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圖說 古事記 (ふくろうの本) (單行本)
篠山 紀信 / 河出書房新社 / 2008년 6월
평점 :
(내가 말하고 보여주고픈 사진책은 목록에서 찾을 수 없다. 다만, 시노야마 기신 님 사진 가운데 이와 같은 사진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려주고 싶기에, 이이 문화재 사진책에 이 글을 걸친다.)
한국사람이 사진으로 담지 않은 예쁜 한국사람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9]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 《シルクロ-ド (2) 韓國》(集英社,1982)
일본 사진쟁이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 님은 일본에서 내로라 하는 여자 배우 사진을 꽤 많이 찍었습니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여자 배우 사진’으로 널리 알려졌다 할 만한 사진쟁이일 텐데, 시노야마 기신 님이 내놓은 사진책은 ‘여자 배우 사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은 문화유적 사진을 곧잘 찍었으며, ‘비단길’을 돌아본 발자국을 그러모아 두툼한 사진책 《シルクロ-ド》를 여덟 권짜리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비롯해서 한국과 중국을 거쳐 파키스탄과 이란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터키와 그리스를 지나 이탈리아에서 마무리짓는 《シルクロ-ド》 여덟 권인데, 이 가운데 둘째 권이 한국이고, 여덟 권 가운데 둘째 권 한국 이야기에서 ‘여느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일본사람으로서 일본사람을 찍기란 한결 수월할 텐데 외려 일본 이야기 다룬 첫째 권에서조차 일본사람 모습은 얼마 없습니다. 거의 모두 ‘비단길이 일본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느냐’ 하는 문화유적 사진투성이입니다.
이란에서야 사람 사진 찍기가 힘들밖에 없다지만, 중동이든 중국이든 파키스탄이든 문화유적 사진이 꽤 많이 차지합니다. 뜻밖이라 할 만한 사진책인 《シルクロ-ド》이면서 뜻밖이라 할 만한 엮음새인 《シルクロ-ド》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책보다 한국 이야기 담은 둘째 권에서 ‘여느 한국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다 보니, 1982년에 나온 이 사진책을 돌아보면서 1970년대 끝무렵과 1981년 즈음 한국땅 한국사람 자취를 꽤 알뜰살뜰 느낍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集英社,1982)을 펼치면, 책 겉그림부터 무지개빛 사진입니다. 비단길 사진책 여덟 권 가운데 흑백사진은 한 장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문화유적을 담을 때에 흑백사진을 쓰는 사람이 드물다고도 할 터이나, 사람 사는 발자국을 담는 ‘한국 사진쟁이 사진’은 으레 흑백입니다. 다큐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진쟁이이든 외국 사진쟁이이든 거의 늘 흑백입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 《シルクロ-ド》처럼 무지개빛으로 아리땁게 채우는 일은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집식구와 《シルクロ-ド》 여덟 권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서로 생각합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이 빚은 《シルクロ-ド》이든, 이이가 담은 일본 여자 배우 사진이든, 이이는 ‘예쁘게 느껴 예쁘게 바라본 사람을 예쁘게 읽을 예쁜 사진’으로 태어나도록 하는구나 싶습니다. 이런 느낌은 무지개빛이 아닌 흑백으로 담을 때에도 똑같이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토몬 켄 님이나 기무라 이헤이 님이 담은 사람사진을 들여다보면, 흑백이지만 하나도 흑백 같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데, 시노야마 기신 님 사람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고운 무지개빛이면서 이 무지개빛을 흑백으로 바꾼다 한들 무지개빛 느낌이 사라질 수 없구나 싶어요. 게다가, 무지개빛이 아니고서는 이 느낌을 사진쟁이부터 예쁘다 느끼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러한 무지개빛을 사람들이 바라보지 않는다면 ‘이러한 무지개빛으로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 내 삶이 얼마나 무지개빛인가를 모르며’ 지나치기 쉽겠구나 싶습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 겉껍데기에는 흰옷을 입고 춤추는 할아버지 사진이 담깁니다. 겉껍데기를 열면 사진책 겉장에는 아기를 나란히 업은 두 계집아이 사진이 담깁니다.
