌어오면 아이는 저절로 쑥쑥 자랄는지요. 돈이 넉넉해서 마음껏 쓸 수 있으면 집안일이나 집살림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는지요.

 나는 내가 사진을 몹시 모를 뿐 아니라 사진을 어설피 말해서는 안 된다고 느껴, 사진길을 열 해 남짓 걷는 동안 사진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사진책을 장만해서 읽기만 했습니다. 사진책을 읽는 눈썰미를 기르면서 내 사진기를 다루는 손길을 다스려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어느덧 열네 해째 사진길을 걸으면서 돌이킵니다. 사진길을 한 해 걸었으면 한 해 걷는 삶 그대로 사진을 말하면 됩니다. 사진길을 다섯 해 걸었으면 다섯 해 걷는 삶 그대로 사진을 말하면 돼요.

 사진길을 쉰 해 걸은 사람만 사진을 말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길을 다섯 달 걸은 사람이 말하는 사진이 사진길을 스물다섯 해 걸은 사람이 말하는 사진하고 견주어 모자라거나 어수룩하거나 덜 떨어질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이니까요. 누구하고 누구를 견줄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사진이고 서로 다른 이야기이며 서로 다른 꿈입니다. 곧, 사진은 저마다 다 달리 걷는 길이요, 저마다 다 달리 일구는 삶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이키우기 = 삶’입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결대로 아이를 돌보거나 보살피거나 먹여살립니다. 다만, 아이들을 ‘키운’대서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간다’ 할 만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먹여살리’니까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라 할 만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수용소에 가두어도 ‘키우’거나 ‘먹여살리’는 셈입니다. 아이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설에 넣어도 ‘돌보’거나 ‘아끼’는 셈이에요. 그러나, 이때에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란, 아이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꿈을 꾸면서 같은 사랑이 오가는 일입니다.

 수많은 어버이들이 ‘아이를 낳기 앞서나 아이를 낳은 뒤’에 사진기를 장만합니다. 막상 ‘내 아이’가 되고 보니, 이 멋지고 예쁘며 사랑스럽다 여기는 아이를 사진으로 안 담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내 아이’를 사진으로 담는 이들 가운데, 내 아이 여느 자리 여느 삶 여느 모습을 여느 사진으로 담아 여느 이야기로 일구는 분은 아주 드뭅니다. 예쁘게 차려입히고 예쁘게 눈짓을 하며 예쁘게 웃어야 비로소 사진으로 담을 만하다고 여깁니다. 따지고 보면, 어버이 스스로 사진을 삶으로 녹이지 않는데, 제아무리 멋들어지거나 값지다 하는 사진기가 있다고 해 보았자, 아이를 사진으로 찍으려 한대서 얼마나 살갑거나 사랑스레 찍을 수 있겠어요. 사진기는 손에 쥐었어도 삶은 가슴으로 붙안지 못하는걸요. 사진은 찍는다지만 삶을 찍지 못할 뿐 아니라, 어버이 삶도 아이 삶도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걸요.

 집일을 하며 하루 내내 집안에서 지낸다고 모든 어버이가 아이사랑과 삶사랑을 살뜰히 느낀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하루 내내 보내며 집일을 건사하는 일을 답답하게 여긴다거나 괴롭게 느낄 분이 제법 많다고 봅니다. 손으로 천기저귀를 갈아 손으로 똥기저귀와 오줌기저귀를 정갈하게 빨래한 다음 햇볕 잘 드는 곳에 기쁘게 너는 어버이는 오늘날 거의 없습니다. 바쁘고 힘드니까 빨래기계를 쓴다는데, 너무 바쁘고 힘든 나머지 천기저귀는 생각조차 않거나 아예 모릅니다. 더욱이, 종이기저귀를 쓰면서 이 종이기저귀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살피지 않으며, 이 종이기저귀가 어떤 쓰레기가 되어 이 땅을 더럽히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밥을 차리든, 옷을 장만하든 늘 같습니다. 아이한테 더 좋은 밥이나 더 예뻐 보이는 옷을 안기는 일이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야 해요. 아이를 함께 낳은 내 짝꿍한테 더 맛난 밥을 사먹이는 일이 사랑인가요. 내 짝꿍이 더 예뻐 보이는 옷을 입도록 새옷 사 주는 일이 사랑인가요. 더 멋져 보이는 자가용을 장만해서 슬슬 나들이를 다니는 일이 사랑인가요. 아파트를 장만하느라 회사에서 돈벌이만 하면서 집안에 몸을 둘 겨를이 없는 삶이 사랑인가요. 돈을 더 벌고 돈을 더 쓰기만 하는 삶일 뿐, 사랑을 더 나누며 사랑이 더 꽃피도록 하지는 못하는 삶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누구나 삶을 일구는 대로 삶을 바라보며, 삶을 바라보는 결 그대로 말을 하며, 삶을 바라보는 결 그대로 말을 하는 얼거리에 따라 생각하면서, 이 생각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옮깁니다.

