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와 느낌글


 책을 읽었기에 느낌글을 씁니다. 책을 읽지 않고서는 느낌글을 쓰지 못합니다. 그런데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을 보면 책을 읽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책을 소개하는 글’을 씁니다.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쓴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책을 안 읽고도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 보지 않고 ‘시승기’를 쓰거나, 밥을 먹어 보지 않고 ‘맛집 이야기’를 쓰는 일하고 똑같다 할 텐데, 무엇보다 사랑을 해 보지 않고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쓰는 셈일 텐데, 이와 같은 글도 글이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에 실리는 숱한 ‘책소개’, 이른바 ‘서평’은 느낌글이 아닙니다. ‘서평’은 한자말이고 ‘느낌글’은 토박이말이니까 둘이 다르지 않습니다. 서평이나 신간소개는 죽은 글이요, 느낌글은 산 글입니다. 서평이나 신간소개는 장사하는 글이요, 느낌글은 살림하는 글입니다. 서평이나 신간소개는 책을 죽이는 글이요, 느낌글은 책을 살리는 글입니다.

 책이란 짐짝(물건)이 아닙니다. 책이란 값싸게 팔거나 비싼값을 붙이는 짐짝이 아닙니다. 책이란 더 값있게 모시거나 더 하찮게 다루는 짐짝이 아닙니다. 책이란, 이 책을 일군 사람들 삶을 땀방울로 알알이 엮은 이야기보따리입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은 사람을 비롯해서, 글과 그림과 사진을 매만져 종이에 안친 사람들 삶이 땀방울로 엮이며 알알이 배어든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알찬 이야기보따리를 즐거이 느껴 보지 않고서야 느낌글을 쓸 수 없지만, 알찬 이야기보따리를 즐거이 느꼈다면 서평이나 신간소개는 쓰지 않습니다. 알뜰한 이야기꾸러미를 기쁘게 맛보았다면 느낌글을 쓸 뿐 아니라, 내 삶을 아름답게 일구는 슬기를 나누어 받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더 예쁘며 더 착하며 더 고우며 더 참다우며 더 씩씩하며 더 튼튼하게 살아가고픈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이러하기에 책을 읽고서 홀가분하게 느낌을 푼푼이 담는 글을 씁니다. 누가 보라는 글이 아닙니다. 누구한테 자랑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어디에 돈을 받고 파는 글이 아닙니다. 느낌글은 말 그대로 느낌을 담는 글이고, 책 하나에 어떠한 삶이 깃들었는가를 나 스스로 내 삶결에 따라 느낀 이야기를 적바림하면서, 글쓴이와 엮은이한테 맞이야기를 보내는 손길입니다.

 서평이나 신간소개는 어쩔 수 없이, 흔한 말로 ‘주례사 비평’에 머물밖에 없습니다. 서평이나 신간소개는 아주 마땅히, 서평단에 따라 쓰거나 공짜책을 받아 쓸밖에 없습니다.

 느낌글은 보드라운 바람결처럼 아주 마땅히, 스스로 주머니를 털어 사서 읽은 책을 기쁘게 가슴으로 받아안으면서 쓰곤 합니다.

 서평이나 신간소개를 쓰면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신문기자나 잡지기자나 방송기자는 참으로 딱합니다. 기자로 일하면서도 얼마든지 서평 아닌 느낌글을 쓸 수 있을 텐데요. 아니, 신문과 잡지와 방송부터 서평이나 신간소개를 써대며 광고를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느낌글을 적바림하면서 ‘독자를 끌어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문을 이루는 힘은 바로 독자, 읽는 사람입니다. 잡지와 방송을 이루는 기운 또한 곧 독자, 읽는 사람이에요. 광고를 실어 주는 사람들이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을 이루지 않습니다. 자꾸자꾸 광고 따라 흐르면서 스스로 구렁텅이를 파거나 벼랑으로 굴러떨어지려 할수록 기사글은 글하고 동떨어집니다. 글이 아닌 밥그릇 붙잡기가 되니까, 서평이나 신간소개만 가득가득 채울밖에 없으며, 이러한 서평이나 신간소개를 자꾸 읽어 버릇하는 사람들도 ‘느낌글하고는 멀어지’면서 차츰차츰 내 삶을 보듬을 책보다는 ‘내 처세에 이바지하는 기술책’을 쥐어들고야 맙니다.

 느낌글을 쓴 사람은 느낌글로 적바림한 책을 언제나 다시 읽기 마련이요, 이렇게 읽은 책을 둘레에 선물하기 마련입니다. 느낌글 하나 써낸 사람은 또다른 반가울 책을 꿈꾸면서 책방마실을 하기 마련입니다. 느낌글 하나 쓰면서 책사랑을 꽃피우는 사람은 책사랑에 이은 삶사랑과 사람사랑으로 나아가기 마련입니다. (4344.1.30.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