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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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풀이 착하고 예쁘다
 [책읽기 삶읽기 63] 강우근,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메이데이,2010)



 이야기책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메이데이,2010) 뒷겉장에는 “보잘것없는 것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는 글월이 적힙니다. 잘난 사람과 이름난 사람과 힘센 사람과 가멸찬 사람들이 온누리를 바꾸거나 뜯어고치거나 파헤치더라도, 정작 온누리 삶과 사랑은 보잘것없는 사람들 슬기와 땀과 눈물과 웃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겠지요.

 곰곰이 따지면, 보잘것없는 사람이든 풀이든 나무이든 멧새이든 들쥐이든, 온누리를 딱히 바꾸거나 고치지 않습니다. 저마다 보잘것없는 그대로 조용히 살림을 꾸립니다. 비둘기는 닭둘기 소리를 들으면서 도시에서 잘 살아남고, 까치는 시골에서 총에 맞아 죽으면서 새끼를 깝니다. 밭뙈기 씨앗을 쪼아먹는다면 까치와 멧비둘기만 쪼아먹겠습니까. 참새도 박새도 직박구리도 쪼아먹지요. 뻐꾸기나 꾀꼬리나 종달새는 어떠할까요. 고 작은 몸뚱이에 따스한 기운이 감돌 만큼 먹이를 찾아 이리 날고 저리 납니다.

 아직 풀약을 치지 않은 무논마다 숱한 새들이 내려앉아 개구리를 찾습니다. 개구리는 새밥이 되자며 태어나지 않겠지만, 배고픈 새들 흔한 먹이가 됩니다. 알에서 깬 도룡뇽은 논에 남지 않고 골짜기나 도랑으로 몸을 내뺀다지만, 나날이 골짜기나 도랑이 사라지니 도룡뇽이 살아숨쉴 곳이란 없습니다. 결대로 흐르던 물길이 끊기고 시멘트로 착착 바른 곳에는 물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며, 물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물고기가 알을 낳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씽하니 시원스레 내달리며 ‘물 좋다!’ 하고 노래할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좋아 보인다는 물에는 무엇이 살아갈 수 있으려나요. 즈믄 해 만 해 십만 해 백만 해에 걸쳐 차근차근 쌓이거나 쓸리거나 무너지거나 깎이거나 덮이며 천천히 이루어진 물구비와 모래밭을 하루아침에 온갖 기계를 들여 싹 바꿀 때에, 이곳은 뭇목숨이 얼마나 살아숨쉴 만한 터가 되고, 사람 또한 얼마나 깃들 만한 보금자리가 될까요.

 이제 도시에서는 돈을 더 뽑아낼 만한 개발을 하기 어렵습니다. 작은도시는 돈이 안 되어 큰도시에서 개발을 해야겠는데, 큰도시는 땅값이 비싸니까 어찌 되든 더 돈을 뽑아낼 만한 개발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서로 툭탁툭탁 다투어야 합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개발을 하더라도 돈을 뽑기가 마뜩찮지만, 큰도시처럼 머리띠를 두르며 으싸으싸 가로막으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가리가 집회를 하겠습니까, 개구리가 서명운동을 하겠습니까, 씀바귀가 타워크레인에 올라가겠습니까.

 힘있는 사람이든 힘없는 사람이든 하나같이 도시로, 더 커다란 도시로 몰려들기만 합니다. 요즈음 시골자락이 얼마나 어떻게 흔들리거나 무너지는가를 깨닫는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산을 자르거나 깎거나 뚫어도 무어라 탓하지 않습니다. 지율 스님 한 사람이 있어 천성산을 어찌저찌 했다지만, 천성산을 뺀 이 나라 모든 산은 깎이고 잘리고 뚫립니다. 새로운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놓이면서 논밭과 산과 냇물이 짓밟힙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 모든 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손사래를 치지 못합니다. 시골에 사람이 없으니까요. 도시에만 사람이 있고,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그런 나쁜 짓은 안 돼!’ 하고 외칠 뿐이니까요.


