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의 비밀 정원
박지윤 사진.글 / 엘컴퍼니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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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가 될 수 없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20] 박지윤, 《박지윤의 비밀정원》(엘컴퍼니,2007)



 예쁘다 싶은 모습을 보는 눈이 참말로 내가 보는 눈인지, 누군가한테서 듣거나 본 다음 ‘남들이 예쁘다 말하니’까 나도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따라서 보는 눈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가 찍은 사진 한 장을 남한테 내보이면서 ‘예쁘게 봐 주셔요’ 하고 바라는 마음인지, 나 스스로 내 삶을 예쁘게 일구면서 나부터 참으로 예쁘구나 하고 느껴 절로 웃음이나 눈물이 흐르는 사진을 찍는 마음인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진은 취미가 될 수 없습니다.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삶’이 될 뿐입니다. 사진은 취미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죽이기를 하듯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취미가 되지 않기 때문에, 멋을 낸다거나 겉치레를 하듯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취미하고 동떨어지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꾸미거나 돋보이도록 치레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내가 좋아해서 내 모든 마음과 몸을 바치며 즐기는 삶’이 될 뿐입니다.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는 ‘취미로 여기듯’ 보내지 않습니다. 내가 보내는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은 ‘취미로 삼으며’ 보내지 못합니다.

 내가 보내는 스물한 살 적 1월 15일은 이날 하루뿐입니다. 내가 맞이하는 서른두 살 적 2월 23일은 이날 하루뿐입니다.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뿐더러, 언제라도 돌이킬 수 없는 나날입니다. 그냥 좋아서 한다 말할는지 모르지만, 그냥 좋으니까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냥 좋기 때문에, 이 좋은 느낌을 사랑하거나 아끼면서 늘 곁에 둡니다.

 늘 곁에 두기에 삶입니다. 늘 곁에 두면서 생각하거나 보듬기에 삶이에요. ‘삶’이라 해서 무겁지 않습니다. ‘삶’이기에 더 가볍지 않습니다. 삶은 그예 삶입니다. 사진을 하는 삶이란 한결같이 똑같은 삶입니다. 프로사진가라 해서 더 돋보이거나 놀라운 삶이 아닙니다. 아마사진가라 해서 더 어설프거나 모자란 삶이 아니에요. 사진기를 쥐었으면 누구나 사진삶을 보냅니다. 이 사진삶은 그냥 재미 삼거나 장난 삼아서 보내지 못합니다. 누구한테나 더없이 거룩하면서 기쁜 하루 한때를 즐기면서 보내는 사진삶이에요.

 아직 서투르기 짝이 없어 엉성하게 사진을 찍더라도 좋은 사진삶입니다. 오래도록 가다듬었기에 익숙하게 사진을 찍어도 좋은 사진입니다.

 사진찍기는 틀이 없습니다. 어떻게 찍어야 좋은 사진이 된다거나 어떻게 찍으면 나쁜 사진이 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대로 찍는 사진이요, 내가 살아가는 대로 담는 사진입니다.

 그래서, 사진기를 들기 앞서, 나 스스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 삶에 따라 찍는 사진이지, 손놀림이나 손재주에 따라 찍는 사진이 아니에요. 내가 무엇을 하면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가에 따라서 ‘내가 사진기를 쥐어 사진기를 들여다볼 때’에 ‘사진기를 거쳐 내 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은 사진기를 쥐어 들여다볼 때에 ‘내 눈에 아름답다 느껴지는 모습’이 가득합니다. 나 스스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은 사진기를 쥐어 들여다볼 때에 ‘내 눈에 힘들다 느껴지는 모습’이 넘칩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를 찍든 무엇을 찍든 사랑이 어립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서 어떤 물건을 찍든 믿음이 서립니다.

 몸이 홀가분한 사람은 홀가분하게 일합니다. 몸이 무거운 사람은 무겁게 일합니다. 몸이 홀가분할 때에 사진기를 들면 홀가분한 넋이 사진으로 스밉니다. 몸이 무거울 때에 사진기를 쥐면 무거운 얼이 사진으로 파고듭니다.

 저는 집에서 아이를 날마다 수십 장쯤 사진으로 담는데, 때때로 아이 모습을 안 찍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지나치게 땡깡을 부리거나 고달프도록 말을 안 들을 때에는 아이가 미운 나머지 사진기를 들지 않습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미워한다니 말이 안 된다 할 테지만, ‘너 말야, 참말 엄마랑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맞니?’ 하고 묻고플 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어버이로서 아이를 참다이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하니까, 그만 아이 마음을 더 살피지 못하고, 아이 마음을 더 살피지 못하면서 더 따사로이 보듬거나 놀지 못했기에, 아이는 아이로서 골을 부리거나 딴청만 피울 수 있습니다. 밑뿌리를 따지면 아이 탓이라기보다 어버이 탓입니다. 저 스스로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이가 밉게 보일 때에는 내 마음밭이 엉망진창이라는 소리인 만큼 사진기를 들지 못해요.

