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비룡소의 그림동화 34
마이클 베다드 글, 바바라 쿠니 그림, 김명수 옮김 / 비룡소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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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으로 살아내는 하루가 시로 태어나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2] 바바라 쿠니·마이클 베다드, 《에밀리》(비룡소,1998)



 이제 내 얼굴은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 얼굴입니다. 내가 얼마나 어버이 노릇을 하는지 알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내가 어버이라고 여길 겨를이 없이 지냅니다만, 나를 아버지로 바라보는 두 아이가 시골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며 함께 복닥거립니다.

 이제 나는 내가 홀로 살림을 꾸리며 살아가던 지난날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헤아리지 못할 뿐 아니라, 나를 낳아 함께 살아온 내 어버이하고 고향집에서 지내던 때가 언제쯤이었나 또한 돌아보지 못합니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기 때문일 수 있고, 집일을 도맡으며 눈이든 코이든 뜰 겨를이 없어 이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삽니다. 어제나 모레나 글피를 사는 사람은 없어요. 오직 오늘을 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 아니면 좀처럼 떠올리지 못한달 수 있어요.

 옆지기와 아이들이 깊이 잠든 새벽녘 일어나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엊그제는 내 아버지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아이들 할아버지 태어난 날이었어요. 나는 우리 살붙이들 새로 깃들 보금자리를 찾느라 바깥마실을 하느라, 그만 할아버지한테 찾아뵙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할아버지를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내 아버지가 퍽 서운히 여겼을 텐데, 예전에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바로 오늘 아이들과 함께 찾아뵈어 인사하지 못했으니 서운할밖에 없습니다.

 곰곰이 지난날을 되짚습니다. 내 어버이와 형이랑 고향집에서 지내던 때에 아버지한테 무엇을 선물했던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고향집을 떠난 뒤로는 아버지가 태어난 날이든 어머니가 태어난 날이든, 전화 한 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지냈다고 느낍니다. 마음으로는 ‘오늘이 아버지 태어난 날이구나.’, ‘그래, 오늘은 어머니 태어난 날이야.’ 하고 헤아립니다. 그닥 멀지 않은 데에서 일하며 살아가던 나는 살짝 말미를 얻어 찾아가지 못합니다. 마음속으로 빌고 마음속으로 사랑인사를 보냅니다. 이 사랑인사를 받으셨는지, 이 사랑인사를 안 받으셨는지 잘 모릅니다. 전화나 편지로 소식을 띄우지 못하고 마음만 보낼 때에 즐거이 받으시는지 잘 모릅니다. 거꾸로, 내 아버지나 어머니도 당신 두 아들한테 마음으로 사랑인사를 보내는데, 나 또한 이 사랑인사를 못 느낄 수 있어요. 못 알아챌 만큼 무언가에 빠지거나 바쁘다든지, 못 깨달을 만큼 허둥지둥 휩쓸리는 삶일는지 모릅니다.


.. 우리가 이사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우편 구멍으로 편지가 들어왔습니다. 나는 편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는 달려가서 그걸 주워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에 난 좁다란 창으로 밖을 살짝 내다보았어요. 거기엔 아무도 없고 겨울만, 온통 새하얀 겨울만 있었습니다 ..  (9쪽)


 아이들 할아버지 태어난 날에 찾아가지 못하는 쓰디쓴 마음에, 시외버스에서 공책을 꺼내어 시를 하나 씁니다. 한가위를 앞두고 먼저 한 번 찾아가고, 다시 한가위에 찾아가자고 생각하면서 공책에 시를 한 줄 두 줄 적습니다. 나한테는 돈이 없으니 맞돈을 봉투에 넣어서 건네지 못합니다. 나로서는 이것저것 무슨 물건을 사서 드릴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떡이나 빵이나 케익을 빚어서 선물할 만큼 이러한 먹을거리를 마련할 솜씨가 없습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공책에 적바림한 시 하나를 깨끗한 종이에 얌전한 글씨로 옮겨적어 슬며시 내미는 한 가지라고 느낍니다.

 ‘사름벼리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 읍내마실을 다녀오는 시골길 오르막, / 여기만 넘으면 집에 다 옵니다. / 벼리는 이무렵 늘 아버지한테 말을 겁니다. / “나 내리고 싶은데. / 나 달리고 싶은데.” / 가방에 따뜻한 만두가 있을 때처럼 / 벼리 어머니 함께 먹을 무언가가 있지 않으면 / 오르막 한켠에 자전거를 세우고 / 수레 띠를 풀어 아이를 번쩍 안아 내립니다. / 오르막에서 벼리는 헉헉대면서도 / 아버지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걷습니다. / 아버지는 자전거 끌랴 아이 손 잡으랴 / 아주 뻑적지근합니다. / 이내 오르막이 끝나고 판판한 길, / 벼리는 마음껏 뛰고 달리며 노래합니다. / 멧새와 함께 멧골아이가 됩니다.’