.. 겨울 나는 봄맞이를 보려고 아파트 샛길 옆 해마다 봄맞이가 무리지어 자라던 곳을 에돌아가는데, 이미 거기는 콘크리트로 깔끔하게 새 단장이 되어서 시멘트 먼지만 폴폴 날리고 있다 … 텃밭에서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데도 도시사람들은 그런 텃밭을 없애고, 그 자리를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 텃밭을 주차장으로 바꾼 도시사람들은 운동을 하러 갈 때도 차를 타고 간다 … 잡초마저 자라지 않는 땅은 죽은 땅이다. 그곳은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사막이다. 망가진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는데, 회복해 가는 과정에서 처음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잡초들이다 ..  (18, 37, 293쪽)


 정부에서는 ‘4대강 사업’이라는 토목개발을 할 만합니다. 4대강 사업이란 도시에서 하는 토목개발이 아닙니다. 도시에서처럼 보상 대책이라든지 이주 대책이라든지 민원에 시달릴 턱이 없습니다. 냇물을 도려내고 산을 깎는데 어느 누가 보상 대책을 내놓으라니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느니 하겠습니까. 환경영향평가를 하라느니 삽차와 기계 때문에 시끄럽다느니 말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든 개발은 처음부터 자연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생각하는 아파트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아파트라는 터전부터 자연을 거스릅니다. 아파트는 똥오줌이 쓰레기이고, 물을 함부로 펑펑 쓰며, 갖은 쓰레기를 ‘분리수거’라는 이름으로 어마어마하게 쏟아냅니다.

 모든 개발은 자연을 무너뜨려야 돈을 얻습니다. 도시에서는 무너뜨릴 자연이 없습니다. 지난날은 철모르고 멋몰랐으니 도시 외딴 곳 가난한 살림집을 파헤치면서 개발을 했다면, 이제는 철들고(?) 멋을 아니(?)까 도시 바깥에서 토목개발을 합니다. 중장비를 마음껏 다룹니다. 길을 4차선 8차선 마음껏 뚫습니다. 냇물을 이리 틀었다가 저리 틀었다가 신나게 바꿉니다. 이렇게 토목개발을 해서 실패하면 달리 토목개발을 하면 되고, 달리 토목개발을 해서 또 실패하면, 또 다르게 토목개발을 하면 된다고 여깁니다. 어마어마하게 거두어들이는 세금을 군사비와 경제개발비에만 쓸 뿐, 막상 교육과 문화와 복지에는 안 쓰니까, 대한민국은 도시와 시골 모두 막개발 수렁입니다.


.. 정치몰이배들은 하루아침에 새 옷을 갈아입히듯 도시 미관을 바꿀 수 있는 이런 이벤트 사업을 좋아한다. 효과도 크고 바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실패해도 정치적 손실이 없기 때문이다 … 한쪽에선 멀쩡한 숲을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싹 파헤쳐 버리면서 다른 쪽에서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숲을 만든다고 난리다. 숲을 만드는 것도 꼭 숲을 파헤치는 것마냥 개발하듯이 한다. 저들은 정말 저렇게밖에 할 줄 모르나 보다 ..  (26, 259쪽)


 이야기책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를 펼칩니다. ‘도시 밑바닥 일꾼’한테 푸른 기운을 북돋우려는 목소리가 곳곳에 알뜰살뜰 스밉니다. 눌리고 밟히며 찟기더라도 다시금 일어서며 씩씩하게 살아가자는 다짐이 구석구석 예쁘게 깃듭니다.

 정치평론이나 사회평론은 덧없습니다. 진보 목소리나 보수 목소리는 부질없습니다. 사상이나 철학이나 논리는 하릴없습니다. 사람들한테는 밥과 옷과 집이 쓸모있을 뿐 아니라 값있고 뜻있습니다. 모든 일은 밥과 옷과 집을 얻으려고 하지, 진보나 정치나 철학을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밥과 옷과 집을 얻으려고 일해야 합니다. 밥과 옷과 집을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얻도록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일을 해야 합니다. 내 밥을 얻으면서 이웃 밥그릇을 엎는다든지, 내 옷을 마련하면서 동무 옷은 찢는다든지, 내 집을 장만하면서 둘레 사람들 집을 밀어낸다면, 내 손에 쥔 밥과 옷과 집이란 무슨 보람이 있을까요.