 운동선수는 몸이 흐트러지면서 마음 또한 흐트러지는 때를 맞이하곤 합니다. 영어로 ‘슬럼프’라 하는데, 이때에는 무엇을 해도 다 안 됩니다. 이때에는 아예 운동이나 연습을 안 해야 합니다. 그저 푹 쉬면서 몸과 마음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전문가일 수 있고 풋내기일 수 있습니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흐트러진 때에도 놀랍다 싶은 사진을 찍어낸다 할 만한지 모릅니다. 사진기자 일을 하는 사람은 집에 무슨 일이 터졌든 어떤 아픈 일을 맞이했든, 사진기자한테 주어진 몫을 사진기자로서 빈틈없이 해내야 합니다. 일은 일대로 마친 뒤에 눈물을 흘리든 웃음을 터뜨리든 해야 한답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지친 채 사진을 찍으면 어찌 되려나요. 이냥저냥 볼 만한 사진이 나오려나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싶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가요. 보도사진에는 사진기자 넋이, 아니 사진을 찍는 내 마음이 깃들지 않을까요.

 보도사진일지라도 사진을 찍은 사람이 어떠한 마음이었는가 하는 이야기가 살포시 묻어납니다. 만듦사진이라 해서 사진을 만든 사람 손길과 마음길이 안 묻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사진에는 모든 사람들 하루하루 이야기가 스며듭니다.

 사진을 바라볼 때에 좀 따분하다 싶다면, 사진을 찍은 사람 마음이 좀 따분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바라보면서 ‘이 사진은 영 재미없는데’ 하고 느낀다면, 참말로 이 사진을 찍은 사람부터 삶을 재미없게 꾸리기 때문입니다.

 박지윤 님 사진이야기를 담은 《박지윤의 비밀정원》(엘컴퍼니,2007)을 읽습니다. 박지윤 님은 사진을 무척 좋아하고 사진기를 여럿 모은다고 합니다. 일하는 틈틈이 사진기를 만지며, 사진기 다루는 솜씨가 꽤 뛰어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다만, 박지윤 님이 낸 《박지윤의 비밀정원》이라는 사진책에서 박지윤 님이 ‘사진으로 살아가는 내 넋’으로 무엇을 나누거나 보여주려 하는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찍기란 겉멋이 아닌데, 박지윤 님은 이 사진책 하나로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주는가요.

 “살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중 얼마만큼 진심이었을까. 얼마만큼 진실이었을까. ‘사랑해’ 하고 수천 번 내뱉는 동안 나는 정말 얼마만큼의 진짜 사랑을 했던 것일까(51쪽).” 하는 이야기는 박지윤 님이 겪은 사랑을 놓고만 하는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박지윤 님 스스로 찍는 사진을 놓고도 똑같습니다. ‘살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 얼마만큼 내 마음을 담았을까? 나는 얼마만큼 참다이 사진을 찍었을까?’ 하고 스스로 묻는 소리입니다.

 “진심은 진실한 마음을 통해 전해진다 믿었는데 그 진심마저 거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211쪽).”고 생각한다면, ‘내가 찍은 사진은 내 마음을 그대로 담았다고 믿었는데, 내가 찍은 사진마저 참말 내 마음을 담은 예쁜 사진이 아닌 듯하다.’고 느낀다고 스스로 뉘우치는 셈입니다.

 박지윤 님은 책끝에 “나는 이 사진들이 단순히 내가 주인공인 것에 대해 기억되길 바라지 않는다. 단순한 재현이 아닌 나 스스로를 다시 깨닫게 하고 떠오르게 하고 그렇게 기억되길 바라는 온전한 마음이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또 “처음 사진을 시작하면서는 주로 멋진 풍경이나 세팅된 사물들을 찍었는데, 언젠가부터 아무런 의미 없는 시멘트 바닥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생명체가 하나 들어 있는 것만으로 사진이 숨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사진은 ‘다시 보여주기’일 수 없습니다. 사진에는 사진을 찍은 사람 마음이 담깁니다. 사람을 찍는다 해서 살아숨쉬는 목숨을 찍었다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찍은 사진이라지만 메마르거나 차갑거나 뻣뻣한 기운만 느낄 수 있습니다. 나무를 찍은 사진이라지만 따뜻하거나 보드랍거나 살가운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찍더라도 내 마음과 삶이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벽돌 한 장을 찍는대서 정물사진이 아닙니다. 사람을 찍어도 정물사진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찍으나 풍경사진일 수 있고, 너른 들판을 찍었는데 사람사진일 수 있어요.

 바라보는 눈에 따라 사진이 달라지고, 바라보는 눈이란 바로 내가 일구는 하루하루가 그러모이는 삶입니다. 이리하여 사진은 취미가 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오직 내 삶이 될 뿐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이야기가 내가 찍는 사진 곳곳에 차곡차곡 담깁니다.

 내 삶을 사랑해 주소서. 내 삶을 사랑해야 내 사진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하루를 사랑하여 보살펴 주소서. 내 하루를 사랑하여 보살필 때에, 내가 찍은 사진을 나부터 좋아하면서 나한테 새힘을 북돋우는 기쁜 이야기보따리로 꽃피웁니다. (4344.3.3.나무.ㅎㄲㅅㄱ)


― 박지윤의 비밀정원 (박지윤 사진·글,엘컴퍼니 펴냄,2007.10.15./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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