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사는 집’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


 ‘작가들이 사는 집’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을 읽다. 읽었다기보다 두 해 동안 책시렁에 얌전히 모시다가 엊그제 후다닥 읽어치웠다.

 책을 읽어치우기를 몹시 싫어하지만, 때때로 책을 읽어치우고 만다. 내 둘레 책시렁에 책이 너무 쌓이다 보면, 이제 더 쌓이도록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한꺼번에 열 권 스무 권 서른 권 마흔 권 닥치는 대로 후다닥 읽어치워서 도서관으로 옮긴다.

 허접한 책이라면 구태여 장만하지 말았어야 한다. 어떻게 본다면 허접한 책마저 이 책에서도 얻을 대목이 있으니까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참말 허접하다는 책이든 아름답다는 책이든 우리한테 이야기를 건넨다. 이 이야기에 귀를 살살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작가들이 사는 집’ 이야기는 허접한 책이었을까. 글쎄, 허접한 책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에 글을 싣고 사진을 담은 사람이 조금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해서 슬펐다. ‘작가들이 사는 집’에서 다룬 작가들은 꼭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책을 많이많이 팔아서 돈을 많이많이 벌어 마치 귀족이라도 되는 듯이 집을 꾸미면서 살았기 때문이요, 글쓴이는 이러한 대목에 지나치게 많이 마음을 썼기 때문에 슬펐다.

 나도 우리 시골집을 고쳐서 쓰는 날을 꿈꾼다. 얻어 지내는 이 춥고 더운 시골집을 이래저래 고치자면 천만 원쯤 들어야 한단다. 내가 뭐 손재주가 좋아 이리 뜯고 저리 손질할 수 있지 않다. 나무 베고 흙 주워서 뚝딱뚝딱 고칠 수 있는 집이 아니다. 얻어 쓰는 이 시골집 말고, 바로 곁에 빈 살림집 하나를 요모조모 고치고 보일러 들이고 뭐 하자면 그쯤 든단다. 그러니까,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니, 내가 살아가는 집을 누군가 이야기하려 한다면, 아마 ‘아무개 씨도 돈 얼마를 무슨무슨 책을 팔아 얻은 돈으로 요모조모 꾸몄다’ 하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란 무슨 보람이나 뜻이나 값이 있을까.

 ‘작가들이 사는 집’ 이야기를 읽을 때, 내가 딱 하나 눈여겨본 대목은, 사랑소설을 쓴 사람이든 어린이문학을 한 사람이든 학문하는 글쓰기를 한 사람이든, 모두 도시를 떠나고 사람들 발길이 쉬 닿지 않는 외딴 시골이나 멧골에 집을 마련해서 자연이랑 벗삼으며 흙을 일구는 나날을 즐긴 대목. 이 가운데 꼭 한 사람, 돈을 못 번 한 사람(돈을 못 벌었다기보다 버는 족족 술값으로 퍼부었단다)만 시내에서 살았는데, 이 시내라 해 보았자 우리로 치면 바닷가 면내나 읍내쯤 되고, 이이는 얻어 지내는 집에서 늘 술에 절어 살았단다. 이이는 벌어들이는 돈이 있으면 몽땅 술 마시는 데에 쓰고 집식구 아닌 바깥여자랑 바람 피우는 데에 썼단다.

 ‘작가들이 사는 집’이 오직 돈을 많이 벌어야 얻을 수 있는 집이라면 끔찍하다. ‘작가들이 사는 집’이 조용하면서 스스로 땀흘려 흙을 일구어 살아가는 집이라면 아름답다. ‘작가들이 사는 집’이 으리으리한 건물과 장식품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뽐내려고 사람들을 부르는 집이라면 무섭다. ‘작가들이 사는 집’이 살가운 이웃이나 동무하고 밥 한 그릇 나누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집이라면 즐겁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글쟁이나 사진쟁이나 그림쟁이는 흙을 사랑한다. 흙을 사랑하듯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듯 목숨을 사랑하며, 목숨을 사랑하듯 집과 글과 사진과 그림을 사랑한다. (4344.2.16.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