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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니 1 - 바다어린이만화
이진주 지음 / 바다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살아갈 힘을 북돋우는 오직 한 가지
[만화책 즐겨읽기 39] 이진주, 《달려라 하니 (1)》
두 아이를 데리고 음성 할아버지한테 찾아갑니다. 며칠 앞서 음성 할아버지 태어난 날이었는데, 이날 마침 춘천으로 새 보금자리를 보러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며칠 늦은 생일축하를 하러 어제 온 식구가 찾아갑니다.
생일축하를 하러 간 우리 네 식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옆지기가 아침에 집에서 구운 케익을 칼로 알맞게 썰어 그릇에 담아 가져갑니다. 나는 ‘아버지가 되어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로 하나 써서 깨끗한 종이에 옮겨적어 가져갑니다. 첫째는 마냥 신나게 뛰어놉니다. 둘째는 얌전하게 누워서 새근새근 잡니다.
생각해 보면, 누구한테든 생일축하로 가장 좋은 일이란 더 큰 선물이나 더 돋보이는 선물이나 더 값진 선물이 아니라 할 만합니다. 함께 어울리고 나란히 밥을 먹으며 느긋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한때가 가장 좋은 일일 수 있어요. 무슨 선물보따리를 잔뜩 짊어지고 찾아가도 나쁘지는 않을 테지만, 생일을 맞이한 사람한테 찾아가는 ‘내’가 바로 살아숨쉬는 선물일 수 있으리라 느껴요.
곧, 내가 바로 선물이고 옆지기가 바로 선물이며 두 아이가 바로 선물이에요. 나부터 내 생일 때에 누군가 이런저런 선물을 잔뜩 안길 때보다, 서로 얼굴 한번 보자며 찾아와서 몇 마디 말을 섞을 때가 더없이 반갑고 고마우며 즐거워요.
- “이 악바리야! 졌지? 별거 아닌 것이 사나이 앞에서 까불고 있어! 앞으로는 내 앞에서 까불지 마! 알았지? 이 키 작은 못난이 계집애야!” (24쪽)
- “너 달리기 좋아하니? 그, 뭐냐, 육상이란 거 한 번 해 보지 않을래?” “뛰는 거요? 저도 가끔 한 번씩 힘차게 달려 봤음 하고 생각해요. 숨이 차도록! 특히 엄마 생각이 날 때면 엄마 품까지 내처 달려 보고 싶어요. 하늘 끝까지라도.” (80쪽)
1985년에 〈보물섬〉에 실리고, 1989년에 만화영화로 나온 《달려라 하니》(드림필드) 1권을 새삼스레 다시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어느덧 스물예닐곱 해를 먹은 만화가 된 《달려라 하니》인데, 만화책으로나 만화영화로나 참 ‘오래된’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느끼면서, 이 ‘오래된’ 이야기에 깃든 따스함이나 너그러움을 요즈음에는 쉬 찾아볼 수 없다고 느낍니다.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하니를 예쁘게 볼 수도 있을 테지만, 하니나 하니를 둘러싼 사람들은 예쁜 모습이나 예쁜 얼굴이라기보다 귀여운 모습이나 얼굴이라 할 만하고, 조금 더 찬찬히 살피면, 하나같이 동글동글한 모습이요 수수하거나 투박한 모습입니다. 만화 줄거리를 이루면서 하니하고 맞수가 되는 어린이나 어른 한두 사람은 좀 뾰족하거나 모가 났다고 느끼지만, 이들도 나중에는 동글동글하면서 투박한 매무새로 거듭납니다. 도드라질 대목이 없고, 눈부신 모습이 없으며, 남다른 빛깔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도드라질 대목이 없으면서 재미나고, 눈부신 모습이 없으면서 아름다우며, 남다른 빛깔이 없이 착합니다.
오늘날 숱한 만화책이나 만화영화에서는 한결같이 ‘도드라져 보이려는 줄거리’에 ‘눈부시게 보이려는 모습’에 ‘남달리 보이려는 그림’이 가득합니다만, 썩 재미나거나 아름답거나 착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겉보기로는 대단할는지 모르나, 만화책으로든 만화영화로든 두고두고 되읽거나 다시 보면서 즐길 만한 맛과 멋을 헤아리지 못하는 오늘날 만화책이요 만화영화라고 느끼요.
