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백기완 님이 어느 땅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 막상 떠올려 보자니 잘 생각나지 않는다. 황해도였던가 평안도였던가. 황해도가 아니었나 싶은데, 함경도이든 전라도이든 크게 보자면 한겨레 삶터에서 태어난 사람이요, 좁게 보자면 여느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백기완 님이 내놓은 책을 모두 읽었다. 예전 책부터 요즈음 책까지 모두 읽었다. 백기완 님이 쓴 시집 《젊은 날》은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로 나왔던 판에 따라 다 있다. 예부터 백기완 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고 생각했다. 백기완 님은 ‘당신 고향마을을 몹시 아끼며 사랑하는’ 분이다.
백기완 님을 일컬어 ‘우리 말을 잘 살리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왜 사람들이 백기완 님을 일컬으며 이런 이름표를 붙이는지 알쏭달쏭하다. 백기완 님 책을 제대로 안 읽었기 때문일까. 엉터리로 읽었기 때문일까. 읽다가 덮었기 때문일까. 백기완 님 삶과 넋을 읽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우리 말을 잘 살리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는 백기완 님한테 걸맞지 않다고 느낀다. 백기완 님은 ‘우리 말을 잘 살리는’ 사람이 아니다. 백기완 님은 당신이 태어나서 자란 시골마을 사람들이 쓰던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태어나서 자란 시골마을, 곧 당신 고향마을 사람들 말마디 가운데 ‘한겨레 삶터’ 곳곳에서 함께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말을 즐겁게 나누는 사람이다. 전라도말을 전라도사람만 쓰거나 경상도말을 경상도사람만 쓰기보다, 서로서로 예쁘게 잘 쓰는 말을 다 함께 쓰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생각하며, 몸소 이러한 넋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백기완 님은 서울말을 표준말로 삼는 흐름을 달가이 여기지 않는다. 서울사람이 예부터 서울에서 살아오며 쓰던 말이 오늘날 서울말이 아니기도 할 뿐더러, 지식인들이 표준말이건 서울말이건 한국말이건 너무 좁다랗게 옭아매는 모습을 몹시 안타까이 바라본다. 우리가 쓸 말이란 우리 겨레가 저마다 뿌리내린 고향마을에서 살가이 주고받는 말을 한껏 북돋우면서 나누는 말이어야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이 백기완 님이라고 느낀다.
백기완 님은 당신 스스로 우리 말을 잘 살려서 쓴다고 뽐내지 않는다. 백기완 님은 당신이야말로 우리 말을 알뜰히 사랑한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당신은 당신 고향마을 사람들 구성지며 착한 말을 온몸으로 사랑하고 온몸으로 아낀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인천사람으로서 인천말을 한다. 인천말은 부천말이나 수원말하고 다르다. 인천말은 서울말이나 경기말하고 다르다. 수원사람이 쓰는 수원말은 수원말대로 곱다. 내가 쓰는 인천말은 내 인천말대로 곱다. 더 곱거나 덜 고운 말이란 없다고 느낀다. 서로서로 똑같이 고울 뿐 아니라, 서로서로 나란히 예쁘다. 고운 사람으로서 고운 넋에 걸맞게 고운 말을 쓴다. 예쁜 삶을 사랑하면서 예쁜 꿈을 품고 예쁜 글을 쓴다. 백기완 님은 당신 고향을 예쁘게 사랑하며 곱게 아끼는 푸근한 할아버지이다. (4344.3.5.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