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존스 -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엘리엇 고온 지음, 이건일 옮김 / 도서출판 녹두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어머니 이소선’은 사랑으로 맺은 눈물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2] 엘리엇 고온,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


- 책이름 :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
- 글 : 엘리엇 고온
- 옮긴이 : 이건일
- 펴낸곳 : 녹두 (2002.12.27.)
- 책값 : 13000원


 (1) 어머니


 이 나라 천만 노동자 모두한테 어머니와 같다던 이소선 님이 2011년 9월 3일 아침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숨을 거둔 이소선 님한테는 지난 1970년 11월 13일부터 언제나 ‘어머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돌이키면, 1970년 11월 13일 뒤로도 어머니였으나, 이에 앞서도 어머니였습니다. 천만 노동자한테 어머니였든 아들아이 하나한테 어머니였든, 여러 아이한테 어머니였든, 이소선 님은 어머니로 살았습니다.

 어머니로 살아가기 앞서는 예쁜 딸이었겠지요. 당신을 낳은 어머니한테 더없이 예쁜 딸이었을 이소선 님이었겠지요. 이소선 님이 아들 전태일한테 어머니가 되기 앞서, 또 이 나라 노동자한테 어머니가 되기 앞서, 당신을 알뜰히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으며, 당신을 알뜰히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당신은 당신 아들아이를 비롯해 숱한 사람들한테 어머니 품을 따사로이 내밀 수 있었으리라 느낍니다.

 
.. 그녀는 유럽과 미국에서 자본이라는 물결에 내던져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경험했다. 그녀는 아일랜드에서 불행과 죽음을 목격했고, 토론토에서 노동과 노동계급의 현실을 보고 배웠다. 그녀는 23세의 나이에 자신의 희망을 펼칠 수 있는 나라, 미국으로 들어갔다 … 그녀는 멤피스에서 탐욕이 어떻게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또 전쟁으로 노예들이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을 목격했다. 여기서 그녀는 폭발 일보 직전에 있는 인종간 증오와 계급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보았다 … 마더 존스는 노동자들의 빈곤과 동경, 형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업가 부인들과 중산층 직장 여성들을 엘리트주의자들로 규정했다 … 마더 존스는 존경과 안정에 대한 그들의 탐욕을 철저히 불신했으며, 그런 욕심에 배신의 씨앗이 자리잡게 된다고 믿었다 ..  (62, 78, 356, 372쪽)



 흙으로 돌아간 이소선 어머님을 생각합니다. 당신은 땀흘려 일하는 여느 사람들 누구한테나 사랑스러운 어머님입니다. 아이들을 착하게 돌보면서 다 함께 착하게 살아가고픈 꿈을 나누는 사랑스러운 어머님입니다.

 어느 어머니라 하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플 손가락이 없습니다. 열 손가락이 모두 아픕니다. 어머니한테는 혼잣힘으로 살림을 잘 꾸리는 아이도 사랑스럽지만, 도무지 제 살림살이를 일구지 못하는 가녀린 아이도 사랑스럽습니다. 아니, 도무지 제 살림살이를 일구지 못하는 가녀린 아이한테 더 마음을 쏟고 더 땀을 들여 더 기운을 내도록 북돋웁니다. 따돌림받으며 괴로운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입니다. 온갖 궂은 일에 시달리면서 아파하는 아이를 따사로이 보듬는 어머니입니다.

 당신 아이를 함부로 해코지하거나 들볶는 누군가 있다면, 스스럼없이 곧바로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아이를 지키는 어머니입니다. 몽둥이나 회초리나 전쟁무기 따위로 아이를 지키지는 않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오직 당신 자그마한 몸뚱이 자그마한 사랑으로 아이를 지킵니다.

 아이를 돈으로 지키지 않습니다. 아이를 이름값으로 지키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키, 조그마한 손, 조그마한 몸뚱이라 하지만, 어머니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꿋꿋하게 당신 아이를 건사합니다.