겉껍데기 사진이 어느 동네 무슨 사진인지를 알아챌 한국사람이나 인천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만, 겉껍데기 춤추는 흰옷 할배 사진은, ‘이제는 헐려 사라진 인천공설운동장(이 운동장은 자그마치 1930년대에 터를 닦은 역사가 매우 깊은 곳입니다만 인천시는 이런 역사를 아랑곳하지 않고 새 축구전용구장을 짓는다며, 이 공설운동장하고 옆에 있던 야구장을 함께 허물었습니다. 인천 숭의야구장 또는 도원야구장은 1920년대에 웃터골이라는 데에 처음으로 마련되었다가 이제는 헐린 자리에 1934년부터 옮겨져서 2008년까지 있다가 공설운동장과 함께 이슬처럼 사라졌습니다)에서 민속무용대회를 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로, 사진에 나온 흰옷 할배는 학춤을 춥니다. 사진 오른쪽 아래를 찬찬히 살펴보면 숭의3동 꼭대기 전도관 건물과 밑으로 죽 이어진 골목집 모습이 보입니다. 아는 사람이 드물 테지만, 황해도 은율탈춤은 인천에서 하고, 무형문화재도 인천에서 지정되었습니다. 전국 민속무용대회를 인천에서 할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어린 날 공설운동장에서 했던 민속무용대회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인천에서 민속무용대회를 하던 이무렵이든 다른 무렵이든, 한겨레 여느 사람들이 즐기거나 누리던 옛춤을 사진으로 담은 한국 사진쟁이는 얼마쯤 있었을까요.
이보다 한국땅 여느 사람이 즐기는 문화라든지 한국땅 여느 사람이 살아가는 매무새를 애써 흑백으로 담는 사진이 아니라, 빛깔 고운 결 그대로 무지개빛을 살리는 사진쟁이는 얼마나 될까요.
한국에서 골목길 사진을 찍는 꽤 많은 분들은 거의 모두 흑백으로만 바라보며 흑백으로만 찍기 일쑤입니다. 삶터와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이 흑백이기 때문에 흑백사진을 찍을밖에 없을 테고, 삶터와 사람을 마주하는 매무새가 흑백인 탓에 흑백사진을 찍기만 해요. 골목길 모습이 흑백사진하고 잘 어울리니까 흑백사진을 찍을 만하지 않습니다. 골목길 삶자락을 ‘흑과 백’이라는 두 갈래로만 쩍 갈라서 바라보니까, 한국땅 숱한 사진쟁이는 골목길 사진을 흑백사진으로만 담기 일쑤이며, 때때로 무지개빛으로 담는다 하더라도 ‘흑과 백’이라는 틀을 스스로 떨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골목동네 사람과 삶터가 얼마나 아리땁게 빛나면서 결이 고운지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시노야마 기신 님은 한국땅 여느 골목길 모습도 제법 사진으로 옮깁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은 한국땅 여느 골목을 다른 사진하고 똑같이 무지개빛으로 바라보며 무지개빛으로 담습니다. 햇볕과 그림자가 알맞게 드리운 어여쁜 모습을 놓치지 않습니다. 아니, 놓칠 까닭이 없으며, 햇볕과 그림자를 기쁘게 받아들여요. 신나게 즐깁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은 ‘비단길’이 사진책 줄거리입니다만, 햇볕과 그림자를 예쁘게 맞아들여 기쁘게 즐기는 한국사람하고 나란히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쟁이 스스로 기쁘게 즐기는 예쁜 넋을 곱다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이탈리아에서 비롯하여 중동과 아시아 여러 나라와 중국을 거쳐 한국땅을 마지막으로 해서 일본으로 들어온 비단길 문화는 ‘한국에서 예쁘게 꽃피웠구나’ 하고 시노야마 기신 님부터 느끼기 때문에, 시노야마 기신 님 사진책 《シルクロ-ド》 여덟 권 가운데 한국 이야기에서는 사람사진이 아주 많이 나올 뿐 아니라, 꽤 재미나기도 하며, 참 살갑기까지 합니다.
