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닭 생생 푸른 교과서 6
장-클로드 페리케 지음, 얀 르브리 외 그림, 최인령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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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부터 모르는 ‘닭고기’ 이야기
 [책읽기 삶읽기 54] 장 클로드 페리케·얀 르브리·장 올리비에 에롱, 《나는 닭》(청어람주니어,2008)



 꽤 예전부터 어른책보다 어린이책이 더 많이 나옵니다. 어른책만 내던 적잖은 출판사들은 어린이책을 함께 내는 틀로 바꾸곤 했으며, 어린이책을 내는 출판사를 따로 새끼회사로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한테 읽힐 마땅한 책이 없다며 아쉽게 여기거나 안타까이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이들한테 읽힐 책이 대단히 많은 나머지 추리거나 가리거나 솎거나 골라야 합니다. 좋다고 할 만한 책을 추려서 책이름과 간기와 겉그림만 단출히 그러모은 ‘권장도서목록’만 하더라도 두툼한 책 하나가 될 만큼 이 나라 책마을은 달라졌습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해마다 새로 나오는 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어린이책은 어른책보다 훨씬 많이 나옵니다만,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새로 나오는 책이 퍽 많습니다. 한 해만 지나도 여러 갈래 여러 이야기를 파고드는 여러 가지 책이 새로 태어납니다. 지난날에는 한 권조차 없던 이야기가 이제는 여러 권 되기도 하고, 지난날에는 아무도 다루지 않던 이야기를 오늘날에는 퍽 자주 다루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른책에서 깊이 있게 살피거나 돌아보는 책은 차츰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어린이책에서 깊이 있게 살피거나 돌아보는 책을 한결 찬찬히 헤아리거나 곱씹는 어른책이 좀처럼 못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 시대가 바뀌면서 다른 모습의 닭들이 생겨났어. 농부들이 좋은 닭만 골라 키웠기 때문이야. 유럽 사람들은 작은 닭만 보다가, 19세기 중반 아시아에서 건너온 큰 닭을 보고 감탄했어. 곧 유럽의 닭과 아시아의 닭을 교배해서 종자 개량에 들어갔지 … 오늘날에는 알을 얻기 위한 닭과 고기를 얻기 위한 닭을 분리해서 사육해. 알을 더 잘 낳거나, 살이 더 많이 찌도록 품종을 개량했거든 … 고기를 얻기 위한 닭의 사육시설에는 물통, 먹이통, 그리고 배설 공간이 반드시 있어야 해. 하지만 그 수가 하도 많아서 한 마리당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이 책을 펼친 크기 정도야. 게다가 닭들이 서로 물어뜯고 때로는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부리의 끝을 잘라 버려. 야외에서 기르는 닭도 부리를 잘라 버릴 때가 있어. 사육기간은 다양한데, 표준 닭은 35일 내지 40일째에 목표 무게인 2킬로그램에 도달해. 때로는 너무 빨리 성장해서, 약한 발로 몸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  (12, 34, 36쪽)


 《나는 닭》이라는 이야기책을 펼치면서 생각합니다. 어린이책으로 나온 《나는 닭》이라는 이야기책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닭 한삶을 헤아리는 데에 길잡이가 될 만큼 잘 빚은 알찬 책’이라 할 만합니다. 어린이들은 이 책 하나로 닭 한삶을 차근차근 짚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른책으로 ‘닭 한삶’을 알뜰히 다룬 이야기책으로는 무엇이 있다 할 만할까요. 아니, 어른들은 닭 한삶을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돌아보거나 생각하는 일이 있기나 하는지요. 닭고기를 밥으로도 먹고 술안주로도 먹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닭고기를 사 주는 어른들은, 닭튀김이니 백숙이니 닭곰탕이니 닭꼬치이니 훈제이니 숯불구이니 하면서 즐기는 어른들은, 흔히 값싸게 먹는 닭 한 마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기르며 어떻게 가게에 들어오는지를 알기는 할까요.


.. 병아리는 6개월이면 어른 닭이 돼. 그때부터 수평아리는 수탉, 암평아리는 암탉이 되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 … 암탉은 하루에 몇 번씩 알을 굴려서 골고루 따뜻하게 해 줘. 하루 종일 끈기 있게 알을 품고 있다가, 한 번씩 둥지에서 나와 먹이나 물을 먹고 배설을 해 … 닭을 비롯한 꿩과의 새들은 날기보다는 땅에서 걸어 다니기를 좋아하고, 땅바닥에서 먹이를 찾아. 닭은 아직 이런 습성이 남아 있어서 흙만 보면 단단한 발가락으로 땅을 헤치며 먹이를 찾곤 해. 닭은 흙이나 모래 목욕을 즐기는데, 먼저 땅을 파 모래나 흙이 깃털 속으로 들어가게 해. 그런 뒤에 푸다닥 털면 피부와 깃털 속에 있던 기생충이나 불결한 것들이 함께 떨어져서 깨끗하게 돼 ..  (29, 33, 66쪽)


 예나 이제나 학교에서는 ‘달걀이 몇 일이 지나야 깨어나는가’를 배웁니다. 앎조각으로 배웁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떠올리는 사람이 있으나, 나이가 들어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닭》이라는 책에도 나오지만, 달걀이 깨려면 세이레가 걸립니다. 스물하루가 걸려요.

 《나는 닭》이라는 책에는 ‘사람들이 먹는 고기가 되는 닭’을 며칠 만에 길러내는지도 밝힙니다. “표준 닭은 35일 내지 40일째에 목표 무게인 2킬로그램에 도달해” 하고 들려줍니다. 여기에, 병아리가 어른 닭으로 ‘자연스럽게 자라기’까지는 얼마쯤 걸리는 지도 알려줘요. 여섯 달이 걸린다고도 알려줍니다.

