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과 사진책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9.
나는 도서관을 열면서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처음부터 ‘사진책 도서관’을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문득 사진책으로 도서관을 꾸려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진책을 즐겨 사서 읽지만, 사진책만 즐겨 사서 읽지 않는다. 인문책이든 국어사전이든 과학책이든 문화책이든 만화책이든 어린이책이든 환경책이든 믿음책이든 교육책이든 딱히 가리지 않는다. 내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여기면 기꺼이 사서 읽는다. 내가 굳이 안 읽어도 될 책이라면 애써 사지 않으며, 내 삶하고 동떨어진 이야기를 다룬다면 애써 읽을 까닭이 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왜 사진책이었을까. 더구나 왜 인천이었을까. 사람들은 내 ‘사진책 도서관’에 찾아오면서 “책이 많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책도 많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진책 도서관이기에 사진책만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진책 도서관이 아니라 그림책 도서관이라 하더라도 그림책만 갖출 수 없다. 그림책 하나가 이루어지기까지 읽으며 받아들일 수많은 책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 다만, 그림책 도서관이라면 한복판에는 그림책을 놓겠지.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거나 읽는 사진책이란 사진을 담은 책이다. 사진을 담은 책을 들여다보면 ‘사진으로 무언가 찍어야’ 이 책이 태어난다. 그러면, 사진쟁이는 무엇을 찍는가. 사진쟁이가 찍는 사람이나 자연이나 사물은 어떤 사람이나 자연이나 사물인가.
사진쟁이는 사진기를 쥐기 앞서 오롯한 한 사람으로서 온누리를 껴안아야 한다. 내 사진감이 될 사람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리하여 사진쟁이는 여러 가지 사진책뿐 아니라 인문책과 문학책을 읽어야 한다. 어린이를 사진으로 담으려 하는 사람이 어린이 넋과 삶과 꿈을 모르고서 어린이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겠나. 그저 예쁘장한 모습을 담으려 한다면 어린이 삶을 모르고도 찍을 수 있을 테지만, 어린이 삶을 모르며 찍는 예쁘장하기만 한 사진도 사진이라 일컬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내 도서관에는 사진책 옆에 만화책이 놓인다. 인천에 있을 때에도 사진책 곁에 만화책이 있었고, 옆에 그림책이 있었으며, 한쪽에 국어사전 수백 가지하고 인문책이 나란히 놓였다. 왜냐하면 사진길을 걸어가면서 이 모든 책을 두루 살피지 않고서야 사진쟁이 꿈을 이루지 못하니까.
멧골자락으로 옮긴 뒤에도 사진책 옆에는 만화책이 놓인다. 이웃한 이오덕학교 어린이들은 사진책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아마, 사진책이 있는 줄조차 못 느끼리라. 어린이들은 만화책만 읽는다. 앞으로는 그림책이나 동화책도 읽을 테고, 다른 글책도 읽을 테지.
아마 내 도서관에 찾아올 사진쟁이라면 사진책만 보일 텐데, 사진책과 함께 만화책도 읽을 수 있을까. 만화에 담는 꿈과 넋과 눈길을 곰곰이 살피면서, 사진으로 담는 꿈과 넋과 눈길이 어떠할 때에 더없이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울는지를 느낄 수 있을까.
도서관을 인천에서 연 까닭은 내 고향이 인천이기도 했지만, 예전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일할 때에 낸 통계를 보면, 우리 나라에서 책을 가장 안 읽는 곳이 인천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지지리도 안 읽는 인천사람한테 책 선물을 하듯이 책 나눔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새책이든 헌책이든 그닥 장만하여 읽지 않는 인천사람인 탓에 도서관을 연대서 더 즐거이 찾아와서 책하고 사귀지는 못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서울 등쌀에 시달리고, 늘 서울 들러리 노릇을 하는데다가, 좁은 우물인 인천을 벗어나 큰물인 서울에서 놀고픈 인천사람인 나머지, 인천이라는 터전을 고이 사랑하면서 인천사람 넋을 키우기란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인천에서 예쁘게 뿌리내리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한테는 책이라는 씨앗 하나가 깃들었을까. 나는 내 고향마을 이웃한테 책씨 하나 남기고 멧자락으로 도서관을 옮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