 삶을 참다이 사랑할 때에 사진을 참다이 사랑합니다. 삶을 착하게 사랑할 때에 사진을 착하게 사랑합니다. 삶을 아름다이 사랑할 때에 사진을 아름다이 사랑합니다.

 나는 하루 스물네 시간을 집에서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복닥이니까, 집 바깥으로 나돌면서 돈을 버는 데에는 젬병입니다. 그야말로 돈벌이는 거의 못하면서 살아갑니다. 돈을 거의 못 버니까 돈을 거의 못 씁니다. 돈을 거의 못 벌어 돈을 거의 못 쓰니, 돈을 적게 쓰면서 살림을 꾸릴 만한 시골자락 작은 집을 얻어서 지냅니다. 돈을 더 써야 하는 삶이라면 시골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돈을 덜 쓰거나 적게 쓰거나 안 써도 되는 삶이기에 시골에서 호젓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살을 부비면서 따사로운 나날을 누릴 만합니다.

 아이들 잠투정을 고스란히 받아먹으면서 밤새 설잠이 들거나 눈이 벌게진 채 해롱거립니다. 깊은 밤에도 몇 차례 깨어 둘째 오줌기저귀를 갈고 첫째 오줌 마렵다 할 때에 부시시 일어나서 오줌 누는 데까지 데리고 가서 데리고 돌아옵니다. 함께 살아가니까 참으로 고단한 일이 많고, 참으로 고단한 일이 많은 만큼 더 사랑할 수 있으며, 내가 보낸 어린 나날 나는 내 어버이하고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깊이 곰삭입니다.

 아이들이 어느 자리 어느 때에 어여쁜가 하고 느끼려면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여느 어른은 여느 아이들 말을 좀처럼 못 알아듣지만, 아이들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아이들이 ‘아직 제대로 소리내지 못하는 퍽 어설픈 소리’를 잘 가리거나 알아챕니다. 좀 다른 테두리이지만, 아이들은 ‘어른들 누리로 보자면 고장말을 하는 셈’입니다. 이웃 고장에서 지내는 사람들 말을 새겨듣고 받아들이듯 내 아이나 이웃 아이 말을 내 아이 삶과 이웃 아이 삶을 깊이 톺아보면서 새기면 훤히 알아들으며 이야기꽃을 나눌 수 있어요.

 다큐사진을 찍거나 패션사진을 찍거나 무슨무슨 사진을 찍거나 언제나 똑같습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하고 사진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거나 만나야 합니다. 일과 일이라 하더라도 마음과 마음이 오가지 않을 때에는 빛나는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다큐사진을 찍는 곳에서 사진기 앞에 선 사람하고 제대로 섞이거나 녹아들지 못했을 때에는 노상 겉도는 사진만 만듭니다. 패션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무슨 사진이든, 모델이 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얼 잘하는가를 깨닫지 않으면서 뜻과 마음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면 겉치레 사진만 만듭니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사진을 ‘만드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없이 아름답다고 느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지’ 못하고 사진을 ‘만들기’만 한다면 슬픕니다. 안타깝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사랑을 하면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애써 ‘만들지’ 않아도 돼요.

 글은 써야지 글을 만들 수 없습니다. 노래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결대로 불러야지 노래를 억지로 만들듯 쥐어짤 수 없습니다. 만들 때에는 만든다지만, 참다이 만드는 사진이라면 참다이 찍는 테두리에서 만듭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삶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아이키우기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글이고 그림이며 책이자 노래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바야흐로 사람이요 사진이며 사귐입니다. (4344.9.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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