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 ㉡ 잘못 쓰는 말 : 갖가지 한자말 (1)


 우리말 가운데 한자말이 차지하는 부피가 꽤 많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은 맞지만, 곰곰이 살피면 이 말은 그리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말이 우리말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는 이야기는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 숫자로만 헤아리기 때문이에요.

 말사랑벗님이 잘 살펴야 하는데, 국어사전은 국어학자가 엮습니다. 국어학자는 국어사전에 실을 낱말을 ‘보기글(용례)’을 모아서 ‘잦기(빈도수)’를 모읍니다. 보기글은 신문이나 논문이나 문학책에서 뽑습니다. 신문이나 논문이나 문학책에 어떠한 말이 쓰이는가에 따라 국어사전 올림말은 크게 바뀌어요. 신문이나 논문이나 문학책에 손쉬우면서 살갑고 아름답다 싶은 토박이말을 잘 쓴다면 국어사전도 이와 같이 엮겠지요. 그러나 신문이나 논문이나 문학책에 어렵거나 딱딱한 낱말을 많이 쓴다면 국어사전은 이와 같은 결을 따릅니다.

 ‘사고’ 같은 한자말을 생각해 봅니다. 국어사전에 스무 가지 한자말 ‘사고’가 실립니다. 이 가운데 교통사고를 일컫는 ‘사고(事故)’하고 ‘생각’을 한자로 옮긴 ‘사고(思考)’를 뺀 열여덟 가지 한자말은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이라는 우리말이 있으니 굳이 ‘사고’ 같은 한자말을 써야 하지 않아요. 한편, 회사에서 내는 광고를 일컫는 ‘사고(社告)’는 푸름이가 쓰거나 들을 일이 없지만, 신문사나 회사에서 쓰니 그럭저럭 쓸 만하다 하더라도, ‘司庫-四考-四顧-死苦-私考-私稿-思顧-謝告’를 비롯한 한자말은 쓰임새도 없지만, 우리 삶하고 너무 동떨어진 한자말입니다.

 ‘고사’ 같은 한자말은 국어사전에 자그마치 스물일곱 낱말이나 실립니다. 말사랑벗은 ‘고사’라는 한자말 가운데 아는 낱말이 있을까요? 나무가 말라죽는다는 ‘고사(枯死)’나 고사성어를 가리키는 ‘고사(故事)’쯤은 알는지 모릅니다. 옛절을 굳이 ‘古寺’로 적는다든지 ‘옛일’을 애써 ‘古事’로 적어야 하지 않아요. 아마, ‘기말고사’ 같은 데에 쓰는 ‘시험’을 가리키는 ‘고사(考査)’도 들었겠지만, 한자로 어떻게 적는지는 모르겠지요. 게다가, 굳이 ‘고사’라 하기보다는 ‘기말시험’이라 말하면 그만이기도 합니다. 국어사전에는 스물일곱 가지 ‘고사’가 실리지만, 막상 우리가 쓰는 낱말이나 쓸 만한 낱말은 서너 가지가 채 안 되고, 나무가 말라죽는 모습을 가리키는 ‘고사’도 ‘말라죽다’로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국사’ 같은 한자말은 어떨까요. 모두 열한 가지 한자말 ‘국사’가 국어사전에 실려요. 이 가운데 한 나라 역사를 가리키는 ‘국사(國史)’를 뺀 열 가지 낱말은 옛날 역사에서 쓰던 말, 이를테면 조선이나 고려 때 임금이나 신하가 쓰던 낱말인 한문입니다. 국어사전은 역사사전이 아니니까 이런 낱말을 국어사전에 실어서는 안 되지만, 한문을 쓰던 옛날 정치꾼들이 쓰던 낱말을 국어사전이나 역사사전에 실어야 옳으냐 그르냐도 짚어야 해요. 왜냐하면, 2007년부터 대통령을 맡은 분은 ‘비즈니스 프랜들리’ 같은 말을 쓰는 데다가 1998년부터 대통령을 맡은 분은 ‘태스크 포스’ 같은 말을 썼고 이 영어는 아직까지 널리 쓰입니다. 어쩌면 2100년이나 2200년 국어사전에서는 얼토당토않게 쓰던 오늘날 영어를 ‘역사 낱말’로 삼으면서 실을 수 있어요. 그런데, 참말 이런 오늘날 영어를 ‘역사 낱말’로 삼아야 할까요. 이런 오늘날 영어를 알맞게 다듬거나 털어야 할까요.

 부질없거나 쓸모없는 한자말을 국어사전에 너무 많이 실었기 때문에 ‘마치 한자말 없이는 우리말은 살아남을 수 없거나 쓸 수 없는 듯 잘못 알거나 생각’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쓸 만한 한자말이라면 써야 하고, 값있거나 뜻있는 한자말이라면 넉넉히 우리말로 삼아서 주고받을 노릇이지만, 쓸 만하지 않거나 값없거나 뜻없는 한자말을 함부로 국어사전에 싣는다든지 아무렇게나 아무 데나 마구 쓴다면 우리말은 살아남을 수 없어요.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을 하고, 1990년대에는 ‘新도시’를 만들다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newtown’을 꾸밉니다. 우리말은 ‘새마을’이고 한자말은 ‘新도시’이며 영어는 ‘newtown’입니다. 셋은 뜻이나 쓰임이 모두 같은 낱말이에요. 한자말을 쓰고플 때에는 써야 할 테고, 영어가 좋다면 영어를 써야겠지요.

 그러면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파출소’를 ‘치안센터’로 바꿀 까닭이란 무엇이고, ‘동사무소’를 ‘동주민센터’로 고쳐야 할 까닭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치안지킴터’라든지 ‘동주민마당’처럼 우리말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결을 나누지 못해야 하나요. 인천에는 ‘선화여자상업고등학교’라는 곳이 ‘비즈니스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상업고등학교’ 이름이 낡거나 나쁘다 여겨 ‘비즈니스고등학교’로 바꾸었을 텐데, ‘비즈니스’ 같은 영어를 써야 한결 아름답거나 알맞거나 좋은 이름이 될는지요. ‘상업’이나 ‘비즈니스’란 무엇을 하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요. ‘장사꾼’은 나쁜 낱말이고 ‘상인(商人)’은 좋은 말이 되려나요. ‘비즈니스맨(businessman)’이라 하면 뭔가 남다른 낱말이 되는가요.

 잘못 쓰는 한자말을 살피는 까닭은 ‘한자말이니까 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대문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잘못 쓰기 때문에 다듬거나 손질하거나 털어야 하는 한자말입니다. 쓸 만하다면 옳게 쓰고, 쓸 만하지 않다면 안 써야 맞으며, 예부터 곱거나 바르게 잘 쓰던 우리말이 있으면 우리말을 슬기롭게 살찌우거나 살려야 훌륭합니다. 말사랑벗을 비롯한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은 우리말을 싱그러이 보듬으며 알맞게 즐기고 기쁘게 사랑할 때에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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