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상 : “그 이상(以上)이다”라 할 때에는 “그보다 크다”로 다듬으면 됩니다. “평균 이상이다”라 할 때에는 “평균보다 높다”로 다듬으면 되고요. 아니, 다듬는다기보다, 이처럼 이야기해야 알맞습니다. “이상(理想)을 높게 펼치라”라면 “꿈을 높게 펼치라”라든지 “뜻을 높게 펼치라”로 손질하면 됩니다. 아니, 이때에도 손질한다기보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에 올바릅니다. 우리는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며, 제대로 생각하는 길을 잊은 얄궂은 사람입니다.
[이상(異常) : 정상적인 상태와 다름.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름.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음]
※ 이상한 일
→ 다른 일
→ 무언가 다른 일
※ 이상한 느낌
→ 다른 느낌
→ 아리송한 느낌
→ 알 수 없는 느낌
※ 이상한 사람
→ 남다른 사람
→ 알쏭달쏭한 사람
→ 얄궂은 사람
→ 못미더운 사람
22. 차이 : 우리말을 담은 국어사전이 사랑스럽거나 아름답다면, 우리 말사랑벗한테 국어사전을 틈틈이 읽고 알뜰히 살피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을 실은 국어사전이 안쓰럽거나 슬프더라도, 이 국어사전을 가만히 살피고 곰곰이 돌아보면서, 말사랑벗들 나름대로 옳고 바르게 우리말을 헤아리면서 익히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자말 ‘차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름”이라고 풀이합니다. 이 말풀이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면, 우리말 ‘다름’을 한자말로는 ‘차이’로 적는 셈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우리가 쓸 말은 ‘다름’이고,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 쓸 말은 ‘差異’예요. 한글로 ‘차이’라 적는다 해서 우리가 쓸 만한 낱말은 아닙니다.
[차이(差異) :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 견해 차이가 크다
→ 생각이 크게 다르다
→ 생각이 참 다르다
→ 생각이 아주 다르다
→ 생각이 크게 벌어진다
→ 생각이 크게 갈린다
23. 접촉 : 제가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며 중학교로 들어설 때에는, 두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 ‘말투’가 달랐습니다. 국민학교 때에는 쉬운 말투를 쓰지만, 중학교부터는 어려운 말투를 썼어요. 이를테면, 국민학교 때까지는 ‘세모’와 ‘네모’였으나, 중학교부터는 ‘삼각형’과 ‘사각형’이었어요. 국민학생 때 자연을 배우면서 들은 말은 ‘닿다’와 ‘맞닿다’였으나, 중학생 때부터는 과학을 배우면서 ‘접촉’이라는 말을 듣고 써야 했습니다. ‘닿은 자리’나 ‘닿은 곳’ 같은 말투는 과학하는 말투가 될 수 없고, 오로지 ‘접촉면’이라고만 해야 했어요.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사회라는 데로 나오니, 우리나라 대통령과 다른 나라 대통령이 만나든, 이웃과 이웃이 만나든 으레 ‘접촉’이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말은 ‘만나다’요 ‘사귀다’이며 ‘어울리다’인데, 이런 우리말을 듣거나 쓸 자리는 자꾸 사라집니다.
[접촉(接觸) : 서로 맞닿음. 가까이 대하고 사귐]
※ 이웃과의 접촉을 꺼리다
→ 이웃과 만나기를 꺼리다
→ 이웃과 사귀기를 꺼리다
24. 이하 : 학교에서 ‘이상-이하’랑 ‘미만-초과’가 어떻게 다른가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넘다/넘치다-모자라다’라든지 ‘웃돌다-밑돌다’라든지 ‘적다-많다’ 같은 말이 어떻게 다른가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한눈에 알아보도록 쉬우면서 바르게 말하도록 우리말을 가르치는 어른이 없었고, 쉽고 바른 우리말을 애써 배우려는 또래 동무 또한 없었습니다. 가르치면 그저 가르치는 대로만 배워야 하는 ‘쑤셔넣기(주입식)’만 판쳤습니다.
[이하(以下) :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적거나 모자람. 순서나 위치가 일정한 기준보다 뒤거나 아래]
※ 18세 이하 관람 불가
→ 열여덟까지 볼 수 없음
→ 열여덟 살까지 못 봄
→ 열아홉 안 되면 못 봄
→ 열아홉부터 볼 수 있음
25. 작업 : 사회 한켠에서는 ‘일하는’ 사람을 일컬어 ‘근로자(勤勞者)’라 하고, 다른 한켠에서는 ‘노동자(勞動者)’라 합니다. 어느 쪽에서도 “일하는 사람 = 일꾼”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는 곳은 ‘일터’이지만 ‘작업장(作業場)’이라고만 가리킬 뿐이요, 이제는 ‘잡(job)'이라는 영어를 두루 쓰기까지 합니다.
