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가 꽃피는 마을 - 청각장애인 푸르네 가족과 어느 특별한 마을 이야기 장애공감 1318
자닌 테송 지음, 정혜용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아이와 사랑하며 살아갈 소리
 [푸른책과 함께 살기 86] 자닌 테송, 《수화가 꽃피는 마을》(한울림스페셜,2010)



- 책이름 : 수화가 꽃피는 마을
- 글 : 자닌 테송
- 옮긴이 : 정혜용
- 펴낸곳 : 한울림스페셜 (2010.4.5.)
- 책값 : 9000원



 (1)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


 우리 집 아이는 아버지가 끄는 자전거를 함께 탑니다. 아버지가 끄는 자전거 뒤에 수레를 달고, 이 수레에 아이가 앉습니다. 수레랑 자전거가 낑낑거리며 멧등성이를 넘고, 멧자락 꼭대기부터 신나게 내리막을 달립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며 바람을 맞아들일 때에 아이도 바람을 맞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 때에 햇살을 받아들이면 아이도 햇살을 받아들입니다.

 우리 집은 자가용이 없습니다. 우리 집은 자가용을 마련할 돈이 없습니다. 우리 집은 자가용을 장만할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 집에 자가용 마련할 만한 돈이 생긴다 하더라도 자가용을 마련할 뜻이 없습니다.

 여느 때에는 걸어다니면 됩니다. 때때로 자전거를 몰면 됩니다. 다리가 아프거나 짐이 많으면 버스를 탑니다. 몸이 지치거나 벅차면 택시를 부릅니다.

 걸어다닐 때에는 바람소리와 풀소리와 벌레소리와 새소리와 하늘소리를 골고루 듣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시원한 맛과 땀흘리는 맛을 찬찬히 느낍니다. 제법 먼길을 퍽 금세 오갑니다. 버스나 택시를 얻어 타면, 돈 몇 푼을 들여 이 멀디먼 길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다닐 수 있다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적잖이 두렵습니다. 가까운 길이든 머나먼 길이든, 자동차를 타고 이처럼 쉬 오가도 되는지 두렵습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금을 긋듯 자동차로 싱 달리면서 이곳과 저곳 사이에서 살아숨쉬는 내 이웃과 뭇 푸나무와 벌레와 짐승을 몰라보아도 되는가 싶어 두렵습니다.


.. 내가 왜 청각장애인들에게 집을 팔았을까? 그거야, 아내가 세상을 뜬 뒤로 집을 팔려고 애를 쓰고 있었으니까. 3년 동안이나 말이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은 매번 너무 시끄럽다고 했다. 바로 근처에 깔아 놓은 그 엉터리 같은 고속도로 때문이었다 ..  (7쪽)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매미가 우는 소리가 늘 같지 않으면서 노상 새로운 줄 느낍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 갓난쟁이가 잠들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풀벌레가 울든 새가 울든 개구리가 울든 닭이 울든, 이러한 소리를 들으면서 갓난쟁이가 시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문을 모조리 닫고 귀를 막아도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는 크게 들립니다. 집안에 텔레비전이 있다면 이 기계에서 나는 소리는 퍽 크게 들릴 테지요. 자동차가 부아앙 바퀴 굴리는 기계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에는 시끄럽다 느끼고, 아이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텔레비전이 켜진 데에서는 아이가 쉼사리 잠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 삶터를 이루는 거의 모두는 도시입니다. 자동차가 북적거리는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시골 읍내에도 자동차가 많습니다. 시골 바깥자락에도 자동차가 꽤 많습니다. 자동차 없는 대한민국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 없는 살림집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겠지요. 집에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는 사람이 드물듯, 집에 자가용 안 굴리는 사람이 몹시 드물겠지요.

 집 바깥으로 나가 읍내 장마당 마실을 하든, 볼일을 보러 조금 멀리 마실을 하든, 바깥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두렵습니다. 이렇게 자동차로 넘실거리는 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소리를 듣는지 두렵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받아들이는지 두렵습니다. 옆지기가 시골집에서 살아가자 이야기를 해서 시골집으로 옮긴 우리 살림인데, 시골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도시에 그대로 남았으면, 우리 네 식구는 어떤 소리와 어떤 기운과 어떤 복닥거림에 휩쓸리면서 지치거나 나가떨어졌을까 싶어 두렵습니다.


.. “이 나이가 되어서야 청각장애인들이 있다는 걸 발견했으니 얼마나 멍청한가. 그 사람들은 예전부터 늘 있어 왔는데 말이야!” ..  (14쪽)


 시골에는 일거리가 없다고 여깁니다. 옳게 바라보자면, 시골에 일거리가 없을 수 없습니다. 시골에는 일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다만, 시골에는 돈거리가 드뭅니다. 돈이 될 거리가 적습니다.