나는 국민학교 4학년 때에 《달려라 하니》를 읽으면서 하루에도 서너 차례 되읽었습니다. 이듬날에도 서너 차례 또 되읽었습니다. 다음날에도 새삼스레 서너 차례 되읽었습니다. 동네에 한 주에 두 번 찾아오는 ‘책 빌려주는 차’에서 〈보물섬〉을 빌려서 사흘에 걸쳐 아홉 번이나 열 번은 가볍게 다시 보면서 가슴으로 빨아들였습니다.
한 번 보고 다시 안 볼 만한 만화라면 처음부터 볼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공부나 숙제를 안 해도 되고 만화책만 보아도 된다면, 아마 하루 동안 열 차례이든 스무 차례이든 되읽을 테지요.
- “잔소리 말고 가서 두부나 두 모 사 와!” “칫! 매일 나만 시키고. 명화 누나는 왜 안 시켜요?” “누나는 대학생인데다 매일 아침마다 열심히 피아노 연습하지 않니?” “아빠는요?” “쿨! 드르렁!” (50쪽)
- “하니!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소꿉장난 하냐?” “김치요.” “에라! 이 녀석아! 이리 내놔! 김치란 이렇게 담근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 … 음식 맛이란 손끝에서 우러나는 정성과 양념 양에 따르는 거란 말야. 마늘과 파, 중요한 거야. 난 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혼자 살며 자취하기 때문에 죄다 알아. 그래서 나는 어려서 혼자도 살아 보고 고생하며 크는 걸 찬성하는 사람이란다. 물론 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안 되지. 그런 나의 기준으로 본다면, 하니! 너를 보고는 안심했다. 넌 얼마든지 혼자 힘으로 꿋꿋하게 지낼 놈이야. 자! 간이 어떤지 맛 좀 봐라!” (76∼78쪽)
하니는 중학교 1학년 나이에 홀로 옥탑방을 얻어 밥을 하고 김치를 담급니다. 그렇다고 살림을 잘 해내지는 못해 홍두깨 선생님이 하나하나 도와줍니다만, 열네 살 나이에 꿋꿋하고 씩씩하게 제 길을 걸어요. 열네 살이나 되었으면서 ‘엄마 품’만 그리워 할 수 있겠느냐 따질 수 있을 텐데, 가슴에 사무치는 고운 사랑이기 때문에 열네 살이 아닌 스물네 살이나 서른네 살에도 이처럼, 하니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직 철이 덜 들었으니 이렇겠지 하고 여길 수 있을 텐데, 철이 덜 들면 철이 덜 든대로 아름다이 살아가면 되고, 철이 더 들었으면 철이 더 든대로 참다이 살아가면 됩니다.
어떤 틀에 박혀야 하지 않습니다. 어떤 틀에 맞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규율이 있고 규칙이 있다지만, 어떤 규율이나 규칙이든 사람들이 사람다이 살아가기 좋도록, 곧 사람이 사람다운 아름다움을 빛내도록 이끌거나 돕는 규율이나 규칙이어야 합니다. 어떠한 틀에 짜맞추려는 규율이나 규칙이라 한다면 독재 정치예요.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규율이나 규칙을 맞출 수 없습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달리는 빠르기가 다르고, 밥 먹는 부피가 다르며, 몸으로 쓰는 기운이 달라요. 어린 하니는 빛처럼 빨리 달린다지만 창수는 어영부영 느립니다. 어린 하니는 응어리진 생채기로 괴롭지만, 창수는 집식구들 따스한 사랑을 받으면서 외로운 하니한테 따스한 사랑을 나눌 줄 압니다. 홍두깨 선생은 어릴 적부터 가난과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시달렸지만, 이 모든 아픔을 남을 해코지하는 데에 쏟지 않아요. 이 모든 아픔을 내 이웃과 동무를 더 따사로이 보듬는 착한 넋으로 북돋웁니다. 나애리는 달리는 솜씨 하나를 타고났으나, 이 타고난 솜씨로 고운 빛줄기를 갈고닦는 데에 끌어올리지 못합니다. 타고난 솜씨를 끌어올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않고 찾지 못하며 찾을 뜻이 없습니다.
만화책 《달려라 하니》는 이토록 다른 사람들이 한 동네에서 얼크러지면서 툭탁툭탁 쌓아올리는 사랑을 들려줍니다. 어설퍼도 기쁜 사랑을 쌓아올리고, 모자라도 너그러운 사랑을 쌓아올리며, 슬프기에 눈물로 어루만지는 사랑을 쌓아올립니다.