[작업(作業) : 일을 함]
※ 작업을 완수하다
→ 일을 다하다
→ 일을 마치다
→ 일을 끝내다
→ 일을 끝맺다
→ 일을 마무리하다
→ 일을 마무리짓다
26. 계속 : 처음 듣고 말을 할 때에는 그때와 그곳에 알맞으니까 이런 말을 써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으리라 봅니다. 나중에는 왜 이런 말을 써야 하는지를 헤아리지 않으면서 그냥 말합니다. 익숙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길든다고 해야 하나요. 참으로 좋은 말인지,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을 말인지, 여러모로 괜찮은 말인지를 살필 겨를이 없을 뿐더러, 애써 살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쓰니까 그냥 쓰는 말입니다. 자꾸 쓰면서 버릇이 되는 말입니다. 잇달아 듣고 말하다 보니 뿌리내리는 말입니다. 좋은 말도 익숙해지지만, 궂은 말 또한 익숙해집니다. 익숙해지는 말이란 참 무서운 삶이라고 느껴요.
[계속(繼續) : 끊이지 않고 잇따라]
※ 계속 진행하다
→ 그대로 이어가다
→ 끊지 않고 하다
※ 계속 걷다
→ 꾸준히 걷다
→ 한결같이 걷다
※ 계속 펼치다
→ 잇달아 펼치다
→ 자꾸 펼치다
27. 순수 : “순수한 뜻이었어.” 하는 말을 곧잘 했습니다. 이래저래 나쁜 뜻이란 없었다는 마음을 밝히려고 읊은 말입니다. 이제 와 돌이키면 “나쁜 뜻은 없었어.”라든지 “그런 뜻이 아니었어.”라든지 “해코지할 마음이 아니었어.”라든지 “일부러 한 일이 아니었어.”처럼 말해야 올발랐겠구나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순수예술”이나 “순수학문”이나 “순수문학”을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숱한 예술이나 학문이나 문학이 ‘돈을 바라보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순수’라는 낱말을 꾸밈말처럼 붙이는구나 싶은데, “못된 생각이 섞인”다면 예술도 아니고 학문도 아니요 문학도 아니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를 앞에 붙일 수 없습니다. “그냥 학문을 할” 뿐이고, “좋아하는 문학을 할” 뿐입니다.
[순수(純粹) :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 순수한 애정
→ 티없는 사랑
→ 맑은 사랑
→ 꾸밈없는 사랑
→ 깨끗한 사랑
→ 고운 사랑
28. 선택 :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분들을 ‘뽑는’ 자리에서는 으레 ‘선거’와 ‘선택’이라는 낱말만 쓸 뿐, ‘뽑다’나 ‘뽑기’ 같은 말은 쓰지 않습니다. 그분들한테는 ‘뽑다’ 같은 낱말이 버르장머리없다고 느끼기 때문일까요. 대통령도 뽑지만, 반장도 뽑습니다. 국회의원도 뽑으나, 청소당번도 뽑습니다. 뽑는 일이랑 비슷하게 ‘가리기’와 ‘추리기’와 ‘솎기’와 ‘골라뽑기’가 있습니다. ‘추리기’와 ‘간추리기’는 또 다릅니다. 우리들이 ‘선택’이라는 한자말에 매인다면 이 숱한 우리말을 제대로 못 쓰기도 하지만, 제대로 쓰는 결마저 잃거나 잊습니다.
[선택(選擇) :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음]
※ 알맞은 단어의 선택이 필요하다
→ 알맞은 말을 골라야 한다
→ 읽을 책을 선택하다
→ 읽을 책을 고르다
→ 읽을 책을 가리다
→ 읽을 책을 추리다
→ 읽을 책을 뽑다
29. 설명 : 선생님들은 늘 ‘설명’합니다. 선생님들 ‘설명’을 듣다 보면, 이 설명이란 곧 ‘말씀’이나 ‘말’이나 ‘이야기’이곤 합니다. “자, 내가 설명해 줄게.”란 “자, 내가 이야기해 줄게.”예요. 그러고 보면, 이야기해 주는 일이란, 잘 모르는 사람한테 ‘알려주는’ 일입니다. 이야기란 ‘들려줍’니다. 흐리멍덩하게 알거나 어렴풋이 생각하던 대목을 환하게 ‘밝히는’ 일이기도 해요. ‘깨우쳐’ 주거나 ‘일깨워’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설명(說明) :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함]
※ 사용법을 설명하다
→ 쓰는 법을 알려주다
→ 쓰는 법을 들려주다
→ 쓰는 법을 얘기하다
→ 어떻게 쓰는지 말하다
30. 기억 : 예전에 듣거나 겪은 일을 잘 떠올리는 사람한테 흔히 “기억력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기억력’이란 “기억하는 힘”이고, 기억하는 힘이란 “되새기는 힘”입니다. 되새김질 잘하는 셈이고, 생각힘이 남다르다는 소리예요. 지난 일을 헤아리는 모습을 일컬으며 ‘떠올리다’를 비롯해 ‘돌이키다’라든지 ‘되돌이키다’라든지 ‘돌아보다’라든지 ‘되돌아보다’라든지 ‘뒤돌아보다’라든지 ‘되씹다’라든지 ‘되새기다’라든지 참 많이 이야기합니다. 숱한 낱말마다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고, 느낌과 말맛이 살짝 달라요. 우리말을 생각하는 마음을 기르면 내 넋을 한결 넉넉하고 알차게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기억(記憶) :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 이전의 경험을 기억하다
→ 예전에 겪은 일을 떠올리다
→ 예전 일을 돌이키다
→ 예전 일을 다시 생각하다
→ 지난 일을 되새기다
→ 지난 일을 곱새기다
→ 그때 겪은 일을 되살리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