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tta Kim : ON-AIR - 뉴욕의 신화가 된 아티스트 김아타의 포토로그
김아타 지음 / 예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포토 아트’는 사진이 아닌 예술입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38] 김아타, 《ON-AIR》(예담,2007)
김아타 님은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사진기를 빌어 예술을 하는 사람입니다. 김아타 님 사진은 사진삶으로 다룰 수 없습니다. 예술삶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적잖은 이들은 김아타 님을 사진쟁이 테두리에서 바라봅니다.
옳지 않습니다. 사진은 사진이고 예술은 예술입니다.
붓을 들어 글을 썼대서 모두 글이라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붓과 종이를 써서 ‘서예’를 합니다. 말 그대로 예술입니다. 붓과 종이를 빌어 글로 나타내는 예술이 한자말 이름으로 ‘서예’입니다. 김아타 님이 내놓은 숱한 작품은 사진기와 인화지를 빌어 보여주지만, 사진이 아닌 예술입니다.
“현전하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원초적인 성과 폭력과 전쟁과 이데올로기를 끌어내어 내 사적인 박물관 유리 박스에 정착시킴으로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기존의 박물관이 ‘죽어 있는 것을 영원히 살게 하는 곳’이라면, 나의 박물관은 ‘살아 있는 것을 영원히 살게 하는 곳’이다(195쪽).”라 하는 말마따나, 김아타 님은 ‘김아타 박물관’을 만드는 예술쟁이입니다.
예술쟁이가 사진기를 든대서 나무랄 까닭이 없습니다. 그림쟁이가 사진 기법을 시늉한대서 탓할 일이 없습니다. 만화쟁이가 사진을 신나게 찍어 뒷그림으로 옮긴다 해서 잘못이라 말할 일이 없습니다. 그림쟁이는 그림에 사진을 쓰고, 만화쟁이는 만화에 사진을 쓰며, 예술쟁이는 예술에 사진을 씁니다.
다만, 그림쟁이는 사진 아닌 그림을 합니다. 만화쟁이는 사진 아닌 만화를 합니다. 예술쟁이는 사진 아닌 예술을 해요.
《ON-AIR》(예담,2007)라고 하는 책 겉에도 ‘뉴욕의 신화가 된 아티스트 김아타의 포토로그’라 적습니다. 김아타 님은 영어로 ‘아티스트’입니다. 영어로 ‘포토그래퍼’가 아니에요. 아티스트예요. 한국말로 하자면 ‘예술쟁이’입니다. ‘사진쟁이’도 ‘사진작가’도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오늘날 한국땅에서 ‘사진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서 사진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대학교 사진학과에서도 예술을 가르치거나 배우면서 사진을 가르치거나 배운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사진을 배우는 대학생 가운데에는 사진이 아닌 예술을 펼치려 하면서 사진을 배우는 듯 잘못 아는 이가 꽤 많습니다.
김아타 님은 “1980년대 말, 나는 이름 모를 잡초들과 작은 돌들, 흐르는 시냇물과 바람 소리 그리고 태양의 자양분을 대화의 파트너로 삼아 ‘사물과의 대화’를 하면서 나의 실존을 확인해 가는 트레이닝을 하였다. 많은 시간을 하잘것없는 사물들과 대화하면서 사물을 관조하는 방법과, 사물과 하나가 되어 사물이나 혹은 타자에 몰입하는 방법을 익혔다(1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굳이 사물을 말없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누구나 생각을 얻거나 생각날개를 펴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는 터전에서 스스로 살 길을 찾아 제 생각길을 걷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김아타 님 ‘생각찾기’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몇 대목이 보입니다. 풀과 돌과 물과 바람과 햇볕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사물’인지 궁금합니다. 참말로 풀과 돌과 물과 바람과 햇볕이 하잘것없다고 여기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이 없어도 지구별은 한결같을 뿐 아니라, 사람이 없으면 지구별은 걱정없습니다. 풀이 없거나 돌이 없거나 물이 없거나 바람이 없거나 햇볕이 없으면 지구별은 몹시 끔찍해집니다. 김아타 님이 사물을 말없이 바라보는 솜씨를 익혔다고 한다면, ‘풀과 돌과 물과 바람과 햇볕을 하잘것없이 바라보는 매무새나 눈길’이 아니라 ‘내 몸뚱이란 풀과 돌과 물과 바람과 햇볕하고 견주어 얼마나 하잘것없는가 하고 깨닫는 매무새나 눈길’이어야 알맞지 않았으랴 궁금합니다.
