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리 홀 원작,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박선영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답게 가꿀 내 고마운 삶
 [푸른책과 함께 살기 64] 멜빈 버지스, 《빌리 엘리어트》



- 책이름 : 빌리 엘리어트
- 글 : 멜빈 버지스
- 옮긴이 : 정해영
- 펴낸곳 :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07.2.9.)


 

 (1) 아이와 함께 살기


 아이가 “아빠, 쉬 마려.” 하고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깹니다. 누운 아이를 일으켜세웁니다. 다리를 왼손으로 모으고 오른손으로는 엉덩이 아래에 팔을 넣어 아이를 안아 올립니다. 기저귀를 풀고 바지를 내려, 잠자는 방 옆에 놓은 변기에 앉힙니다. 어두운 방에서 쉬를 하는 아이는 아빠를 안습니다. 쉬를 다 눈 다음 기저귀천으로 밑을 닦습니다. 다시 안아서 잠자리에 누이고, 기저귀를 다시금 채웁니다. 간밤에 오줌기저귀를 한 장도 갈지 않습니다. 요사이는 며칠에 한 번쯤 오줌기저귀 없는 밤을 맞이합니다. 그렇지만, 오줌기저귀를 갈지 않는 만큼 새벽에 꼬박꼬박 오줌 누이기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오줌 누이기를 안 하더라도 기저귀 갈기는 해야 합니다. 기저귀에 오줌을 누어 기저귀를 갈든, 부시시 일어나 오줌을 누이든 어버이로서는 똑같은 일입니다. 아이가 오줌을 꼬박꼬박 가릴 수 있다면, 기저귀 빨래 하나는 훨씬 주는 만큼 집일이 한 가지 주는 셈입니다. 석 돌째 될 올해에 밤오줌을 뗄 수 있을까 꿈을 꿉니다. 오늘과 이듬날과 또 이듬날, 잇달아 밤오줌을 가린다면 비로소 기저귀를 뗄 수 있겠지요. 이렇게 여러 날을 보낸 다음 기저귀천을 두 장 이부자리에 깔아 놓고 보내면서 오줌을 누지 않고 아버지를 불러 오줌을 누자고 한다면, 이제 아버지도 빨래일을 조금 덜 만하겠지요.


.. 어쨌든 저 소녀들은 분명 다르다. 만일 저 애들이 다른 곳에서 저런 꼴로 돌아다닌다면, 당연히 엄마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테고 다들 어린 창부라고 손가락질해댈 것이다. 하지만 이건 발레고, 따라서 걔들이 엉덩이를 살짝 내보인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그애들을 바라볼 때마다 어쩐지 내가 무례하고 추잡한 늙은이가 된 기분이다 … 그리고 참 쉬워 보였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저 정도는 할 수 있지 싶었다. 그래서 문득 저애들이 이토록 뻔한 일에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는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  (43, 44쪽)


 오뉴월에 둘째가 태어나기에, 첫째가 이에 앞서 밤오줌까지 떼어, 첫째 기저귀 빨래가 없기를 애타게 비손합니다. 두 아이 기저귀 빨래를 하자면 기저귀 빨기 하나만으로도 눈코를 못 뜨지 않겠느냐 걱정합니다.

 그러나, 애 한둘 두엇 서넛 너덧 ……을 키우던 지난날 어머님들을 돌아보면, 애 둘이야 아무것 아니라 할 만합니다. 걱정하기에 앞서 받아들일 삶이고, 걱정하기보다 즐거이 여길 삶입니다.

 오줌을 쌌으니 갈아 주고 빨래를 합니다. 배가 고플 때에 밥을 차려 줍니다. 아침저녁으로 씻기고 옷을 틈틈이 갈아 입힙니다. 심심하지 않게 함께 놀며, 꾸준히 책을 함께 읽어 주며, 이것저것 자잘한 집일을 시키거나 심부름을 시킵니다. 아버지 곁에서도 놀고 어머니 곁에서도 놉니다. 함께 마실을 하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크게 근심하지 않아도 다섯 살이 되고 열 살이 되면 밤오줌 걱정이란 없겠지요. 때때로 이불에 쉬를 할 때가 있을 텐데, 이렇게 쉬를 하면 빨면 됩니다. 모든 삶에는 뜻이 있고, 모든 일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손이 많이 가야 한다고 벅차기만 하거나 고단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더 마음을 쏟기 마련이요, 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입으로 옲는 사랑이 아닌 몸으로 껴안는 사랑입니다. 겉핥는 사랑이 아닌 속으로 부둥켜안을 사랑이에요.


