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말리기
서울로 볼일을 보러 오다. 여관에서 하룻밤 묵다. 아침에 여관 텔레비전을 켠다. 텔레비전에서는 중국땅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이나 카자흐스탄 같은 나라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나온다. 나로서는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타고 땅을 내려다볼 일이 없을 테니까, 이러한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그림으로 보는 일이 놀랍다. 아, 이렇게 보이는구나.
중국땅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나오는데, 중국에서는 옥수수를 거두어 말려야 할 때에 널따란 고속도로를 가득 채우도록 펼쳐서 말리기도 한단다. 이리하여 옥수수 거둠철에는 고속도로를 막아 차가 못 다니도록 한단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 시골에서도 곡식을 말리느라 찻길 한켠에 죽 펼치곤 한다. 도시에서도 골목길 한켠은 고추를 말리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어느 골목은 한 사람이 지나갈 틈만 남기고 돌계단까지 빼곡하게 고추를 널곤 한다.
다시금 생각해 본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서 죽고 만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며 ‘미군부대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 삶’을 담은 사진책 《어머니의 손수건》(이용남 사진,민중의소리 펴냄)이 떠오른다. 이 사진책을 들여다보노라면 미군부대가 군사훈련을 하는 시골마을 사람들은 거둠철에 곡식을 찻길 한켠에 널어서 말리는데, 미군부대 장갑차나 탱크는 일부러 곡식을 깡그리 밟으며 지나간단다. 한국으로 온 미국 군인 가운데에는 미국땅에서 농사꾼도 있을 테고, 미국땅에서 농사짓는 어버이를 모시는 이도 있을 텐데, 왜 미국 군인은 한국에 와서 이런 몹쓸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까.
아니, 이 나라 정부는 왜 나라밖 군대를 제 나라에 고이 모시는가. 아니, 이 나라 정부는 가을날 거둠철에 농사꾼이 곡식을 말리느라 찻길에 죽 펼쳐놓아야 할 때에, 기쁘게 ‘자, 가을날 거둠철이니까 여기 고속도로는 막겠습니다.’ 하고 외칠 수 있는가. 시골길도 아스팔트나 시멘트가 깔리는데, 가만히 헤아리면 이 시골길이란 지난날 농사꾼들이 곡식을 말리던 흙길이었다. 이 흙길에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덮이며 자동차가 오가고, 시골사람 또한 자가용을 마련해서 타고 다닌다. 이제 곡식은 길바닥에 펼쳐서 말리기보다 기계를 써서 말린다. (4344.3.5.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