.. 경찰은 자본가들이 요구한 대로 위협과 폭력으로 대응했다. 그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당이 1876년에 발족되었다 … 네 개 철도회사들은 경기 침체기에도 주주들의 배당금은 꼬박꼬박 나눠 주면서도, 직원들의 임금을 10퍼센트 삭감(그것도 1년에 두 번)했다 … 자본가들·학자들·언론인들은 자립을 촉구하였고, 자유방임주의 경제와 다윈의 적자생존론은 그런 위기가 불가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야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구호물품을 마구 퍼 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다녔다 ..  (86, 105쪽)


 곰곰이 생각합니다. 모든 노동자한테 어머니와 같은 이소선 님이 있다면, 이소선 님처럼 모든 노동자한테 아버지와 같은 누군가는 있을까 하고. 일하는 모든 사람들 꿈과 믿음을 지키며 보살피려는 따사로운 어머니 이소선 님처럼, 일하는 모든 사람들 꿈과 믿음을 지키며 보살피려는 따사로운 아버지는 있을까 하고.

 이리 생각하고 저리 톺아봅니다. 그렇지만 좀처럼 ‘따사로운 어머니’ 같은 ‘따사로운 아버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돈도 힘도 이름도 없다지만, 작은 맨몸뚱이를 내맡기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처럼, 이 작은 맨몸뚱이 하나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누가 있을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참말 여느 아버지는 없을까요. 참말 여느 아버지는 당신 여느 아이들을 여느 사랑으로 보듬지 못하는가요.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자랍니다.

 아이들은 손꼽히는 학원을 여럿 다닌다고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손꼽히는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거쳐 손꼽히는 대학교를 다닌 다음 손꼽히는 이웃나라에 배움길을 떠나야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손꼽히는 회사에 들어가 손꼽힐 만큼 높은 연봉을 받아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스스로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 사랑을 나눌 때에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저희가 크기까지 받은 사랑씨를 저희 새로운 아이한테 곱게 물려주는 사랑길을 걸을 때에 슬기롭습니다.


.. 노동조합은 넓은 의미의 가족이었다. 노동조합은 조금 더 많은 돈을 버는 남자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 미국의 자본가들은 시민동맹과 같은 어용단체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시민동맹은 매우 공격적으로 노사관계에 개입했으며 8시간 근로제와 같은 노동입법의 반대에 앞장서고 있었다 … 광산주들 역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들은 경비원들을 유지하는 데 수만 달러가 넘는 비용을 썼다. 조업이 멈춰진 광산은 추가로 수십만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손실은 미국 자본주의자들에 대한 인식이 자본가에서 깡패나 불량배와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비춰진 것이었다 … 부를 축적하는 일과 자유를 짓밟는 일, 이 두 가지 일은 같은 일이었다 ..  (150, 176, 342쪽)


 이소선 님은 ‘노동자 어머니’요 ‘전태일 어머니’입니다. 이소선 님은 참말 고스란히 ‘어머니’입니다. 나이 여든한 살이 되어도 ‘어머니’입니다.

 우리와 넓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미국땅에서는 백 살 나이를 살아낸 메어리 해리스 존스 님이 ‘어머니’입니다. 이른바 ‘마더 존스’ 님은 여든을 넘고 아흔을 넘긴 때에도 언제나 ‘어머니’였습니다. 할머니가 아닌 어머니요, 따사로운 사랑과 따사로운 손길로 가난하고 힘겨우며 외롭거나 지친 모든 착한 사람들을 넉넉히 감싸안으면서 껴안는 좋은 어머니였어요.