.. “근데, 완전 얼간이가 된 기분이야.” “어차피 넌 얼간인데, 그렇다고 뭐가 달라져.” 마이클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빌리, 솔직히 네가 멋져 보여. 난 네가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그건 참 뭐랄까 …….” “뭔데?” “거칠진 않지만 …… 남자다워 보여.” “남자답다고? 별 희한한 말을 다 듣네. 어쩼거나 그건 여자 애들이 하는 거잖아.” ..  (57∼58쪽)


 어제 아침, 멸치볶음을 하면서 멸치를 헹구지 않고 그냥 했더니 몹시 짭니다. 멸치 헹구기를 하자면 얼마나 품이나 겨를을 써야 한다고 이 일을 건너뛰어, 반찬 먹는 식구들 입맛을 버리도록 했는지, 참 딱합니다. 겨울날 찬물로 헹구기를 하면 손이 얼어붙습니다만, 푸성귀를 헹굴 때에도 똑같이 손이 얼어붙으니, 그냥 언손으로 한 번 더 헹구면 됩니다.

 오늘 아침에는 무슨 반찬을 새로 할까 아직 생각해 놓지 못했습니다. 엊저녁부터 곰곰이 생각했으나 아직 마땅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음, 식빵과 달걀과 치즈와 봄동이 있으니, 달걀을 부치고 치즈와 봄동을 속으로 삼아 빵 두 쪽을 위아래로 싸 볼까?

 늘 같은 밥에 같은 국만 끓이는데, 아침을 먹인 다음 빨래하고 물 길으러 다녀온 다음에, 저녁을 마련할 때에는 밀가루반죽을 해서 수제비이든 칼제비이든 끓여 볼까?

 혼자 밥 차리고 치우기 힘들다면,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한테 아주 작은 한두 가지 잔일이라도 맡기면서 차츰차츰 집일에 익숙하도록 이끌어야겠지요. 아이가 훨씬 어릴 적에는 그저 아버지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며 따라하는 놀이였으면, 이제부터는 놀이를 넘어 일로 접어드는 섬돌을 밟는다 할 테니까, 아이 스스로 ‘아버지를 도왔다’고 느끼도록 할 만큼 일을 시켜야겠구나 싶습니다.

 설거지를 마친 그릇을 모시 천으로 닦는 일을 아이한테 맡겼더니 빙글빙글 웃으면서 아주 신나게 해 줍니다. 책을 나른다든지 무어를 나를 때에도 꼭 옆에 붙어서 저도 같이 나르겠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혼자 후다닥 옮기면 금세 끝이지만, 이렇게 혼자 해 버리면 아이로서는 심심합니다. 아버지로서는 더디 걸리며 손이 많이 가면 더 고단할 수 있지만, 일을 더 천천히, 한결 느긋하게 하면서, 아이가 차분히 ‘일 거들기’에 빠져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즐거울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아버지는 이렇게 일을 거드는 아이 모습을 스스럼없이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멋없이 ‘v 그리기’를 하는 사진만 찍어대는 삶이 아니라, 참으로 함께 어우러지며 부대끼는 삶을 사진으로 고맙게 담을 수 있습니다.

 혼자서 다 하면 한식구끼리도 말을 섞을 일이 줄고, 다 같이 하자면 식구들끼리 말을 섞을 일이 잦습니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울 살림살이란 어디 먼 데에 있지 않습니다. 즐거우면서 신나는 집안일이 되도록 애쓰면서 도란도란 오붓하게 살아가면 넉넉합니다.


.. 나는 정말로 무서웠다. 학교 건물 앞에 서자마자, 나는 ‘아차! 실수했구나’ 싶었다. 아무도 학교가 그런 곳이라고는 말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춤추는 것만 생각했었다. 그제애 왜 토니 형이 그처럼 화를 냈는지 알 것 같았다. 춤추는 게 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건 상류층의 세계였다. 그건 높은 사람들의 세계였고, 누구도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들의 세계였다. 그런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상류층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그리고 상류층이 될 생각도 없었다 … (230쪽)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삶이 아닌, 아이와 어깨동무하는 삶입니다. ‘양육 의무’나 ‘부양 의무’ 따위가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구태여 아이 머리속에 이것저것 쑤셔넣는 지식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시나브로 받아들일 삶이 되도록 하는 하루하루입니다.


