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질 천재 어린이


 걸레질을 잘 하는 어린이를 가리켜 ‘걸레질 천재 어린이’라 일컫는 어른은 없다. 심부름을 잘 하는 어린이한테도 마찬가지이다. 동생을 잘 보살피면서 사랑하는 어린이를 두고도 매한가지이다.

 무척 일찍 책을 읽는다든지, 꽤 어린 나이에 영어를 읊는다든지, 한자 지식이 있거나 자동차 이름을 줄줄 꿴다 할 때에는 으레 ‘천재’이니 ‘영재’이니 하는 이름을 붙인다. 한글을 일찍 떼었다면 ‘신동’이라고도 이를 만하겠지.

 아이는 즐겁게 여겨 할 수 있고, 아이는 어른이 시키니 할 수 있다. 아이는 퍽 어린 나이일 때부터 책을 읽고 싶었을까. 아이는 꽤 이른 나이일 때부터 한국말 아닌 영어를 배우거나 한글 아닌 한자 모양을 바라보고 싶었을까.

 우리 집 아이가 세 살 적부터 호미를 손에 쥔 일을 떠올린다. 우리 집 아이가 세 살일 때에 시골로 살림을 옮겼기 때문에, 우리 집 아이는 세 살 적부터 호미를 손에 쥔다.

 우리 집 아이는 돌이 되기 앞서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며 다룰 줄 알았다. 우리 집 아이는 돌박이가 되기 앞서 제 첫 사진‘작품’을 찍었다. 아이 어버이가 사진을 찍으며 일하기에 사진기가 늘 방에서 굴러다니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버지가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치거나 책상이나 물건을 닦을라치면, 저도 걸레질을 하겠다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아이 걸레질은 아주 서툴 뿐 아니라, 아이는 조금 문지르다가 그만두곤 한다. 그렇지만 아이가 손에 쥘 만한 작은 걸레 하나를 빨아 슬며시 내민다. 아이는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하다. 무척 차분한 얼굴로 걸레질에 깊이 빠져든다. 아이는 아이 힘닿는 만큼 걸레질을 한다.

 생각해 본다. 어른은 혼자서 대여섯 시간 쉬지 않고 걸어서 제법 높은 멧봉우리 하나를 오를 수 있다. 어린이는 이렇게 할 수 없다.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라면 꿈조차 꿀 수 없다. 네 살 어린이가 조금만 걸레질을 한다면, 네 살 어린이 힘과 몸에는 이만큼이 딱 알맞기 때문이다.

 젓가락을 쥐고 숟가락을 든 어버이 앞에서 젓가락을 쥐려 애쓰고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으려 하는 아이를 헤아린다. 아이는 사랑을 배울 수 있고, 지식을 섬길 수 있으며, 삶을 사랑하거나 돈을 꿈꿀 수 있다. 어버이 하기에 따라 아이 삶은 크게 달라지거나 거듭나거나 흔들린다.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못한다. 집에서 어린 날 어버이하고 뒹굴던 나날 그대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며 제 길을 찾는다. (4344.5.26.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