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가난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노래벗
― 폴 란돌미, 《슈베르트》
- 책이름 : 슈베르트
- 글 : 폴 란돌미
- 옮긴이 : 김자경
- 펴낸곳 : 신구문화사 (1977.5.10.)
- 판 끊어짐.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음.
(1) 우리가 모르는 ‘가난뱅이’ 슈베르트
일본 만화쟁이 ‘니노미야 토모코’ 님이 그린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기 앞서까지는 ‘노래를 짓는 사람’이 어떠하고, ‘지어진 노래를 부르거나 들려주거나 이끄는 사람’이 어떠한 줄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동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여겼고, 나와는 아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겠거니 여겼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여느 사람들 또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을 놓고도 ‘나와는 동떨어졌겠지’ 하고 생각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연극을 하거나 영화를 하는 사람들을,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춤을 하는 사람들을 ‘세상과 동떨어진 채 사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랴 싶습니다.
.. 얼마나 기뻤을까! 이제 대기를 가슴이 벅차도록 마셔들일 수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자유! 드디어 자유로 와졌다. 언제든지 마음이 내키면 작곡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먹고살아야 한다. 슈베르트는 개인 교수의 일자리를 찾은 끝에 몇 군데 일자리를 얻었으나 거의 무수입에 가까웠다 .. (62쪽)
곰곰이 돌아보면, 제 또래 동무를 비롯하여 선배나 후배가 저를 바라보는 눈길이 남다릅니다. 동네사람이 바라보는 눈길이나 구멍가게 할매 할배가 바라보는 눈길도 남다릅니다. 전철길에서 스치는 사람이나 자전거길에 엇갈리는 사람 또한 저를 남달리 바라봅니다.
차림새며 생김새며 ‘여느 사람 모습’이 아니니까요. 또한, 제가 하는 일이란 여느 사람이 하듯 ‘돈을 버는 일’하고는 멀리 떨어져 보이니까요. 더구나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할 때면 으레 ‘문학을 하나요?’ 하고 물으며, ‘우리 말 이야기를 쓴다’고 하면 ‘우리 나라에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글을 써서 밥벌이가 되겠느냐고, 애도 있는데 ‘돈 되는 글을 써야’ 하지 않느냐며 따끔하거나 따스하게(?) 도움말을 건네줍니다.
.. 1818년 11월 슈베르트는 비인으로 돌아갔다. 친구들과 다시 만나고, 그들에게 작곡한 작품 전부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쁨에 가슴이 벅찼다 … 그는 방과 피아노를 빌 돈이 없었다. 그것은 친구들이 마련해 주었다. 처음에는 슈파운의 집에 가서 그의 방의 침대를 우선 이용했다. 다음은 쇼버가 자기 어머니의 집에 하숙을 마련해 주었다. 슈베르트는 반 년이란 세월을 폰 쇼버 부인네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그 다음부터는 마일호퍼, 외고집이고 우울한 마일호퍼의 가난하고 쓸쓸한 방에서 동거했다. 두 친구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하고, 가난 속에서도 대단히 행복했다 … 그는 아침 여섯 시부터 걸상에 마주앉아 끈이 보이는 낡은 옷을 입고, 그대로 오후 한 시까지 작곡했다. 이따금 파이프 담배를 태우거나 찾아온 친구들과 잡담하기 위해 일손을 쉴 뿐이었다. 방은 작았으나 겨울에는 덥지 않았다. 화기가 없는 것이다. 슈베르트는 꽁꽁 얼었으나 창작욕에 불타 추위를 몰랐다. 사람이 와도 때로는 “재미 어때?” 하고 물을 뿐, 붓을 놓지 않을 때도 있었다 .. (65∼67쪽)
제가 하는 일 이야기가 ‘사진찍기’로 넘어오면 골치가 더 아픕니다. 돈 되는 글을 안 쓰는 주제에, 사진 또한 돈 안 되는 사진만을, 더구나 누가 알아주지 않는 사진만을 찍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때때로 ‘뜻있는 사진을 찍는다’며 힘을 북돋워 주는 분이 있습니다만, 말로는 힘을 북돋워 주어도 말로만 그치기 때문에 저로서는 손 벌릴 자리가 모자랍니다(그렇지만 꼭 한 분이 고맙게 제 사진을 꾸준하게 사 주시고 있어서, 이분 힘으로 즐겁게 버팁니다).
제 사진찍기를 옆에서 지켜보는 분들이 으레 이야기합니다. ‘이제 그 사진감은 그만 찍어도 되지 않느냐’고. 이제 그 사진감은 그쯤으로 끝내고 ‘돈 될 만한 새 사진감을 찾으라’고.