 도시에는 일거리가 많다고 여깁니다. 바르게 살피자면, 도시에 일거리가 많을 수 없습니다. 도시에는 돈거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니까, 도시에는 일거리 아닌 돈거리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도시로 몰려듭니다. 땀흘려 일을 하는 아름다움을 누리려는 사람들보다는, 더 느긋하게 먹고살겠다는 꿈을 꾸는 사람이 훨씬 많을 뿐더러,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일거리’ 아닌 ‘돈거리’만 보여주면서 가르쳐요.

 우리 집 두 아이를 학교로 보내야 하는가를 놓고 늘 망설입니다. 유아원이든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아무 데도 아이를 넣지 않으며 지냅니다. 시골집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시골집에서 함께 복닥이면서 떠듭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두 아이가 ‘돈거리 잘 얻어 돈 많이 벌어들일 사람’이 되기보다는 ‘일거리 슬기로이 다스리며 일과 놀이를 아끼며 사랑할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사람이 사랑하는 소리


 자닌 테송 님이 쓴 《수화가 꽃피는 마을》(한울림스페셜,2010)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손말(수화)이란 어느 곳에도 없던 메마른 마을이 어떻게 손말이 꽃피는 예쁘장한 마을로 거듭나는가를 찬찬히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손말을 쓰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알려 하지 않고, 사귀려 하지도 않으며, 마주하려고조차 하지 않으며,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로 삼을 마음이 조금도 없는 여느 마을 여느 사람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 그들에게 내 목소리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이런 깨달음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지금 여기서는 누가 장애인이지? 바로 나로군!’ … 이 모든 일에 대해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았다. “학생 시절 몇 년씩이나 들여서 영어를 배웠지만 내 평생 외국인을 만나서 영어를 써야 했던 경우는 고작 두세 번뿐이었잖아! 아마 공무원들 거의가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로 오셨지요?’, ‘이 서식을 작성해 주십시오.’ 정도의 말은 영어로 할 줄 알겠지만, 수화는 모른단 말이지! ..  (11, 13쪽)


 손말은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만 익힐 말이 아닙니다. 손말은 내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내 이웃과 동무를 알뜰히 사랑하면서 사귀려고 익히는 말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앞서 손말을 가르쳐야 맞습니다. 초등학교 어린이한테 한자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손말과 점글을 가르쳐야 옳습니다.

 아이들은 지식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지식을 더 갖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맑은 넋과 밝은 얼로 사랑스레 살아가야 합니다.

 이 나라 중앙일간지라는 신문마다 수험생 대학입시에 발맞춘 기사를 잔뜩 내놓습니다. ㅈ신문이든 ㅎ신문이든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논술시험을 잘 풀도록 돕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서 자주 보여줍니다. 그러나, 어느 중앙일간지도 손말이나 점글을 다루지 않습니다. 어느 잡지에서도, 어느 교육잡지에서도, 어느 제도권학교에서도, 어느 대안학교에서도, 손말이나 점글을 우리 말글과 함께 옳고 바르며 알맞고 사랑스레 가르치면서 배우는 틀거리를 마련하지 않습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집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두렵습니다. 손말 하나 못 배우고 점글 하나 못 익히는 제도권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보내기 두렵습니다.

 새책방과 헌책방 책시렁을 뒤져 손말책을 갖춥니다. 점글책은 아직 못 갖추었습니다. 아이들이 천천히 한글을 깨치고 나서 손말을 함께 가르치면서 배우고, 점글 또한 나란히 가르치면서 배우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영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이나 프랑스말을 잘 하는 지식인이 되기 앞서, 내 나라 내 겨레에서 내 조그마한 삶자락 어여쁜 이웃과 동무를 곱게 사귈 수 있는 착한 사람으로 클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4344.8.7.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8-0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 아이들 학교 보내기 참 두려운거 맞아요.
학교가 그다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두아이가 하도 고와서요. 하지만 언젠가 사회라는 진흙구덩이에 두아이가 적응하고 자신만의 방향을 정하여 살아나가려면, 학교를 통해서 어느 정도 단련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가집니다. 너무 곱게 핀 꽃은 도시 나오면 죽어버리잖아요.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마음의 여행자>에 나오는데 너무 슬픈 이야기였어요. ㅠㅠ)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서글퍼지네요. 세상에 정답이란 없으니까요.

숲노래 2011-08-08 21:34   좋아요 0 | URL
저나 옆지기나 두 아이나,
사회에 굳이 적응할 생각이 없어요.
사람답게 살아야지,
애써 이런저런 사회에 맞추어서 살아갈 까닭이 없다고 느껴요.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 되거든요.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단련'을 할 노릇이 아니라 '사랑'하며 살아갈
고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느껴요.

꽃은 도시로 가지 말고 시골에 피어야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