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 - 가을에 거두는 열 가지 텃밭 작물의 한살이와 생태 철수와영희 그림책 3
노정임 글, 안경자 그림, 노환철 감수, 바람하늘지기 기획 / 철수와영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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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숨을 쉬고 흙땀을 흘리며 흙밥을 먹는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6] 안경자·노정임,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철수와영희,2011)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몸은 시골에 있으나 흙이 아닌 다른 일거리를 찾는 사람이 있으며, 아프거나 힘든 몸을 쉬려고 시골에서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흙을 일구어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흙하고 하나되어 언제나 흙을 만지면서 살아갑니다. 다른 일거리를 붙잡거나 몸을 쉬는 사람이라면, 살짝살짝 품을 들여 텃밭을 일굽니다. 도시에서는 조그마한 꽃그릇이나 스티로폼상자에 흙을 담아 조촐히 텃밭을 돌본다면, 시골에서는 어디에나 있는 흙땅을 삽과 쟁기와 호미로 조물조물 매만지면 됩니다.

 도시에서 텃밭을 일군다 할 때에는 똥오줌 거름을 내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는 똥오줌을 정화조로 받아 쓰레기처럼 뽑아내도록 합니다. 사람이 먹은 밥이 몸속에서 똥오줌이 되어 바깥으로 나올 때에, 이 똥오줌을 잘 그러모아 거름으로 삭이지 못하는 얼거리입니다. 도시라서 어쩔 수 없다지만, 도시는 도시이기 때문에 정화조가 아니라 거름통으로 바꾸어 ‘사람들이 눈 똥오줌을 거름으로 되살리는 얼거리’로 한다면 참으로 좋을 텐데요. 새로운 손전화 기계를 만들거나 새로운 무슨무슨 시설과 건물을 세우기 앞서, 사람들이 날마다 누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똥오줌을 ‘살아숨쉬는 거름’으로 만드는 연구와 개발을 먼저 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유기농 곡식을 찾으려 하는 어른이라면, 아이들한테 먹일 유기농 곡식이 이루어질 수 있게끔 도시에서 넘치는 똥오줌이 좋은 거름으로 되도록 마음과 몸과 슬기와 품을 들여야 옳은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시골에서 살아가는 시골사람이 누는 똥오줌으로는 거름이 턱없이 모자랍니다. 이 나라 사람 거의 모두 도시에 몰려 도시 일자리만 붙잡으니,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도 적지만, 흙일꾼 몇 사람 똥오줌이라 해 봤자 얼마나 되겠습니까.

 돌이켜보면, 온 나라 물줄기를 바꾼다며 벌써 몇 조에 이르는 돈을 썼다 하는데, 이런 데에 돈을 쓸 노릇이 아니라, 똥오줌을 좋은 거름으로 삼는 데에 돈을 쓰려 했다면 아주 적은 돈으로도 벌써 훌륭한 열매를 맺었을 테며, 도시사람이 걱정하듯이 냄새도 그리 나지 않으면서 훌륭히 잘 쓰는 거름통을 만들었을 테고, 이 거름통을 나라밖으로도 널리 내다 팔 만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지구별 어디를 가나 도시투성이라 할 테니까, 지구별 어디에서나 잘 팔릴 시설이나 장치가 되겠지요.


.. 오늘 텃밭에서 화가 아줌마를 만났어요. 농사를 처음 지어 보는 초보 농사꾼이래요. 내가 아는 농사짓기를 알려주려고 해요. 가까이 와 봐요. 텃밭을 들여다보면 아주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요 ..  (9쪽)


 그림책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철수와영희,2011)를 읽습니다. 둘째를 낳아 함께 살아가고부터는 텃밭을 들여다볼 겨를조차 없이 지냅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아이를 여럿 낳아 돌보고, 집안일 하며, 논일도 거들다가는, 바지런히 밭일까지 하셨는데, 어떻게 이토록 몸을 움직일 수 있나 참 놀랍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기계 하나 쓰지 않으며 방아를 찧고 절구를 빻으며 바느질을 하는데다가 물레까지 자아야 할 뿐더러 베틀에도 앉아야 했을 텐데, 더구나 빨래한 옷을 다듬이질을 해야 하고, 이불은 누벼야 합니다. 끝이 없는 집안일에 살림살이에 아이돌보기에, 어떻게 밭일까지 다 해냈을까요.

 먼 옛날, 이 나라 사람들 거의 모두 흙일꾼으로 살아가던 무렵, 이 나라 어머니들처럼 대단하며 놀랍고 훌륭하다 싶은 살림꾼이자 일꾼은 없었으리라 봅니다. 어떤 학자나 군인이나 임금보다 거룩한 어머니요, 어떤 학자나 군인이나 임금이라 하더라도 여느 시골자락 여느 살림집을 일구는 어머니가 없으면 ‘태어나지’도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잠을 자지’도 ‘하루하루 살아가지’도 ‘학문이나 전쟁이나 정치이니 꾸리지’도 못했겠지요.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어머니들 살림살이와 일거리를 높이 사거나 예쁘게 섬기거나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흐름은 없습니다. 어머니들 살림살이와 일거리를 다루는 역사책이나 문화책이나 인문책이나 그림책조차 없습니다. 스스로 겪고 몸소 해 본 텃밭일이기 때문에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라는 그림책 하나 태어난다 할 텐데, 곰곰이 생각하면, 여느 시골자락 살림집 할머니한테 이야기 한 보따리 듣거나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더라도 ‘텃밭 이야기 그림책’은 수십 수백 권이 태어날 만하리라 느낍니다. 열 가지 텃밭 푸성귀 이야기를 갈무리한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인데, 열 가지 텃밭 푸성귀마다 따로따로 그림책 하나로 태어날 만해요. 가지는 가지대로, 감자는 감자대로, 고구마는 고구마대로, 당근은 당근대로, 무는 무대로, 배추는 배추대로, 아욱은 아욱대로, 옥수수는 옥수수대로, 콩은 콩대로, 고추는 고추대로, 오이는 오이대로, 그리거나 선보이거나 함께 나눌 이야기가 한가득입니다.