당신이 걸어온 지난 발자국을 돌이켜보면서 들려주는 말씀이요, 젊은내기가 집식구 애먹이지 말라는 말씀인 줄을 느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골라잡은 사진감은 몇 번 찍고 그칠 사진감이 아닙니다. 이것저것 찍는 가운데 내 온삶을 바칠 만한 사진감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깨달은 사진감입니다. 첫발을 디딘 날부터 마지막발을 디딜 날까지 고이 이을 사진입니다.
돈이 안 되어도 찍는 사진이며, 돈이 되어도 찍는 사진입니다. 이름이 팔리지 않아도 찍는 사진이며, 이름이 팔려도 찍는 사진입니다. 아무도 안 찍어도 찍는 사진이며, 누구나 다 찍어도 찍는 사진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 사진감인 책과 헌책방과 골목길과 우리 아이한테 쏙 빠져들었으니까요.
.. 슈베르트는 여전히 우울했다. 건강은 다시금 좋지 않았다. 게다가 돈도 없었다. 친구 집에 더부살이할 때와는 달리 방세도 물어야 했다. 그것을 메워 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난을 겪을 때는 언제나 그렇듯 그는 일기를 꺼내어 생각되는 환멸을 기록하였다. “아무도 남의 괴로움이며, 기쁨을 의아해하지 않는다. 언제나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걸어간다고 믿으면서, 사실은 서로의 옆을 걷고 있다. 오, 그것을 깨닫는 자의 괴로움! 내 고통만으로써 창조된 작품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하는 작품이다.” … 그의 작품은 팔리지 않았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전혀 성공하지 않았다. 화려한 로시니 앞에서는 너무나 단순하고 내적이고, 너무나 도이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점잔뺀 멜로디가 더 좋았던 것이다 .. (118∼119쪽)
어린이문학을 제 나이보다 더 긴 나날에 걸쳐 하신 어르신이, 언젠가 저한테 ‘최종규 씨가 쓴 글을 보니까 괜찮던데, 이제는 잡문보다는 본격문학을 해 보지 그래?’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 글을 애써 읽어 주시면서 괜찮다고 받들어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으며, 더욱이 본격문학을 할 만큼 밑바탕이 다져졌다고 하시니 더없이 즐겁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본격문학을 할 마음이 아직 없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없을는지 모르나, 조금 더 두고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자, 이제부터 문학을 써 볼까’ 하며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나오는 문학은 아니라고 느끼거든요. 문학으로 느끼며 쓰든 문학으로 느끼지 않으며 쓰든, 내 마음과 몸이 오롯이 문학이 되어야 문학이라는 글 하나가 솟구쳐나오지 않느냐 싶습니다. 내세우는 문학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문학이며, 팔아먹으려는 문학이 아니라 이웃과 기꺼이 나누려는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잡스러운 제 글은 한낱 잡스러운 글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누리에는 잡스러운 글을 쓰는 사람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이 몫을 아무도 안 하려 한다면 제가 해도 괜찮다고 느낍니다. 잡스러운 글이라 하지만 홀가분한 글이며, 잡스러운 글이란 소리를 들어도 스스로 울타리를 치지 않는 글입니다.
우쭐거리지 않는 글, 아니 우쭐거릴 수 없는 글이 잡스러운 글입니다. 누군가 깎아내리거나 깔아뭉개도 얼마든지 깎이거나 깔리는 글이 잡스러운 글입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좋아하거나 즐기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잡스러운 글입니다. 돈을 망태기에 그득 담아 떠밀어도 쓸 수 없는 잡스러운 글입니다.