 한국사람은 항생제와 촉진제를 써서 서른닷새보다 더 빨리 고기닭을 만들곤 합니다. 한국사람은 고기닭 한 마리를 아주 값싸게 팔기도 합니다. 아예 다 익혀서 그냥 돈만 내면 값싸게 사먹을 수 있는 닭을 이름난 큰 회사에서 널리널리 팔곤 합니다. 2011년 3월까지 한국에 있는 ‘닭고기 체인점’이 만육천 곳이 넘는다 하는데, 동네에서 조그맣게 하는 곳까지 치면 훨씬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들 닭고기집에서 다루는 닭고기란 한 가게에서 한 마리만 팔아도 날마다 만육천 마리는 가볍게 넘겠지요.

 나라안에 손꼽히는 닭고기회사는 하루에 삼십만 마리이니 사십만 마리이니를 고기닭으로 다룬다고 합니다. 하루에 삼십만 마리를 다루는 닭고기회사가 세 곳이라면 날마다 백만 마리를 웃도는 닭이 고기가 된다는 소리이고, 날마다 백만 마리가 넘는 병아리가 새로 태어나 닭우리에서 자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닭이란, 사람한테 잡아먹히도록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많이 태어나서 어마어마하게 많이 죽어야 하는 목숨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먹는 달걀은 닭고기보다 훨씬 많겠지요. 한국에서는 하루에 달걀이 몇 알쯤 사람들 입으로 들어갈까요.


.. 시골에서 암탉은 매우 소중해.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달걀을 낳아 주거든. 달걀을 낳지 못하면 닭을 요리해 먹을 수 있어 ..  (13쪽)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집에서 닭을 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닭을 칠 만한 널따란 마당을 마련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파트 툇마루에 닭장을 두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원하며 어여쁜 꽃밭은 마련할 테지만 닭우리를 두거나 닭을 풀밭에 풀어서 키우는 도시사람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기만 하지 않던 지난날에는, 시골집 어디에서나 닭을 풀어서 키웠고, 달걀을 때때로 고맙게 얻어서 먹었으며, 닭고기는 더욱 고맙게 여기며 잡아서 먹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고부터는 닭을 치는 사람은 더 돈을 벌고자 더 좁은 우리에 더 많은 닭을 집어넣고 더 빨리 길러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적은 돈으로 더 큰 닭을 더 맛나게 먹고픈 꿈을 키우며 돈만 치릅니다. 닭 한 마리 어떻게 자라거나 죽는가를 아는 도시사람은 몹시 드물어요.


.. 집약적 사육장에서는 닭의 사료에 항생제를 첨가해. 항생제를 먹인 닭은 많이 먹지 않아도 살이 빨리 찌거든. 그러나 항생제는 세균의 저항력을 키워서,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생겨나게 할 위험이 있어 ..  (40쪽)


 아이들은 《나는 닭》을 읽으면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곱씹어 봅니다. 닭은 어떤 짐승이고, 닭과 사람은 서로 어떤 역사를 이었으며, 더 크고 맛있다는 고기닭을 만들려고 사람들이 어떻게 ‘품종 개량’을 했는가를 알 수 있을까요. 고기닭을 만든다며 항생제를 쓴다는 대목이 한 줄 깃들기는 하지만, 정작 닭우리에서 어떤 항생제를 쓰고, 이 항생제 성분이 무엇이며, 이 항생제가 사람몸에 어떻게 파고드는지는 한 줄이건 한 낱말이건 다루지 못합니다. 고기닭한테든 고기소한테든 고기돼지한테든 먹이는 항생제를 알려면 《항생제 중독》(시금치,2005) 같은 책을 따로 사서 읽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기짐승한테 먹인다는 항생제 이야기를 다루는 어린이책은 아직 따로 없구나 싶습니다. 항생제 이야기를 살뜰히 다루는 어른책 또한 몇 없습니다. 어른들부터 너무 바쁜 나머지 항생제를 쓰건 말건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아이들 또한 어른 못지않게 너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이 책 저 책 지식쌓기 하려고 읽기는 하지만, 아이 스스로 제 삶으로 삭이기까지 차근차근 톺아보기란 몹시 힘듭니다.

 이야기책 《나는 닭》은 어른들부터 모르는 닭고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 이러한 이야기책은 어른책으로 읽기보다 어린이책으로 함께 읽어야 ‘어른 스스로 이 나라와 사회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한결 쉬운 말과 더 차근차근 풀어낸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책이야말로,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이 함께 즐기면서 배울 이야기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더 생각합니다. 이야기책은 이야기책으로 그치는 책일 수 없습니다. 책을 읽으며 새기는 이야기는 앎조각이 아닌 삶으로 녹이도록 되새길 때에 뜻과 보람이 있습니다. 앎조각만 쌓으려 한다면 앎조각을 더 많이 쌓은 사람이 더 훌륭하거나 좋은 사람이 되겠지요. 삶으로 녹이도록 되새기며 살아가려 한다면, 책을 한 권만 읽었든 백 권을 읽었든 만 권을 읽었든, 나 스스로 착하며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착하며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테지요.

 책을 읽는다고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는 사람이 똑똑합니다. 집에서 닭을 치는 사람이라면 굳이 《나는 닭》을 읽지 않아도 됩니다. (4344.4.25.달.ㅎㄲㅅㄱ)


― 나는 닭 (장 클로드 페리케 글,얀 르브리·장 올리비에 에롱 그림,최인령 옮김,청어람주니어 펴냄,2008.7.25./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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