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신문에 보내는 글입니다) 

 

 책으로 보는 눈 154 : 반공문학과 친일문학

 요즈음에는 ‘반공문학’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반공문학 따위를 써 보았자 읽을 어린이가 없을 뿐더러 부질없기 때문입니다. 그리 오랜 옛날이 아닌 1980년대 끝무렵까지만 하더라도 이 나라 어린이문학은 온통 반공문학투성이였습니다. 어른문학은 반공문학 울타리에 섣불리 갇히지 않았으나 어린이문학은 엉망진창이었어요.

 그렇다고 이 나라에서 ‘친공문학’을 하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반공문학만큼이나 친공문학은 덧없습니다. 어떤 주의주장을 내세워 어린이한테 억지로 쑤셔넣으려고 하는 무서운 짓을 일컬어 문학이나 교육이라 이름붙일 수 없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착하며 슬기롭고 아름다이 자라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어린이문학이 어른문학과 견주어 오래도록 찬밥처럼 내몰린 탓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아무래도 반공문학이 큰힘을 떨치면서 동심천사주의가 끝없이 춤을 추었기 때문입니다. 반공문학이든 친공문학이든 요즈음에는 찾아볼 길조차 없으나, 동심천사주의문학은 오늘날에도 수없이 나돕니다. 어린이문학이라면 그저 어린이문학이어야 할 텐데, 어린이를 어린이 그대로 바라보지 않으니까 동심천사주의를 비롯해 과학동화이니 철학동화이니 성교육동화이니 생활동화이니 하는 이름을 자꾸 덕지덕지 갖다 붙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요, 문학은 문학입니다.

 이 나라 어린이문학에서 반공문학이든 친공문학이든 동심천사주의이든 처음부터 등을 돌릴 뿐 아니라, 아이들이 아이들 삶을 사랑하며 착하게 어깨동무하도록 이끄는 문학을 했던 분은 이원수 님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1981년에 몸이 아파 숨을 거두기까지 이원수 님 어린이문학은 언제나 어린이 자리에 서서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원수 님조차 일제강점기 끝무렵에 친일문학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로서는 너무 슬프며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어린이문학을 홀로 꿋꿋하며 튼튼히 지킨 어른조차 일제강점기에는 친일문학을 했습니다. 1942년과 1945년 사이에 친일문학을 쓰셨으니 서른을 갓 넘은 나이에 당신 얼굴을 더럽혔습니다.

 그런데 이원수 님은 다른 ‘친일문학 작가’하고는 달랐습니다. 다른 친일문학 작가는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해방과 한국전쟁 뒤로도 권력자한테 달라붙으며 독재부역문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원수 님 한 사람은 마치 온몸으로 죄를 씻으려는 듯이 어린이문학 창작과 번역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낼 뿐 아니라, 젊은 어린이문학가들이 반공문학이나 동심천사주의문학이나 독재부역문학이 아닌 참다운 어린이문학을 하도록 돕거나 북돋았습니다. 이원수 님 땀과 씨를 받아 이오덕·권정생·임길택 같은 어린이문학 창작과 비평이 태어났습니다.

 어떤 이는 《뿌리깊은 나무》 1980년 5월치 ‘털어놓고 하는 말’이라는 꼭지에서라도 이원수 님이 ‘친일문학 뉘우침’을 했어야 한다고 손가락질하지만, 서슬퍼런 독재시절에 어린이문학을 외로이 지킨 사람한테 요즈음 같은 ‘자기고백(커밍아웃)’을 바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원수 님은 목숨이 끊길 듯 말 듯하던 병원 침대에서 입으로 더듬더듬 마지막말을 남깁니다. “얼음 어는 강물이 / 춥지도 않니? / 동동동 떠다니는 / 물오리들아 / 얼음장 위에서도 / 맨발로 노는 / 아장아장 물오리 / 귀여운 새야 / 나도 이젠 찬바람 / 무섭지 않다 / 오리들아, 이 강에서 / 같이 살자.” (4344.3.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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