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는 이 없어도 사진을 찍는다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2] 이인자, 《받아주는 이 없어도》(경기대학교출판국,1988)



 “과연 장애인들의 침묵의 언어를 대변할 메시지가 담겨 있을까 하는 의구심(65쪽)” 때문에 오래도록 망설였지만 조그마한 책으로 묶어 살며시 태어났던 사진책 《받아주는 이 없어도》(경기대학교출판국,1988)가 있습니다. 아주 조용히 나왔다가 더없이 조용히 스러진 사진책인 만큼, 이 사진책을 알아본 사람을 찾아보기란 어려울 뿐더러, 이 사진책을 놓고 사진이야기를 펼치는 사람 또한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인자 님은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사진학과 교수 또한 아닙니다. 사진평론을 하는 사람이라든지 신문사 사진기자도 아니에요. 그저 장애인 권리와 삶을 돌아보면서 사진을 찍은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나라 비장애인이라 하는 사람들하고는 아주 멀리 떨어진 채 살아야 하는 장애인은 어떤 웃음과 눈물로 하루하룰 일구는가를 보여주어 함께하고픈 마음을 담은 사람일 뿐입니다.

 똑같이 ‘장애인을 사진으로 찍는다’ 할 때에도 이름난 사진쟁이가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한결 돋보이거나 널리 알려지리라 생각합니다. 다큐사진을 찍는 누군가 장애인 권리와 삶을 사진감으로 삼는다 하면 사진책으로 묶겠다 하는 출판사가 여럿 나올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름난 사진쟁이가 장애인 권리와 삶을 사진으로 담으면 사진평론을 하는 사람도 눈여겨볼 테며, 신문사나 방송사에서도 이러한 사진책을 널리 알리겠지요. 이인자 님이 1988년에 《받아주는 이 없어도》를 내놓을 때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 강사 노릇하고 경기대학교 응용미술과 조교수 일을 맡았다고 합니다. 교수라 할 수 없던 강사였던 이인자 님이 거의 비매품과 같은 사진책을 대학교 출판국에서 내놓았으니, 이러한 사진책을 경기대학교 바깥에서 알아주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 되면서, 경기대학교 안쪽에서조차 알아주기는 힘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책 《받아주는 이 없어도》는 이인자 님 사진과 장애인이 쓴 글을 나란히 엮습니다. 사진책에 실린 글 〈나누고 싶어요〉를 읽습니다. 첫머리에 “나의 사랑 나누고 / 싶어도 / 받아 주는 이 없네 // 나의 다정한 속삭임 나누고 / 싶어도 / 아무도 듣는 이 없네(명혜중학교 정윤수).” 하는 노래가 나옵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하고 사랑을 나누지 않습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하고 사랑을 나눌 마음이 없습니다. 비장애인은 비장애인끼리 어울리고,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어울리고 맙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끼리 어울리며, 돈있거나 이름있는 사람은 돈있거나 이름있는 사람끼리 어울립니다. 저마다 고운 목숨 선물로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저마다 선 자리가 너무 다를 뿐 아니라, 울타리가 참 높습니다. 모두들 착하고 예쁘게 살아가면 즐거울 텐데, 서로를 살가운 벗이나 살붙이로 느끼지 못합니다.