 (2) 사랑


 엘리엇 고온 님이 쓴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녹두,2002)라는 책이 있습니다. 2002년에 이 책이 나오기 앞서까지 1978년에 한글로 옮겨진 《마더 죤스》(평민사,1978) 하나만이 ‘노동자한테 어머니인 사람이 일군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아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 비로소 자서전을 쓴 메어리 해리스 존스 님은 《마더 죤스》라는 책에서 당신을 ‘영웅’이나 ‘성녀’처럼 그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부르는 이름 ‘어머니’ 그대로, 어머니로서 아파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따사롭게 돌보고픈 마음을 찬찬히 그려냅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일본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어머니들은 당신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도시락을 예쁘게 꾸려 보자기에 싸서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가고는 ‘밥 좀 먹으면서 일하’라고 북돋웁니다.

 고추장을 담가서 아이들한테 찾아갑니다. 간장을 담고 된장을 담아 아이들한테 찾아갑니다. 손수 흙을 일구어 거둔 곡식을 손수 갈무리해서 고추장이며 간장이며 된장을 담습니다. 김치를 담고 나물을 무치며 닭을 잡아 곱니다.

 때때로 이러한 일을 맡는 아버지가 있습니다만, 아버지들은 당신 아이들이 밥을 굶을까 걱정하는 일이 퍽 드뭅니다. 당신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려고 소매를 걷어붙이는 아버지란 참으로 드뭅니다.


.. 4반세기 이상을 그녀는 아동노동, 노동대중의 빈곤, 미국의 자유파괴 등, 사람들이 듣기 거북해 하는 진실을 폭로하는 사람이었다 … 그녀는 남녀 노동자들에게 세상은 그들의 손으로 이룬 것, 그래서 세상은 바로 그들의 것이라는 믿음을 분명히 심어 주었다 … 가혹한 착취의 시기에, 그녀가 벌인 싸움은 인간다운 노동시간 확보와 적정한 임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조직화되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돋보였다. 그녀는 연설을 하고, 미국 이곳저곳을 다니며 노조에 가입시키고, 잠은 노동자들의 오두막·하숙집, 아니면 친구들의 집에서 해결하는, 미국 행동주의자들의 자니 애플시드라 할 수 있었다 ..  (25, 26∼27쪽)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마더 존스》라는 책이름이지만, ‘어머니 존스’, 곧 ‘존스 어머니’는 조금도 “위험한 여성”이 아닙니다. 존스 어머니는 참말 존스 어머님입니다. 이소선 어머님은 참말 어머님이듯, 존스라는 분도 어머님이에요.

 힘든 아이들을 코앞에서 버젓이 보는데, 이 힘든 아이들을 따사롭게 얼싸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픈 아이들이 눈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외로운데, 이 아픈 아이들을 포근하게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싸우는 사람 존스 어머니가 아닙니다. 싸우는 사람 이소선 어머니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 존스 어머니요, 사랑하는 사람 이소선 어머니입니다.

 《미혼의 당신에게》(백산서당,1983)라는 책을 읽을 때에도 이 책을 일구어 내놓은 다나까 미찌꼬라는 일본 ‘어머님’은 참말 어머니로서 가녀린 사람들을 사랑하는 눈물과 웃음을 나누려 했구나 하고 느낍니다. 지식을 뽐낸다든지 학식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지식을 우러르거나 학식을 섬길 까닭이 없습니다.

 오직 아이들을 사랑할 뿐입니다. 오로지 아이들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갈 터전을 아끼며 보살필 뿐입니다. 서로 미워한다든지, 나 홀로 1등을 차지하면서 우쭐거릴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할 뿐이요, 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밥술을 나누는 기쁨을 맛볼 뿐입니다.