풀은 풀 그대로 예술입니다. 김수영 님이 〈풀〉이라는 시를 쓰지 않았어도 풀은 풀삶 그대로 예술이자 자연이며 역사입니다. 사람은 풀포기를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으며 ‘참 멋지구나!’ 하고 말할 테지만, 풀은 풀삶을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나타내지 않아도 스스로 참 멋집니다.
사진이 사진인 까닭이 있습니다. 사진이 사진이기에 예술이라는 이름이 붙는 까닭이 있습니다. 사진기를 쥔 사진이 눈부신 삶이 되는 까닭이 있습니다.
김아타 님은 “소호에는 작은 돌들만큼이나 숱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슬픈 사랑 이야기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역사를 길이라 부르는 것은 연결되어 있음이기도 하다(149쪽).” 하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네, 맞습니다. 작은 돌만큼 작은 사람들 이야기는 수없이 많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이고 다 다른 사람이며 다 다른 삶이에요. 예술을 이루는 숱한 갈래는 저마다 다 달리 아름답습니다. 꼭 예술이라는 이름표가 붙지 않아도 아름답습니다. 예술이 되어야 아름답지 않으며, 예술로 나아가야 아름답지 않을 뿐더러, 예술을 이루지 않더라도 아름답습니다.
김아타 님은 인간문화재를 사진으로 담는 일을 하면서 느낀 이야기를 “목포에서 옥 작업을 하던 장주원의 작품을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은 적이 있었다 …… 나는 그 작품을 보며 사람의 집념이란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그는 커 보였다(167쪽).”고 적습니다. 김아타 님 다른 책 《상像》(학고재,2008)은 사진책이라 할 만하겠지요. 그저 사진으로만 보여주니까요. 그러나 이 책 또한 사진책이라 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진으로 찍었대서 모두 사진이 되지 않고, 사진을 그러모았기에 다 사진책이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볼 때야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이니 사진책입니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어떠하대서 ‘그래, 눈으로 보기에 이렇게 보이니 이렇다고 해야지’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달걀부침도 틀림없이 달걀부침이겠지요. 그런데, 먹을 수 없는 달걀부침도 달걀부침이라 할 수 있나 모르겠습니다. 플라스틱이나 종이로 만든 꽃도 꽃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만, 참말 플라스틱 꽃이나 종이 꽃도 꽃이라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아타 님 책 《상像》에는 《ON-AIR》에서 밝힌 그대로 ‘참으로 무섭다’고 느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러면서 ‘커 보였다’고 하는 이야기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김아타 님 스스로 ‘참으로 무섭다’고 보인 사람들을 김아타 예술로 담아냈거든요. 그러니까, 《상像》이라는 책은 ‘인간문화재를 보여주는 사진책’이 아니요, ‘인간문화재를 다루는 사진책’ 또한 아닙니다. ‘예술로 보여주는 밑감’으로 인간문화재라는 사람을 골랐습니다. 인간문화재라는 사람들 모습 가운데 ‘참으로 무섭다’라는 대목을 스스로 끄집어내어 아주 또렷하게 붙박은 예술품입니다. ‘김아타 유리 박스에 넣은 예술품’입니다.
예술을 하든 그림을 하든 만화를 하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글을 쓰든 흙을 일구든 기계를 만지든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탈을 쓰지 않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제 길을 사랑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동네에서 조그맣게 장사를 하는 구멍가게는 구멍가게이기에 아름답습니다. 구멍가게라서 아름답거나 작은 가게라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구멍가게는 말 그대로 구멍가게로 제 몫을 알뜰히 하니까 아름답습니다.
사진은 사진길을 씩씩하게 걷는 매무새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사진길을 깊이 사랑하거나 아끼는 눈길과 손길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예술이 예술대로 아름답다면, 사람과 삶과 사랑을 저마다 다른 이야기마당으로 엮어 저마다 다른 꿈을 싣는 눈물과 웃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을 사진으로 보여주기에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보여주건 동영상으로 보여주건 예술은 예술입니다. 예술을 두 시간짜리 동영상으로 찍는대서 ‘영화’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백남준 님은 ‘비디오 아트’라는 이름을 떳떳하고 올바르게 썼습니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예술’은 사진이 아닌 예술입니다. (4344.6.18.흙.ㅎㄲㅅㄱ)
― ON-AIR (김아타 글·사진,예담 펴냄,2007.5.25./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