.. 그러나 놀고만 있을 순 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 그러나 슈베르트는 그것을 거절하여 부친을 낙담케 했다. 그는 독립을 사랑하는 나머지 거절했다. 자유로이 작곡을 계속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성적이어서. 하긴 지위에 앉기 위해서는 약간 시험 비슷한 것이 있어서 슈베르트는 그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 어지간히 쪼들리지 않는 한 그다지 싸구려로 팔지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그 방면으로부터의 수입이란 미미한 것이었다 … “누구십니까?” “작곡가인 프란쯔 슈베르트입니다.” “모르겠는데요.” “악장님도 제 곡을 들이신 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무슨 리이드 같은 걸.” “전혀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잘 안 된다. 슈베르트는 아이프러에게 〈미사곡〉을 맡겨 두었다. 몇 주일 지난 후 아이프러는 말했다. “당신의 미사곡은 꽤 좋습니다. 하지만 황제 폐하가 좋아하실 스타일이 아니군요. 폐하께서는 줄거리를 재미있게 짠 푸가를 좋아하십니다.” 슈베르트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황제 식의 스타일로 쓸 수 없는 사람은 손해군!” .. (134∼136쪽)
만화책 《노다메 칸타빌레》를 펼치면, 꼭 저 같지는 않지만 저와 닮았다고 느낄 만한 젊은내기들이 그득그득 나옵니다. 마땅한 소리이지만, 저보다 훨씬 훌륭하면서 아주 뛰어난 솜씨를 선보이는 젊은내기입니다. 이네들과 저 따위를 견줄 순 없습니다. 다만, 만화를 넘기는 내내 ‘만화에 나오는 이들이 다루는 악기’를 ‘제가 다루는 볼펜과 사진기와 자전거’로 바꾸면서 생각합니다. 가난하면서 하나도 가난해 보이지 않고, 부자이면서 하나도 부자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만화책에 나오는 노래벗’님들 삶에 흠뻑 젖어듭니다.
(2) 우리가 아는 ‘가곡왕’ 슈베르트
헌책방에서 손바닥책 《슈베르트》를 처음 만난 때는 2000년을 조금 넘긴 어느 날입니다. 그러나 이때 만난 ‘신구문화사 손바닥책’ 《슈베르트》는 파본이었습니다. 겉은 슈베르트 이야기라고 찍혔지만, 몸글은 베토벤 이야기가 찍혔더군요.
1974년부터 나온 신구문화사 손바닥책 목록을 살피면, 슈베르트를 비롯해 링컨, 로베스피에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페스탈로찌, 고호, 퀴리 부인, 쇼팽, 밀레, 세잔, 베토벤 같은 사람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두 150쪽 살짝 넘는 조그마한 판으로 묶였습니다. 하나같이 판이 끊어져서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책입니다.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로맹 롤랑이 쓴 《톨스토이》마저 나라안에서 만나기란 아주 힘듭니다.
이리하여, 파본 아닌 《슈베르트》를 만나기까지 여러 해가 더 있어야 했고, 2006년 9월에 드디어 말끔한 녀석으로 만났습니다.
헌책방 책시렁에서 《슈베르트》를 알아보고 끄집어낼 때 이 기쁨이란! 가슴벅참이란! 떨림이란! 짠함이란!
.. 슈베르트가 서먹서먹해 한 곳은 에티켓이 까다롭고 격식만 따지는 상류 사회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묵묵히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을 구석에 숨어 있었다 … 가고 없는 벗 대신 새로 온 사람은 프란쯔의 소문에 끌려 그와 접촉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학생이며 관리였다. 유감스럽게도! 평범하고 용렬한 친구들뿐이어서 그들의 회화에 슈베르트는 우울해졌다. “그들은 경마, 격검, 말이나 개에 대해서밖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아! 지난날의 아름다운 얘기들이여! 예술, 시의 낭독, 문학과 음악의 신작에 대한 피가 끓게 하는 논의 등. 그런 것은 이제 끝나 버린 것이다 .. (71, 105쪽)
그러나 2006년 9월 무렵은 시골살림을 접고 어디론가 새 살림자리를 찾아야 하던 때라 책을 제대로 펼칠 만큼 느긋하지 않았고, 한 해 남짓 책꽂이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두기만 하며 보냈습니다. 그러고 2007년 4월, 비로소 고향 인천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으면서 즐겁게 책장을 넘깁니다.