.. 마더 존스로서 그녀의 생애는 정말 놀라운 용기의 이야기, 정말 훌륭한 싸움의 이야기다. 그녀 세대의 다른 사람들이 그 시대의 문제들을 회피하는 동안, 마더 존스는 그것들로 불타올랐다 … 마더 존스는 노동자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들에 의지해야 하는 것을 점점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 마더 존스는 무소유의 이상을 잊지 않았고, 그것의 찬미자가 되었다. 그녀의 자기부정의 삶은 경박함과 물질주의를 꾸짖는 것이었다 … 그날(100번째 생일) 마더 존스는 뉴스·영화 기자들에게 예전에 서운했음을 털어놓으면서, “미국은 돈으로 세워진 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피로 세워졌어요. 미국의 자유를 지킬 권능이 노동자들의 수중에 있는데, 노동자들은 그 권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직 배우지 못한 거요. 또 여성들의 손에도 아주 놀라운 능력이 주어졌건만, 그들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모른다오. 자본가들은 그 여인네들을 사교클럽에 끌어들이며, 자기들 입맛에 맞는 숙녀로 만들려고 하지. 우리 나라엔 그런 숙녀는 필요없고, 여성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  (99, 146, 204, 444쪽)


 어머니 존스는 아픈 사람들하고 함께 살았습니다. 어머니 존스는 외로운 사람들하고 같이 지냈습니다. 어머니 존스는 슬픈 사람들하고 손을 잡았습니다. 어머니 존스는 배고픈 사람들한테 밥을 차려 주었습니다.

 사랑은 혁명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제도개혁이나 선거민주주의에서 싹트지 않습니다. 사랑은 높은 연봉이나 걱정없는 공무원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자가용이나 아파트에서 비롯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펄떡펄떡 뛰는 가슴에서 나타납니다. 사랑은 솔솔 김이 나는 따뜻한 밥그릇에서 싹틉니다. 사랑은 시원한 물 모금과 기름진 논밭에서 태어납니다. 사랑은 굳은살 박힌 손으로 빨래하고 바느질하며 이부자리를 까는 삶에서 비롯합니다.


.. 그녀는 인종·종교·국적을 초월해서 노동계급 연대의 대오를 갖추자는 호소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자본가들은 남부와 북부를, 미국 본토인과 외국인들로 갈라서 여러분의 대오를 이간시켜 정복하려 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공동의 명분을 위해 사용자와 싸우는 광산 노동자들입니다. 자본가들의 칼끝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목을 조이고 있습니다. 가난·고통, 그리고 여러분 자녀들의 미래가 여러분에게 더 강력하게 연대하라고 합니다 … 나는 정의를 위한 계급투쟁에 나설 때면, 동부와 서부·남부와 북부를 가리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미국에 있는 모든 노동자 자녀들의 발에서 쇠고랑이 벗겨진 것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살아 있다면, 그런데 아프리카 흑인 아이 한 명의 발에서 쇠고랑이 아직 벗겨지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그곳으로 가서 또 싸울 것입니다.” ..  (183쪽)


 ‘어머니 이소선’은 사랑으로 맺은 눈물입니다. ‘어머니 존스’는 사랑으로 이룬 웃음입니다.

 어머니 이소선이나 어머니 존스를 괴롭힐 뿐 아니라, 어머니 이소선과 어머니 존스가 도우면서 지키려 하던 착한 사람들을 들볶은 이들은, 사랑을 모르거나 사랑을 잊거나 사랑을 등지면서 그예 돈바라기로 삶을 깎아먹은 안쓰러운 넋입니다.


 (3) 아름다운 삶을 찾기


 우는 아이를 잘 달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아버지들은 여느 어머니들보다 우는 아이를 잘 달래지 못합니다. 우는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울음을 그치면서 마음을 쉬곤 합니다.

 밥을 잘 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아버지가 차리는 밥을 떠올리면서 그리는 여느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예부터 집일을 여자가 도맡도록 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아버지들 스스로 아이한테 ‘아버지 손맛’을 물려주려고 힘쓰는 일이란 아주 드뭅니다. 여느 아버지는 여느 아이한테 따순 사랑을 좀처럼 물려주지 못하나, 여느 어머니는 여느 아이한테 당신 여느 손길로 따순 사랑을 언제나 물려줍니다.

