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생각
― 사진과 삶
사진은 사진기를 써서 이룬 열매를 일컫습니다. 그렇지만, 사진기를 써서 이룬 열매를 모두 사진이라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틀림없이 사진이라 할 테지만, 속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사진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밥을 하면 다 밥이 되겠지만, 밥을 하다가 그만 간장인 줄 알고 염산을 부었다든지, 된장인 줄 알고 흙을 넣으면 어떻게 될는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밥이라 할 테지만, 이러한 밥은 아무도 먹지 못합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얻을 때마다 방사능이 나옵니다. 이 방사능을 막으려고 원자력발전소는 시멘트를 아주 두껍게 바릅니다. 그러나 시멘트벽을 아무리 두껍게 한들 모든 방사능을 막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원자력발전소는 큰도시에서 무척 떨어진 곳에 마련합니다. 이른바 두메나 시골에 마련합니다. 방사능은 아주 조금만 새더라도 사람과 들판과 물 모두를 죽일 수 있습니다. 방사능에 젖으면 아기를 낳을 때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죽거나 팔다리가 없을 수 있습니다. 흔히 가볍게 쓰는 전기라 하지만, 전기는 흔히 가볍게 쓸 만하지 않습니다. 너무 아슬아슬하게 다루면서 쓰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두메나 시골은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도 괜찮은 곳일까 궁금합니다. 두메사람이나 시골사람은 방사능덩어리를 곁에서 떠안으면서 살아야 할 목숨인지 궁금합니다. 도시에서 쓰는 전기를 왜 도시에서 안 만들고 두메나 시골에 발전소를 짓고, 길디긴 전깃줄을 드리워 도시로 가져가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찍는 이들은 말 그대로 사진기를 손에 쥐고 사진을 찍습니다. 다만, 사진을 찍으면서 놀이를 즐기려 한다면, 이들은 ‘사진을 찍는다’기보다 ‘놀이를 한다’고 해야 옳습니다. 모델이 되는 사람들이 사진쟁이 앞에서 ‘사진기를 들고 놀’ 때에도 ‘사진찍기’가 아닙니다. ‘놀이’라 하거나 ‘모델’이라 하겠지요.
멋스러이 보이는 사진을 노리는 분들이 퍽 많습니다. 사람들이 멋스러이 바라보기를 바랄 뿐 아니라, 당신 스스로도 멋스러이 느끼고픈 사진을 노린다 할 만합니다. 이분들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사진찍기’를 한다 여길 텐데, 속으로 본다면 ‘멋부리기’를 하는 셈입니다. 멋부리기는 멋부리기이지 사진찍기는 아니에요. 사진찍기는 멋부리기가 아니라 사진찍기입니다.
사진을 찍어 그러모은 다음 사진잔치를 마련하는 분이 많습니다. 저도 사진잔치를 스무 차례 가까이 했습니다. 사진잔치를 마련할 때에는 그동안 내가 걸어온 사진길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앞으로 걸어갈 사진길을 새롭게 살펴보려는 뜻입니다. 땀흘려 찍은 사진을 이웃한테 선보이면서 내 이웃이 내 사진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맑아지거나 흐뭇해지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내 이웃이 내 사진을 바라보며 좋아해 주거나 사랑해 주기를 빌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사진으로 내 삶을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내가 내 밥그릇을 비우면서 끼니를 때울 때에 내 몸을 북돋우고 내 삶을 이을 마음이지, 내가 내 밥그릇을 비우면서 내 이웃이 배가 부르리라 여길 수 없어요. 내 사진잔치는 오로지 내 사진길을 밝히거나 채우는 잔치마당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잔치를 마련하면서 ‘내가 맞아들여 나를 북돋우는’ 뜻이 아니라 ‘남한테 내보여 남한테 평가(값매김)를 받으려’ 하는 이가 꽤 많습니다. 전시관마다 수많은 사진잔치를 꾸준히 잇고, 신문과 잡지와 방송마다 새로운 사진잔치를 알립니다. 사진잔치는 왜 알리고 어떻게 알리며 누구하고 나누는 자리일까요.
사진은 삶입니다. 사진은 바로 내 삶입니다. 내가 찍는 사진은 내가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삶입니다.
내 삶이 겉치레와 같이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 거들먹거리거나 자랑하려는 매무새라 한다면 내 사진 또한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 그럴듯하게 보여주거나 멋스러이 보여주려는 매무새가 되고 맙니다.
내 삶이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이는 데에 맞추어졌다면, 내 사진 또한 돈을 벌 만한 사진찍기로 기울어집니다. 내 삶이 ‘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듯이 ‘역사에 남을 사진 한 장’을 꾀하는 데에 맞추어졌으면, 내 사진 또한 이름값을 높이거나 얻거나 누리는 데로 치우칩니다.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며, 살아가는 대로 바라보고, 바라보는 대로 살다가, 사진기를 쥐어 사진 한 장 찍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하고 왜 어떻게 살림을 꾸리는 한 사람일까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는 사랑을 바라는 사람인지 돈값을 꾀하는 사람인지를 가만히 되뇝니다. 나는 꿈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나는 착하게 살고픈 사람인지, 나는 어여쁜 살림살이를 아끼고픈 사람인지 찬찬히 곱씹습니다.
멋부리는 삶은 그럴듯하겠지만, 따사로운 삶은 아름답습니다. 이름있는 삶은 빛나겠지만, 너그러운 삶은 참답습니다. 사진 한 장, 그림 한 점, 글 한 줄, 만화 한 쪽, 노래 한 가락, 춤 한 사위, 어느 곳에서나 예쁜 넋이 어리는 예쁜 삶이 고마우면서 반갑습니다. (4344.6.4.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