처음 안 지 예닐곱 해 만에 겨우 찾아내어 읽는 《슈베르트》는 줄거리도 줄거리이지만, 책에 바친 다리품과 땀방울이 곁들였으니, 한 줄 두 줄 차곡차곡 온몸에 배어듭니다. 한참 책알맹이가 온몸으로 빨려들 무렵 화들짝 놀라 책을 덮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빨려들면 아쉽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교과서 한 권을 한 해에 걸쳐서 떼듯, 조그마한 책 《슈베르트》를 며칠 걸러 몇 쪽씩 야금야금 읽습니다. 이렇게 하여 2008년 3월에 한 번 다 읽어냅니다. 이 뿌듯함을 가슴으로 꼭 껴안으면서 셈틀이 놓인 책상맡에 그대로 두고, 몇 달 뒤 다시 집어들어 한 번 더 차근차근 새겨 읽습니다.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처음 읽을 때에 놓친 대목이 보이는 한편, 《슈베르트》와 겹쳐서 보는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 스물한 권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만화책을 보면, 주인공 노다메가 신이치하고 ‘피아노 함께 치기(연탄)’를 하고 싶어 그토록 조르고 바라는데, 왜 ‘함께 치기’를 하려고 했는가 하는 대목을 《슈베르트》를 읽으며 눈물 한 방울과 함께 깨닫습니다. 슈베르트는 무엇보다도 ‘당신을 알아주고 함께 가난을 짊어지며 살아가는 노래벗하고 함께 악기를 치거나 켜거나 두들기는 일’을 몹시 좋아했습니다. 이 보람으로 살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 슈베르트는 쉬지 않고 썼다. 언제나 돈에 쪼들리면서 큰 보수도 없는 일을 몸을 걱정하면서 이럭저럭 해냈는데, 그는 또한 작곡하는 데에 행복을 느끼고 좋은 친구들과 같이 비인에서 생활하면서 그들 중의 몇 사람에게 이해받는 데에 행복을 느꼈던 것이다 .. (137쪽)
만화와 글로 만나는 슈베르트는 가락으로 만나는 슈베르트와 사뭇 다릅니다. 만화와 글로는 만나도 가락으로 만나지 못한다면 헛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락으로만 만나고 만화와 글로는 못 만나는 슈베르트라면, 이 또한 헛물이 아니랴 싶어요. 아니, 슈베르트 온 모습을 못 보는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제도권 학교 음악 교과서에 적힌 ‘가곡왕’이라는 이름으로만 읊는 슈베르트로 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 800굴덴을 슈베르트는 다 써 버린다. 피아노를 산 것이다. 그때까지 그는 자기의 것을 가지지 못했었다. 빌 돈도 없을 정도였다. 조그만 방에 새 악기가 들어왔을 때의 기쁨! 하긴 그래서 음악회를 연 것은 아니었다. 하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우선 무엇보다 음악이다. 할 수 없지 않은가! 또 가난하게 살지 뭐. 내년에도 또 해서 이번에야말로 똑바로, 그야말로 아주 타산적으로 쓰자. 그때의 수입은 그날그날 꼭 필요한 데에만 쓰자 .. (153쪽)
옆지기와 함께 성당 나들이를 할 때에도, 미사를 기다리면서 《슈베르트》를 넘기곤 했습니다. 조그마한 책에 담긴 이야기는, 거룩한 책에 담긴 이야기 못지않게 가슴을 쿵쾅쿵쾅 뛰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여러 해에 걸쳐 적금을 부은 돈으로 렌즈를 장만하거나 사진기를 마련하거나 필름스캐너를 들여놓던 짜릿함은, 슈베르트가 애써 얻은 돈으로 피아노를 처음 마련하던 짜릿함하고 같은 자리에 있었구나 하고 느끼면서 펄떡펄떡 뜁니다. 오늘 저녁 끼니가 걱정되어도 ‘이 책을 안 사고 뒤돌아서면 몇날 며칠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땅을 치며 안타까워할는지 몰라’ 하는 마음으로 책값을 쓴다고 주머니를 탈탈 털던 눈물겨운 보람은, 슈베르트가 몇 푼 벌지 못하는 살림에도 오선지를 겨우 장만하고 새 노래 짓기에 바쳤던 눈물겨운 삶하고 비슷한 자리에 있었구나 하고 느끼면서 두근두근 떨립니다.
.. 11월 3일에는 형 페르디난트의 〈레퀴엠〉의 연주를 위해서 헤르나루스 성당에 간신히 갔으나 돌아올 때는 몹시 피로감을 느꼈다 … 그래도 그는 계획을 품고 있다. 지몬 제히터라는 이론가에게 새 작곡법을 배우려고 그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미 대가이면서 자기의 지식 부족을 느끼고 학교로 돌아가려고 하는 순진성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 슈베르트는 무엇보다 리이드 속에서 찾아야 한다. 베에토벤의 일생은 자기 자신을 갱신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일생이었다. 한 작품을 다 쓰고 나면 그는 올가미를 쓴 듯한 일종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한 듯하다. 그는 굴레를 벗으려 한다. 한 번 획득한 수법에 틀어박히거나 같은 일을 되풀이하거나 하지 않고 그는 습관의 지배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는 새 길을 찾고, 새 기법을 연마하고, 새 이상의 실현에 힘쓴다. 슈베르트에게는 어떠한 갱신도 발전도 없다. 최초의 날부터 그는 그 자신이며 최후의 날에 이르기까지 17세 때의 그대로이다 … 슈베르트는 보다 세밀히 감응한다. 바다, 강, 산 등도 그의 작품 속에서 따로따로 가려서 그리고 있다 … 베에토벤은 대자연을 초월하지 않는다. 그 웅대한 세계를 그는 감수하고 있다. 슈베르트에게는 그 대자연도 좁은 듯이 생각된다. 그는 환상적인 세계로 도피한다 … 슈베르트에게 있어서의 지성은 모두가 상상력이다 .. (134, 160∼163쪽)
돈이 없어도 책을 사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그림쟁이는 돈이 없어도 붓과 물감과 종이를 사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노래쟁이는 돈이 없어도 악기를 장만하고 오선지를 장만하며 노래를 켜야 합니다. 농사꾼은 돈이 없어도 씨앗을 마련하여 심고 가꾸며 거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글쟁이이든 그림쟁이이든 노래쟁이이든 농사꾼이든, 저마다 제 글과 그림과 노래와 흙을 사랑하니까요. 사랑이 담긴 눈물로 살고, 믿음이 서린 웃음으로 살아가니까요.
