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삶
― 사진을 찍는 아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옮긴 살림집을 한 해만에 다른 시골로 옮깁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알아보고 오래오래 깃들 시골로 살림집을 마련해야 했을 테지만, 이렇게 한 해를 살고 다시금 버겁게 짐을 꾸려 새로운 시골집으로 가는 일은 우리한테 또다른 이야기를 베푼다고 느낍니다. 옮길 때에는 옮기더라도 시골에 깃들며 새 시골을 꿈꾸는 동안 마음이 따사로우면서 넉넉하거든요.
새 보금자리를 꿈꾸면서 사진기를 하나 새로 장만합니다. 처음 꿈꾸던 새 보금자리는 전라남도 끝자락 바다와 갯벌을 품에 안은 작은 시골마을입니다. 그러나 이곳으로 가자니 돈이 퍽 많이 있어야 하고, 밑돈이 거의 없는 우리로서는 살림을 짐차에 실어 이곳으로 가는 동안 길에서 모든 돈을 다 써야 하고 말기에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알아본 시골자락은 얼마 안 되는 우리 밑돈으로도 짐차를 불러 옮기는 돈하고 살림집을 조금 손질하는 데 들 돈을 댈 만합니다. 그래서 밑돈 가운데 얼마를 덜어 조그마한 디지털사진기 하나를 장만합니다.
새 디지털사진기는 옆지기하고 아이가 갖고 놀듯 쓸 만한 녀석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쓸 수 있습니다. 물속 십 미터쯤 들어가도 찍을 수 있답니다.
돌이 되기 앞서부터 아버지 무거운 사진기를 기운차게 들어서 사진을 찍던 첫째 아이는 자그맣고 가벼운 사진기를 처음 쥐면서 제대로 못 찍습니다. 자꾸 흔들리고 이리저리 엉성합니다. 그렇지만 이내 새 사진기에 손과 몸을 맞춥니다. 다만, 조그마한 사진기는 조그마한 만큼 기능이 적거나 달라, 아버지가 쓰는 사진기처럼 불을 안 터뜨리고 찍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쓰는 디지털사진기는 완전수동으로 맞추어 어두울 때에는 어두운 감도에 맞추지만, 새 디지털사진기는 완전수동으로 쓸 수 없을 뿐더러, 불을 터뜨리지 않고 찍으려 해도 사진기 앞쪽에서 작은 알전구에서 불을 앞으로 쏩니다.
아버지가 사진기를 들고, 아이가 사진기를 듭니다. 이러하건 저러하건, 아버지는 아버지 사진기로 사진놀이를 즐기고, 아이는 아이 사진기로 사진놀이를 즐깁니다. 진작부터 아이한테 아이 사진기 하나를 선물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네 살이 되기까지 새 사진기를 도무지 장만하지 못했습니다. 바야흐로 살림집 옮길 때를 닥치어 목돈을 주섬주섬 모으다가 비로소 사진기를 곁으로 장만합니다.
아이는 아이 사진기로 사진놀이를 하다가 금세 사진기를 내려놓습니다. 아이는 다른 놀이로 접어듭니다. 아이는 아버지 손을 하나씩 잡습니다. 아버지는 사진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둘 모두 사진기를 내려놓고 손을 잡으며 춤을 춥니다. 늦은 저녁 아이가 이끄는 대로 춤을 추면서 놉니다. 공을 튀기며 놀고, 책을 펼치며 놀며, 땀에 젖은 몸을 씻으며 놉니다. (4344.8.27.흙.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