한국땅에서는 애써 문화유적을 돌아보며 사진으로 담을 까닭이 없는 셈입니다. 중국 문화이건 유럽 문화이건, 또 일본이나 몽골이나 무슨무슨 서양 문화이건,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저희 나름대로 예쁘게 곰삭이며 신나게 살아가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예쁜 사람을 예쁜 눈길과 손길을 거쳐 예쁜 사진으로 빚으면 됩니다. 어찌 보면 ‘비단길 사진’ 가운데에 ‘옷감집 사진’을 넣는 모습이라든지 ‘자개장 문을 열고 이불과 베개 놓인’ 모습 찍은 사진이라든지 뜬금없다 할 만합니다. 여느 살림집 여느 책상머리 모습 사진이라든지 시골 논밭 돌보는 사람들이 새참 먹는 모습 사진이라든지 가을날 울긋불긋 물든 나무 밑에서 올망졸망 노는 어린이들 담은 사진 또한 비단길 문화랑 뭐가 이어졌느냐 할 만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여느 사람 수수한 삶이야말로 ‘문화’이자 ‘비단길 문화’입니다. 박물관에 모셔진 궁궐사람 금관이건 양반집 술병이건 똑같이 문화라 할 터이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다루지 않는 여느 사람 수수한 삶이 곧바로 문화이자 비단길 문화입니다. 한국땅 사진쟁이조차 제대로 사진으로 담지 않은 한국사람 모습이기에, 《シルクロ-ド》를 내놓은 시노야마 기신 님은 누구보다 이 같은 모습을 더 파고들며 가슴으로 껴안으려 했다고 느껴요.
사진을 함께 바라보던 옆지기는 문득 “포대기 빛깔이 참으로 곱다”고 말합니다. 문득 이런 말을 뱉으면서 “우리 나라에서 포대기 사진을 칼라로 찍은 사람이 있나요?” 하고 묻습니다.
옆지기가 문득 느끼면서 뱉은 말마디와 문득 물은 말마디에 말문이 막힙니다. 털어놓고 말하자면, 저는 이렇게 느끼지 못했고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로서는 골목길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흑백사진으로 빚을 수 없다고 느껴 무지개빛으로 사진을 담기는 하나, 포대기 빛깔을 고이 돌아보거나 느끼려 하지 못했어요. 옆지기 말을 듣고 나서 사진을 가만히 다시 돌아보며 새삼 깨닫습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에서는 아기 업은 어린 계집아이 포대기 빛깔뿐 아니라, 여느 저잣거리에서 아기를 업은 아줌마들 포대기 빛깔이 모두 다릅니다. 모두 다를 뿐 아니라 모두 밝고 맑으며 곱습니다. 시노야마 기신 님은 이 빛깔을 하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사람이 사진으로 담지 않은 예쁜 한국사람을 언제 어디에서나 듬뿍 느끼면서 신나게 사진기 단추를 눌렀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1970∼80년대 한국사람이 얼마나 예쁘며 재미나고 즐겁게 알뜰살뜰 살림을 꾸렸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국사람 한국사진으로는 알아챌 길이 없습니다. 《シルクロ-ド (2) 韓國》을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을 사랑하거나 좋아한다는 서양사람조차 한국사람 어여쁜 무지개빛까지 알아채거나 알아보지는 못해요. 그래도 한국사람은 ‘서양사람이 바라본 한국 모습 사진’을 썩 좋아하는 듯합니다.
일제강점기 역사와 임진왜란 역사 때문에 한국사람이 무던히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일본사람 가운데 빛을 빛 그대로 사랑하며 아끼는 사진쟁이가 틈틈이 한국사람 어여쁜 무지개빛을 조용히 예쁘게 사진으로 옮겨서 고즈넉하게 ‘사진 문화유산’을 새삼스레 선물처럼 내밀어 줍니다. (4344.3.15.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