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생각
― 사진과 예술



 사진이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사진이 처음 태어나던 때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사진이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하고 이야기할 사람이 따로 없다고 느낍니다. 오늘날까지 사진이 예술이니 아니니 하고 따지려 한다면, 이런 사람은 그야말로 바보라 할 만합니다.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사진이 그대로 사진인가, 또는 사진이 그대로 예술인가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오늘날 사진을 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사진기라는 장비’와 ‘사진이라는 틀’을 빌어 예술을 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이 아닌 예술을 하는 사람이지만, 스스로를 ‘사진작가’라 내세우는 사람조차 있습니다. 붓을 써서 무엇인가를 그린다 하더라도 모두 ‘그림작가’이지는 않습니다. 붓으로 무엇인가를 그리지만 그림작가 아닌 ‘예술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붓이나 연필을 빌어 필름에 무엇인가를 아로새길 때에도 얼마든지 ‘사진작가’로서 사진을 하는 일이 됩니다. 영어로 ‘비디오아티스트’라 했던 백남준 님 같은 분은 텔레비전이라는 연장을 써서 예술을 했습니다. 백남준 님은 예술을 하고자 텔레비전이라든지 비디오라든지 사진이라든지 여러 가지 갈래를 당신 나름대로 받아들이거나 다루면서 당신 예술을 꽃피웠습니다. 영어로 ‘비디오아티스트’이지만, 우리가 알아들을 말로 하자면 예술가, 또는 예술쟁이입니다.

 그림과 같은 효과를 노리며 사진을 할 수 있습니다. 사진과 같은 효과를 노리며 그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림을 보면서 느낌을 얻어 ‘그림 같은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진을 보면서 생각을 빌어 ‘사진 같은 그림’을 그립니다. 바야흐로 예술이라는 큰 바다 테두리에서 사진과 그림 사이에 무언가 허물어질 만하구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이란 무엇이 그림이고, 사진이란 무엇이 사진이며, 예술이란 무엇이 예술이 될 만할까 궁금합니다. 한때 마침표와 쉼표와 말줄임표와 느낌표와 물음표를 뒤섞으면서 ‘새로운 글쓰기’를 한다던 바람이 불다가 지나간 적 있습니다. 글자만 가득 담긴 글로는 글이 밋밋하거나 따분하다고 여기면서 ‘글을 새로운 예술이나 표현매체’로 삼으려던 흐름이 한동안 있었습니다. 요사이는 손으로 쓰는 글을 놓고 영어로 ‘캘리그래피’라는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남다른 글과 글멋과 글예술을 하고프다는 목소리라고 여깁니다.

 틀림없이 글자만 갖고도 예술이 됩니다. 글예술이라 하면 될까요? 그러나, 글이 글이 되자면 글자가 섞인 모양새로 글이 되지 않습니다. 글에는 이야기가 깃듭니다. 손으로 쓰는 글이든 타자기나 컴퓨터로 찍은 글이든, 이 글에 이야기가 깃들 때에 비로소 글이라 합니다. 이야기가 없는 글이란 글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글이 아니라’ 할 때에는 이른바 ‘문학이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사진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사진은 사진기를 써서 종이에 무언가 빛그림을 남겨야 사진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필름에 빛그림을 앉히든 메모리카드에 빛그림을 남기든 한다고 사진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바늘구멍을 낸 상자로 빛그림을 남기든 어떤 장비를 써서 어떤 빛그림을 남기든, 또는 인화지에 몸을 뒹굴든 복사기에 내 몸을 올려놓고 빛그림을 찍든, 사진이 사진이 된다 할 때에는 이 사진에 내 이야기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보여주기만으로는 글이 되지 않고 그림이 되지 않으며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물이나 대상하고 똑같이 보이도록 나타낸다서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물이나 대상하고 똑같이 보이도록 나타낼 때에는 ‘베끼기(복제)’라고만 합니다.

 예부터 사진을 ‘복제술’이라고 일컬으며 살짝 비아냥거린 까닭이란, 사진이라는 빛그림에 ‘사진을 찍는 사람 이야기’를 제대로 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림도 마찬가지라서, ‘실물과 참말 똑같이 그린 그림’이기에 더 놀라운 그림이 되지 않을 뿐더러, 아예 그림이 안 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그림이라 할 때에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 넋이 스미어 그림을 그린 사람 이야기가 담기는 한편, 이 넋과 이야기를 그림 하나로 마주할 우리 가슴에 무럭무럭 샘솟아 피어나는 애틋한 눈물과 웃음이 있을 때에 그림이라 합니다. 우리가 사진이라 할 때에도, 이 사진을 찍은 사람 얼이 깃들며 사진을 찍은 사람 이야기가 들어서는 한편, 이 얼과 이야기를 사진 하나로 마주할 우리 마음밭에 몽글몽글 용솟음치며 태어날 아름다운 눈물과 웃음이 있을 때에 사진이라 합니다.

 이리하여, 사진은 처음 태어날 때부터 사진 그대로 사진이면서, 사진은 또다른 예술 갈래 하나였습니다. 사진을 가리켜 예술이니 예술이 아니니 하고 따지던 사람들은 사진도 예술도 보지 못한 셈입니다. 나아가, 오늘날 사진을 사진으로 여기지 못하거나 ‘사진과 사진기를 써서 예술을 하는 사람’이면서 예술을 마치 사진이라도 되는 듯 껍데기를 씌우는 사람들 또한 사진이든 예술이든 참답게 마주하지 않는 셈입니다.

 사진은 사진이고 예술은 예술입니다. 사진은 사진인 한편 예술이고, 예술은 예술인 가운데 사진으로 녹아듭니다.

 우리 삶 모든 이야기는 삶이면서 예술입니다. 날마다 먹는 밥을 차리는 손길 또한 예술입니다. 밥그릇과 수저를 부시는 설거지도 예술입니다.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치는 손길 또한 예술입니다. 논밭에서 일하며 땀방울 똑똑 흘리는 삶자락 또한 예술입니다. 볍씨 하나가 예술이고, 풀씨 하나가 예술입니다. 볍씨 하나는 볍씨 하나대로 예술이면서 볍씨 그대로 볍씨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 손길이 예술이고, 아이 스스로 땅을 박차며 내딛는 걸음걸이와 웃음꽃이 예술입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사진은 그야말로 사진이면서 사진은 언제나 예술이기도 하다는 넋을 잘 추슬러 주면 좋겠습니다. 사진은 사진일 때에 참말 사진이면서 참으로 예술입니다. 사진은 사진이 아니면서 사진이라는 옷만 걸치려 할 때에는 사진도 예술도 되지 못합니다. 사진은 사진값과 사진빛과 사진밭과 사진꿈 그대로 사진사랑으로 무르익으면서 사진 갈래를 빛내며 예술 누리를 북돋웁니다. (4344.3.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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