 보드라운 목소리로 싱그러운 노래를 불러 주면서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함께 노는 아버지가 어김없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아버지는 아이하고 노래하며 놀 겨를을 그닥 내지 못합니다. 여느 아버지는 여느 일터로 가서 여느 돈벌이를 하느라 바쁘거나 얽매이기 일쑤입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아이와 오래오래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나누려고, 과장 자리이든 부장 자리이든 사장 자리이든 스스럼없이 내려놓으면서, 하루 내내 아이하고 어울리겠다고 나서는 여느 아버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느 어머니는 당신 여느 아이하고 곱게 노래를 부르면서 오순도순 여느 놀이를 즐깁니다. 여느 아이를 여느 손길로 사랑하고자 여느 어머니는 이런저런 일자리 이런저런 이름값을 얼마든지 곱게 내려놓습니다.


.. 그녀가 뉴스에 처음 등장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아동들의 5분의 1이 빈곤 속에 있다. 그들은 마더 존스의 자식들이다. 어엿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계급 또한 그녀의 자손들이다.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며, 현 시대에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마더 존스의 자식인 것이다 ..  (30쪽)


 지난 2008년부터 아이들 기저귀를 빨래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삐 살아갑니다. 갓난쟁이들은 쉬가 마려우면 그냥 쉬를 하니까 빨랫감이 하루에 마흔 장이나 쉰 장이 나오기도 하고, 두 살쯤은 지나야 낮오줌을 가릴 만하며, 세 살쯤 되어야 비로소 밤오줌을 가립니다. 둘째가 두 살을 지나고 세 살을 지날 두어 해 뒤까지 이 기저귀 빨래는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바지런히 빨래를 하고 빨래를 널며 빨래를 걷다가는 빨래를 갭니다. 옆지기가 조금씩 몸을 추스르면 빨래를 나누어 맡고 빨래 걷기와 개기도 하나둘 나누어 맡습니다. 네 살배기 아이는 아직 서툴지만 빨래를 널거나 걷거나 갤 때에 어설픈 손짓으로 빨래를 만지작거립니다. 곧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을 지나면서 빨래 널기와 걷기와 개기를 시나브로 야무지게 해낼 수 있겠지요.


.. 부는 가난의 충격적인 장면 가까이에서 뻔뻔스럽게 스스로를 뽐내고 있었다 ..  (81쪽)


 빨래기계를 쓴다면 빨래하는 집일에서 조금은 홀가분할는지 모릅니다. 자가용을 굴린다면 자전거에 수레를 달아 아이를 태우고 읍내로 장마당 마실을 다니느라 헉헉거리며 땀으로 흠뻑 젖지 않아도 좋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오늘 하루를 보내는 이 삶을 좋아합니다. 손으로 하는 빨래가 좋기도 하지만, 돈이 없으니 빨래기계를 들이지 못합니다. 두 다리로 걸을 때나 자전거를 몰 때에 시원하며 즐겁기도 하지만, 돈이 없으니 자가용을 굴리지 못합니다.

 네 식구는 가만히 꿈을 꿉니다. 우리한테 돈이 없으나 우리한테 돈이 생긴다면, 우리한테 돈이 모자라지만 우리한테 돈이 넉넉하다면, 우리한테 새로 생기거나 넉넉한 돈으로 빨래기계나 자가용이 아닌 고운 흙으로 살가운 논밭이나 멧자락을 장만할 꿈을 꿉니다. 몸을 살찌울 너른 들판과 멧자락을 꿈꿉니다. 마음을 살찌울 아름다운 책을 ‘언제 생길는지 알 길이 없는 돈’이 들어올 날 신나게 장만하자고 꿈을 꿉니다.

 한 번 살다가 죽은 다음 또 사람으로 다시 살 수 있을는지, 아니면 목숨은 이제 끝일는지, 아니면 넋만 살아남아 어딘가를 떠돌는지는 모릅니다. 어찌 되든, 이렇게 사는 동안에는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중에 흙으로 돌아갈 때에는 또 이때대로 아름다운 내 넋이 되도록 보살필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지요. (4344.9.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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