(3) 우리 나라에는 누가 슈베르트처럼
두 번째로 《슈베르트》를 덮으며 세 번째로 되읽을 날을 손꼽습니다. 몇 달 뒤에 한 번 더 읽을는지, 다른 못 읽은 책을 먼저 읽고 나중에 좀 느긋해지면 되읽을는지 헤아립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며 다시금 《슈베르트》를 만날 수 있다면, 기꺼이 한 권 더 장만하여 내 가장 아끼는 마음벗한테 선물해 볼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이 작은 책을 어떤 헌책방 책손이 알아보고 사들일까 하고 지켜보아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 슈베르트는 전혀 반대로 혼자서는 살 수도 없었고, 대자연만을 관조하면서 소일할 수도 없었다. 자아 속에 잠겨 버릴 수도, 사람을 초월하여 ‘커다란 전체’에 직접적으로 맺어질 수도 없었다. 그는 유쾌한 친구들에게 둘러싸이는 활달하고 떠들썩한 환경이 필요했다. 그는 속인들과의 교제가 필요했다. 그것도 그가 너무 내성적이어서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왕후 귀족과의 고제가 아니라, 그렇게 점잔빼지 않는 평민들과의 교제이다. 그는 그러한 곳에서 인간과 그 풍속ㆍ감정ㆍ정열 등을 넓게 갖가지로 알고, 그 예술을 베에토벤이 몰랐을 천차만별한 성격과 감동의 뉘앙스로 채색하고 있다 … 그는 차차 다른 학과에는 게을러지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서만 살려고 하게 되었다. 단 한 가지 곤란한 것은 5선지가 수중에 없고, 그것을 살 돈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백지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 종이도 없을 때가 가끔 있었다. 슈파운이 귀중한 5선지를 조심스레 대어 주면 슈베르트는 순식간에 그것을 다 써 버렸다 .. (19, 21쪽)
그나저나, 우리 나라에서는 슈베르트와 같은 노래쟁이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가곡을 써야지만 슈베르트와 같은 노래쟁이이지 않습니다. 삶이며 매무새이며 넋이며 몸짓이며 생각이며가 슈베르트와 같은가 다른가에 따라 달린 일입니다. 저한테 주어진 모두를 슈베르트가 제 깜냥껏 받아들이고 삭이며 살았듯, 이 땅 우리 나라에서 우리 모두한테 주어진 길을 스스로 삭이고 가다듬으며 걸러내어 노래 한길을 걷는 어떤 노래님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스스로 고운 노래를 즐기면서 우리 모두한테 살가운 노래벗이 되어 줄 사람으로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땀을 흘리며 애쓸는지 궁금합니다.
.. 슈베르트는 연탄의 이점을 교묘히 끄집어냈다. 게다가 슈베르트는 절대로 고독한 사람이 아니다. 피아노를 친구들과 함께 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 그는 청중에게 “그의 손가락에 의하여 건반은 노래하는 소리가 된다”는 말을 듣는 것을 무엇보다도 기뻐했다 .. (47쪽)
어릴 적부터 장만하여 틈틈이 듣는 ‘흘러간 대중노래’인 장덕 테이프, 우순실 테이프, 신정숙 테이프, 이지연 테이프, 동물원 1집 테이프, 김현식 테이프, 한대수 테이프 들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슈베르트가 제 땅에서 제 이웃과 나눈 노래란 누구한테 즐거웁자고 빚은 노래이며, 그무렵 슈베르트가 지은 노래는 오늘날 우리들이 짓는 어떤 노래와 같을까를 곱씹습니다. ‘가곡왕’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이 이름보다는 ‘노래를 사랑한’ 사람이요, ‘노래를 삶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라는 이름이 한결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슈베르트인데, 오늘 우리한테 슈베르트 노래는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2009.4.17.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