 이렇게 쓴 시 하나를 드리려 생각하는데, 문득 이 시 하나만으로는 모자라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집 아이는 둘이니까, 첫째 아이 이야기만 시를 써서는 안 되지요. 둘째 아이 이야기도 시를 써야지요. 여기에 옆지기 이야기와 내 이야기까지 시를 따로따로 하나씩 써야겠다고 느낍니다. 모두 네 꼭지를 마무리지어 정갈히 적바림해서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아래에는, 눈 속에서 정원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 집 보도를 따라, 길을 건너, 노란 집의 울타리 안까지 이어진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 어쩌면 노란 집에 사는 아주머니도 두려워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숨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이 낯선 사람들이 찾아가면 달아나는 거예요 ..  (10, 18쪽)


 나를 좋게 바라보며 밥이나 술을 사 주는 분이 있습니다. 나한테는 돈이 얼마 없고, 바깥밥이나 바깥술을 즐길 만큼 살림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아주 고맙게 밥이며 술을 얻습니다. 밥집이나 술집에서 뒤쪽을 쓸 수 있는 빈 종이 하나를 마련합니다. 숟가락을 싸던 얇은 종이가 되든, 술병에 붙은 딱지가 되든, 살살 펴거나 벗깁니다. 이런 다음 이 작은 종이에 짤막하게 시 한 꼭지 적바림합니다. 내가 오늘 하루 고맙게 살아내면서 받아들인 좋은 넋을 시 한 꼭지로 모두어 적바림합니다. 나는 누구한테 밥을 사 주거나 술을 사 주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작은 종이쪽에 시를 적어 건넬 수 있습니다.

 내가 쓴 시가 잘 쓴 시인지 못 쓴 시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담아서 시를 쓸 뿐입니다. 나는 내 모든 기운과 땀을 들여 살아내는 이 하루를 고마이 여기면서 이러한 삶을 시로 여밀 뿐입니다.

 내가 쓴 시를 알뜰히 엮어 책을 내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쓴 시를 더 많은 사람이 즐겁게 읽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풀벌레가 하루 내내 한결같이 노래하듯 내 삶을 한결같이 일구면서 시를 씁니다. 나는 바람이 하루 내내 이리로 흐르고 저리로 흐르듯 내 삶을 꾸준히 다스리면서 시를 씁니다.

 애틋한 옆지기하고 어울리는 시골집 삶자락이 시가 됩니다. 살가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과 쓰다듬는 손길이 고스란히 시 한 조각입니다. 기저귀 한 장을 빨며 시 한 줄을 읊습니다. 기저귀 열 장을 빨며 시 열 줄을 적어내립니다. 햇볕에 보송보송 마른 빨래를 걷으며 시 한 줄을 적습니다. 잘 마른 빨래를 첫째 아이랑 함께 개면서 시 두어 줄을 끄적입니다.


.. “아빠, 자장가 불러 주세요.” 내가 말했습니다. 아빠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말이 꽃잎처럼 이불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그 꽃잎들이 내려앉는 소릴 들으며 잠이 들었어요 ..  (14쪽)


 바바라 쿠니 님이 그림을 넣고 마이클 베다드 님이 글을 쓴 《에밀리》(비룡소,1998)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에밀리’라는 사람이 ‘에밀리 디킨슨’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 이분이 맞으면 맞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면 되고, 이분이 아니라 하면 아닌 대로 가슴을 쓰다듬으면 됩니다. 조용히 살아가며 조용히 시를 길어올린 에밀리 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으로 조용히 맞아들이면 넉넉합니다.

 노래나 춤이 아닌 시이기 때문에 이처럼 조용히 즐기지는 않습니다. 노래도 얼마든지 조용히 즐기고, 춤도 얼마든지 조용히 즐깁니다. 백만 사람한테 사랑받으며 백만 음반이 팔려야 아름다운 노래이지 않습니다. 무슨무슨 가수뽑기나 노래잔치에서 1등이 되어야 훌륭한 노래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사무치는 이야기를 내 마음을 건드리는 가락에 담아 내 마음을 쓰다듬듯 부르면 좋은 노래입니다.

 흐르는 달빛을 바라보고, 노래하는 별빛을 느끼며, 사랑하는 바람소리를 맞이하면 시가 됩니다. 구수하게 익는 밥내음을 느끼고, 아이하고 함께 먹을 일을 생각하며 도마질을 하면서, 차츰차츰 수저질을 야무지게 하는 아이 매무새를 받아들이면 시가 태어납니다.


.. 나는 그분 옆에 섰습니다. 우리 옷은 둘 다 눈처럼 하얀색이었어요. 나는 그분의 무릎에 놓인 종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게 시예요?” 내가 물었습니다. “아니, 시는 바로 너란다. 이건 시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일 뿐이야.” 창턱 위에 놓아 둔 초롱꽃처럼 그분의 목소리는 가볍고도 예민했습니다. “아주머니께 봄을 좀 가져왔어요.” 내가 말했습니다. 나는 호주머니에게 백합 알뿌리 두 개를 꺼내 그분의 무릎에 내려놓았습니다 ..  (29쪽)


 에밀리라는 분을 바라보는 아이는 에밀리라는 분한테 시입니다. 에밀리라는 분을 바라보는 아이로서는 바로 이 아이가 바라보는 에밀라라는 분이 시일 테지요. 서로서로 고운 삶이기에 서로서로 고운 시를 온몸으로 씁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열어 만나기에 서로서로 사랑스레 시를 읊습니다. “시가 되려고 애쓰”고 “봄을 가져옵”니다.

 날마다 차리는 밥상이 지겹지 않고, 날마다 먹는 밥이 물리지 않는 까닭은 오직 하나, 이 밥상과 밥이 모두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가 사랑이고, 새로 태어나 또 나란히 살아가는 아이들이 사랑입니다.

 한 집에서 같이 살아도 사랑이지만, 먼 데에서 따로 살아도 사랑입니다. 착한 목숨을 얻어 태어난 어느 날 하루부터 사랑할 날이요, 다른 여느 날 모두 사랑할 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시를 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시를 받아먹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온몸과 온마음이 시가 되어 오늘 하루를 살아냅니다. (4344.9.5.달.ㅎㄲㅅㄱ)


― 에밀리 (바바라 쿠니 그림,마이클 베다드 글,김명수 옮김,비룡소 펴냄,1998.3.15./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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