 씨앗을 받고, 씨앗을 갈무리해서, 이 씨앗을 고이 여기며 한 알 두 알 심습니다. 씨앗을 심기 앞서 밭을 어여삐 갈고 엎습니다. 이랑과 고랑을 곱게 만들고 난 자리에 씨앗을 심습니다. 새싹이 트는 모습을 즐거이 지켜봅니다. 새싹이 틀 무렵 함께 싹이 트려면 다른 풀을 바지런히 뽑아야겠지요. 웃자라지 않도록 잎을 칠 때에, 이렇게 미리 치는 새잎을 나물로 삼든 날푸성귀처럼 여기든, 밥상에 올립니다. 당근은 당근줄기까지 맛나게 먹습니다. 무는 무잎을 잘 말려 무청으로 삼으면 됩니다. 그냥 무잎으로 먹어도 되고요. 남김없이 뽑거나 캘 수 있지만, 한두 뿌리쯤 그대로 두어 꽃이 피고 질 때까지 즐겁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배추꽃을 보고 무꽃을 보면서, 텃밭에 심어 일구는 푸성귀 또한 여느 풀처럼 꽃이 피고 씨가 맺는 목숨인 줄을 느낄 수 있어요.


.. 농사는 혼자 지을 수 없어요. 흙, 해, 물, 바람이 도와주어야 해요. 또 벌레가 도와주기도 한답니다 … 싹이 올라왔어요. 흙을 뚫고 싹이 올라왔어요! 씨앗 혼자서는 싹을 내지 못해요. 흙도 있고, 해도 있고, 물도 있고, 거름도 있어야 해요 ..  (11, 18쪽)


 텃밭이든 너른 밭이든 사람이 일굽니다. 그러나 밭이 되든 논이 되든, 사람 손길만으로는 일구지 못합니다. 비닐집을 만들거나 흙을 비닐로 덮어 ‘오직 사람 손길로만 더 굵고 더 달며 더 예뻐 보이는’ 푸성귀를 ‘만들’기도 합니다만, 흙이든 거름이든 가게에서 사오고 물은 수도물로 틀며 비닐이나 유리로 꽉 막은 데에서 푸성귀를 기를 수 있다지만, 이러니까 겨울이든 이른봄이든 온갖 푸성귀를 가게에서 사다 먹을 수 있다지만, 흙과 해와 물과 바람과 벌레와 멧짐승이 있어 서로서로 살아가고 다 함께 아름답습니다.

 흙이 있어 일구는 푸성귀일 테지만, 흙이 있어 태어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해가 있어야 자라는 푸성귀일 텐데, 해가 있어야 활짝 웃으며 싱그러이 기운을 내는 사람입니다. 물이 있어야 잎과 줄기가 튼튼할 푸성귀이겠으나, 물이 있어야 맑은 넋으로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바람이 있어 숨을 쉰다는 푸성귀요, 바람을 맞으며 숨을 쉬는 사람입니다.

 푸성귀한테든 사람한테든 자가용이나 아파트나 은행계좌나 가방끈이나 일자리나 영어나 텔레비전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흙과 해와 물과 바람입니다. 흙이 있고 난 다음 자가용이고, 해가 있은 뒤에 아파트이며, 물이 있는 자리에 은행계좌이든 무어든 쓸모있습니다. 바람이 없이 가방끈만 길다 해서 하루라도 살아내지 못합니다.

 곰곰이 헤아리자면, 그림책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에서는 텃밭에서 어떤 푸성귀를 기를 수 있는가를 보여줄 만하다 할 테지만, 텃밭에서 이런저런 푸성귀를 기르는 삶을 보여주는 까닭이란, 우리가 늘 먹는 푸성귀를 어떻게 길러 어떻게 먹는가 하는 앎조각을 머리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풀과 나무와 사람과 뭇목숨 모두 흙을 먹고 해를 받으며 물을 마시고 바람을 들이키는 지구별 아름다움을 알뜰히 깨우칠 때에 사랑스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뒷자리에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걱정하는 글이 적힙니다만, 시골자락에서 스스로 흙을 일구는 사람이 밭에서 손수 씨앗을 받아 이듬해에 심지 못한다면, 모든 씨앗부터 ‘유전자를 건드려 바꾼 씨앗’이기 때문에, 손수 텃밭을 일군다 하더라도 ‘유전자를 건드려 바꾼 푸성귀를 기르는’ 셈이 됩니다. 가게에서 파는 씨앗치고 ‘씨앗으로 씨앗을 받을 수 있는 씨앗’은 이제 없습니다.

 그러나 ‘새내기 흙일꾼 첫걸음’으로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씨앗을 찾아나서는 일은 좀 나중에 하더라도, 이렇게 흙을 밟고 흙을 만지며 흙투성이가 되는 몸뚱이로 흙숨을 쉬려고 땀을 흘리는 모습이야말로 아리땁다 할 만합니다. 차근차근 흙을 사귀는 삶으로 바꾸고, 천천히 흙을 어루만지는 삶으로 거듭날 때에 내 살결과 마음결 모두 환하게 빛납니다. (4344.7.21.나무.ㅎㄲㅅㄱ)


― 무당벌레가 들려주는 텃밭 이야기 (안경자 그림,노정임 글,하늘바람지기 기획,철수와영희 펴냄,2011.7.2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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