.. 점나도나물 역시 아주 오래 전 이곳으로 냉이와 질경이, 별꽃이나 광대나물 따위와 함께 들어와 자리잡고 사는 풀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제 와서 자리잡고 사는 것은 ‘토종’이 되고 오늘 막 도착한 것은 ‘귀화식물’이 된 것이다 … 수수꽃다리가 이 땅에서 자생하는 한국특산식물이라는 것을 굳이 알지 않아도 수수꽃다리는 우리한테 너무나 친근한 나무이다 … 돼지풀은 토양을 해치는 약탈자가 아니라 오히려 죽어 가는 땅을 살리고 퇴비가 되어 땅을 기름지게 하는 좋은 사료가 되어 가축을 건강하게 키워내는 풀이다. ‘쓸모없는 식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 쓰임을 모를 따름이지 ..  (88∼89, 278, 325쪽)


 노동자라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할 만한 일을 하는 사람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노동자이기에 거룩하지 않습니다.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를 깔보는 노동자는 정치몰이꾼이나 정치모리배하고 한통속일 뿐입니다.

 노동자일 때에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내 식구를 사랑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할 만한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일을 하면서 내 식구들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살아가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사랑스럽습니다.


.. 풀은 좋은 음식도 되고 약도 되지만 좋은 상품이 되지는 않는다. 풀이 품질 좋은 채소를 생산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초제를 뿌려서 없애 버린다. 하지만 풀은 다시 자라난다 ..  (336쪽)


 이야기책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는 낮은 사람들을 어루만지면서 낮은 풀과 꽃을 어루만집니다. 낮은 사람들을 아끼는 낮은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낮은 사람들을 아끼는 낮은 책이 너무 없을 뿐 아니라, 아예 없다 해도 틀리지 않는 요즈음 책마을을 헤아린다면,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는 아주 뜻있으며 값있습니다.

 다만, 풀은 서로 싸우지 않는데, 이야기를 자꾸 싸움이라는 테두리에서 바라보니 아쉽습니다. 풀을 풀 눈높이에서 바라본다면 이야기 흐름이나 결이나 맛이 사뭇 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풀 이야기는 이러한 이야기대로 알차며 재미있고 값지겠지요.

 착한 사람은 다투지 않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풀은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철에 맞추어 저마다 다 다른 한삶에 걸맞게 피고 집니다. 일찍 피고 일찍 지는 풀이 있고, 늦게 피어 늦게 지는 풀이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조그마한 흙땅에서 숱한 풀이 모둠살이를 합니다. 뿌리내릴 터를 서로서로 조금씩 나누면서 함께 살아갑니다.

 착하게 살아가고 싶다면 굳이 커다란 도시로 몰려들 까닭이 없습니다. 참다이 살아가고 싶을 때에는 애써 도시에 깃을 틀어야 하지 않습니다. 예쁘게 살아가려는 꿈이라면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되고, 자가용을 몰지 않아도 좋아요.

 낮은 목소리로 낮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반가운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입니다만, 착하거나 참답거나 어여쁜 삶자락 이야기는 살짝 빠졌습니다. (4344.6.16.나무.ㅎㄲㅅㄱ)


―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 (강우근 글·그림,메이데이 펴냄,2010.12.13./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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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6-16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참 좋았어요.
전 '참되다'라고만 썼었는데...'참다이''참답다'...오늘도 이쁜 말 하나 배워가네요.

숲노래 2011-06-16 07:29   좋아요 0 | URL
이만큼이라도 생각하며 쓰는 책이 몹시 적어요.
다만, 시골 여느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이 책을 읽히기에는 '껄끄럽'거나 '좀 아쉬운' 대목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이 책은 처음부터 '일반 노동자' 눈높이에 맞추어 쓴 글이기 때문에, 시골사람은 읽을 수 없는 글이기도 했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