 《받아주는 이 없어도》라는 작은 사진책이 나왔기 때문에 이 사진책에 실리며 조금은 더 읽힐 수 있는 장애인 글 〈어머니〉를 읽습니다. 첫머리에 “어머니! / 당신이 나를 낳으실 때 / 발에 신길 내 작은 신발 / 살 돈을 그 어디엔가 / 마련해 두셨겠지요. / 그러나 내 발은 신발 냄새 / 맡을 수 없어 개미 발 하나 / 다치게 하지 않았읍니다. / 그 공로로 내 발은 개미한테 / 감사패를 받을지 모릅니다(지체부자유자 나항률).”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진을 찍은 이인자 님은 장애인들하고 함께 어울리거나 지내면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길을 마주칩니다. 생각해 보면, 장애인 권리를 외치는 일이란 남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장애인 삶을 사랑해 달라는 목소리란 남다른 움직임이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는 지구별을 생각하고, 서로 어깨동무하는 삶터를 살피면 됩니다. 좋은 동무로 지내고, 맑은 벗으로 사귀면 됩니다. 좋은 동무로 지내니까 틈틈이 찾아가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맑은 벗으로 사귀니까 꾸준히 편지를 부치면서 서로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라면상자를 선물하거나 쌀푸대를 건넨대서 장애인을 돕는 일이 아니에요. 지하철 나들목에 승강기를 마련한대서 장애인 권리가 지켜지지 않아요. 처음부터 지하철 아닌 ‘땅 위 전철’을 놓아야 하고, 처음부터 ‘장애인뿐 아니라 아기 밴 어머니나 늙은 할아버지’ 누구나 걱정없이 느긋하게 타고다닐 전철길이 있어야 합니다. 건널목에서 높은 소리로 울리도록 하는 장치가 없어도, 자가용을 모는 이들은 건널목에서 빠르기를 줄여 차분히 기다리며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통법규를 떠나, 자가용을 모는 이들은 골목길에서 빠르기를 줄여 어린이나 어른이나 느긋하게 골목삶을 일구도록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번 다음 사회시설에 척 하니 내놓는 일이 착한 일이 아닙니다. 돈을 척 하니 내놓지 않아도 돼요. 신동엽 시인이 ‘막걸리병 자전거 꽁무니에 꽂고 시인을 찾아가는 어느 나라 대통령’ 이야기를 시로 쓰면서 꿈을 꾸었듯이, 막걸리병 하나 들고 쭐래쭐래 걸어서 찾아가 만날 벗님으로 지낼 수 있으면 됩니다. 함께 살아가는 벗이요, 지구별 고운 목숨이며, 착하며 여린 이웃입니다.

 사진책 《받아주는 이 없어도》는 틀림없이 사진책입니다. 사진 갈래로 나눈다면 다큐사진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다큐사진에 넣지 않아도 되는 사진이요, 애서 사진비평이나 사진평론을 받지 않아도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사진책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진책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받아주지 않는 슬픈 한국땅 모습을 살며시 보여주는 구실을 하지만, 비장애인을 꾸짖는다거나 나무란다거나 타이르지 않으니까요. 이인자 님한테 사랑스러우면서 살가운 장애인 벗님 이야기를 사진으로 가만히 담아 보여줄 뿐이니까요.

 어쩌면, 다큐사진은 목소리를 외치는 사진일 수 있고, 달리 보면 다큐사진은 목소리를 외치지 않는 사진일 수 있습니다. 어떠한 목소리를 외치면서 온누리 얄궂거나 슬프거나 어두운 구석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다큐사진일 수 있습니다. 아무런 목소리를 외치지 않으면서 그예 따스하며 넉넉히 살아가는 사람들 꿈과 보람을 조용히 보여주는 사진일 수 있어요.

 아픈 사람을 보여주어야 다큐사진이 아닙니다. 슬픈 사람을 사귀어야 다큐사진이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을 찾아다녀야 다큐사진이 아니에요. 힘겨운 사람을 널리 알려야 다큐사진이지 않습니다.

 사랑을 보여줄 때에 다큐사진입니다. 믿음을 나눌 때에 다큐사진이에요. 따스한 손길과 넉넉한 가슴으로 어깨동무할 때에 다큐사진입니다. 굳센 손으로 흙을 만지면서 함께 땀흘려 일하는 벗일 때에 다큐사진입니다.

 사진책 《받아주는 이 없어도》는 말 그대로 받아주는 이 없어도 서로서로 예쁘게 어울리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진을 찍은 이인자 님은 알아주는 이 없어도 즐거이 사진을 찍고 기쁘게 동무를 사귑니다.


― 받아주는 이 없어도 (이인자 사진·장애인 글,경기대학교출판국 펴냄,1988.10.15.)
 

 

(최종규 . 20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