- 놀림을 받아도 또 한 번 쳐다보게 되는 아이. 그렇게 좋은 감정. 사춘기가 오는 소리. (61쪽)
- ‘엄마는 그저 하니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돼! 난 엄마에게 아무것도 안 바랄 거야. 언제나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 가슴의 기억만 있으면 돼.’ (130쪽)
- ‘그 집은 처음부터 내가 살던 집이야. 자기들 멋대로 팔아버렸지만 내 집이야. 그 집, 거기엔 엄마의 기억이, 그 집 거기엔,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이. 우리 엄마의 체취가 남아 있는 집을 빼앗은 계집애! 다음에도 까불면 가만 안 놔둘 거야. 조심해! 가만 안 놔둘 테니까!’ (157쪽)
한창 가을로 접어든 날이기에 이제부터 낮이 짧아지고 어스름이 일찍 찾아듭니다. 슬슬 어스름이 찾아들 무렵 네 식구는 멧골자락 작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할아버지가 자가용을 몰아 데려다주십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첫째 아이가 곯아떨어집니다. 첫째 아이는 할아버지 차를 타기 앞서까지 지칠 줄 모르는 듯 ‘어쨌든 졸린 눈’으로 신나게 놀다가, 할머니 품에 안겨 한 오십 미터쯤 달릴 무렵 아주 깊이 잠듭니다. 온 기운을 쏟아 마음껏 놀았겠지요. 모든 힘을 터뜨려 신나게 뛰었겠지요.
살아가는 힘은 사랑입니다. 살아내는 기운은 믿음입니다.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기에 오늘 하루를 더 살아냅니다.
돈이 있기에 살아가지 않습니다. 든든한 일자리가 있대서 살아내지 않습니다. 자가용이 없으면 걷거나 버스나 택시를 타면 됩니다. 자전거도 있으며, 때로는 다른 사람 차를 얻어 타면 돼요. 집이 없으니 다른 사람 집에서 얻어 지내거나 방 하나 얻어 함께 살아갑니다. 나한테 돈이 없으면 누군가 나보다 돈이 더 있는 사람한테서 얻습니다. 나한테 땅이 없으면 누군가 땅이 있는 사람한테서 빌려서 흙을 일굽니다.
나는 내가 더 가지거나 더 누린다고 여기는 무언가를 나눕니다. 글을 쓰는 나는 글을 나눌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나는 사진을 나눌 수 있습니다. 케익을 굽고 뜨개양말을 뜰 수 있는 옆지기는 집에서 구운 케익을 나누고 손수 여러 날 걸쳐 뜬 뜨개양말을 나눕니다.
- 악바리라 불리워 버린 소녀. 부릅뜬 두 눈과 굳게 다문 입. 키 작은 몸으로 무서운 스피드를 내는 소녀. 그러나 그 뒷모습은 언제나 쓸쓸한, 그 애 이름은 하니! (26∼27쪽)
- 아직은 엄마 품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 부릅뜬 두 눈이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펑펑 쏟아져내릴 것 같은 아이. 악바리라 불리는 아이, 하니! (33쪽)
어느새 저녁이 찾아들고 반달이 뜹니다. 어느덧 반달은 기울고 머잖아 새벽이 희뿌윰하게 밝겠지요. 온갖 풀벌레는 거침없이 웁니다. 풀벌레들은 저희 목숨을 오롯이 누리면서 새벽이고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밤이고 울음소리를 곱게 나누어 줍니다. 나는 이 풀벌레 울음소리를 받아먹으면서 가을날을 실컷 누립니다. 고운 결 노랫소리는 귀로도 스미고 살갗으로도 스미며 가슴으로도 스밉니다. 새근새근 자는 두 아이 몸으로도 스미고, 곁에서 갓난쟁이한테 젖을 물리는 옆지기한테도 스밉니다. 작은 살림집에 건사하는 책들한테도 스밀 풀벌레 노랫소리이고, 날마다 우리 식구들 고맙게 먹는 밥그릇에도 스밀 풀벌레 울음소리입니다.
나는 이 가을날 풀벌레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우면서 고맙고 즐겁습니다. 나는 이 가을날 책상맡에 《달려라 하니》를 얌전히 꽂고는 백 번이고 즈믄 번이고 신나게 꺼내어 다시 들출 수 있어 반가우면서 고맙고 즐겁습니다. 네 살 아이도 《달려라 하니》를 혼자 스스럼없이 꺼내서 주루룩 넘겨서 보곤 합니다. 아이는 이선희 님이 부른 만화영화 주제노래를 아주 잘 부릅니다. (4344.9.7.물.ㅎㄲㅅㄱ)
― 달려라 하니 1 (이진주 글·그림,드림필드 펴냄,1996.10.27./판 끊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