 (2) 시골에서 함께 살기


 지난해 12월 첫머리부터 멧골자락 우리 집 물이 얼었습니다. 달포가 지나도록 날씨는 꽁꽁 얼어붙어 물이 녹지 않습니다. 멧골집으로 들어온 첫 해부터 이만저만 고단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모기장이 없어 여름날 애먹고, 겨울에는 집안을 따뜻하게 하는 데에 어찌저찌 마음을 쏟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은 거의 생각조차 않고 살아왔지만, 혼자 꾸리는 삶이 아니라 여럿이 한식구가 되어 함께 꾸리는 삶이니, 이제부터 제대로 생각하고 살피며 곱씹어야 합니다.

 집 바깥에 바람막이 노릇을 할 문을 새로 한 겹 대든 무어를 하든 어찌 되든 돈이 들겠지요. 돈은 돈대로 들 터이나, 돈에 앞서 어떻게 뚝딱뚝딱 해야 하느냐 하는 일손이 듭니다. 나 스스로 일손을 들여야 하고, 둘째를 낳기 앞서 이 일을 마쳐야 합니다. 날이 풀려 따스해질 삼월이나 사월에 집고치기를 해야 합니다. 어느새 일월이 저무는 만큼 곧장 이월이요, 삼월과 사월도 눈앞입니다.


.. 할머니도 나랑 같이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한다. 아빠는 요즘 노래가 다 쓰레기 같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걸 신경 쓰기엔 너무 늙었다 … 뭐, 식구들 앞에서 주책을 부릴 수 없다면 어디서 부린단 말인가? 할머니가 원하면 온종일 음악을 듣고 춤추게 내버려 둬야 한다 … 할머니가 왜 거기에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할머니가 무엇을 하든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직접 물어 봐도 할머니는 그저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어쩌면 어릴 적에 뛰놀던 곳일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살았으니까. 80년 동안. 오, 세상에! 80년이라니. (14, 17∼18쪽)


 지난 하루와 이틀과 사흘 들을 곰곰이 돌아보니, 집에 물이 언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어찌저찌 살기는 잘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집에서 물을 못 쓰니 집에서 씻고 치우고 하기란 퍽 힘듭니다. 개수구를 씻거나 뚫기도 벅찰 뿐더러, 무엇 하나 수월히 넘길 만한 일이 없습니다.

 시골살이를 할 사람들이 시골살이를 찬찬히 보듬지 못한 탓인데, 아이 어머니가 몸을 건사하기 힘들어 이런 일을 같이 헤아리지 못한다면, 아이 아버지가 한결 슬기롭고 차분히 이 일을 건사해야 합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보낼 집부터 느긋해야 이 일을 하든 저 놀이를 하든 제대로 합니다. 집에서 물을 못 쓰니,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하러 멧길을 걸어 웃집까지 다녀옵니다. 날마다 이렇게 오가는 길에 아이는 즐겁게 따라나섭니다. 아이로서는 아버지가 날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이 일이라기보다 저랑 같이 겨울날 찬바람 쐬면서 즐기는 마실일는지 모릅니다. 여러모로 고단한 겨울날이지만, 달리 보면 내가 여태껏 얼마나 어리석게 살았는가를 뼛속 깊이 아로새기면서, 아이하고 더 오래 제대로 깊이 사귀면서 집식구 몸앓이랑 마음앓이를 옳게 짚으라는 뜻입니다.


.. “나도 기회만 있었으면 무용수가 될 수 있었어.” “장모님은 가만 좀 계세요!” 아빠가 뒤로 돌아서 할머니에게 고함쳤다. 젠장! 할머니에게 그렇게 소리치다니. 나는 펄쩍 뛰어올라서 아빠 얼굴에 대고 소리쳤다. “아빠, 미워! 아빤 나쁜 놈이야!” … 나쁜 놈! 발레는 내가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건데, 그걸 못하게 하다니. 나쁜 놈! 나쁜 놈! 나쁜 놈! ..  (92∼93쪽)


 밥을 하니까 살림꾼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빨래를 하기에 살림꾼이라 할 만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만큼 살림꾼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그러나 밥만 한대서 살림꾼이 되지 않아요. 밥만 하는 사람은 밥쟁이입니다. 빨래만 한다면 빨래쟁이입니다. 아이돌보기란 어떠한 삶일까요. 어떻게 하는 일이 아이돌보기이고, 돌봄을 받는 아이는 어떠할 때에 즐겁게 받아들이려나요.

 시골집에서 밥쟁이로 남을 내 삶인지 살림꾼으로 거듭날 내 삶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멧골자락에서 빨래쟁이로 한삶을 보내려 하는지 살림꾼으로 한삶을 누리려 하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아이하고 어머니 아버지에다가 둘째 아이가 어엿하게 시골사람으로 시골마을을 아낄 삶으로 나아갈는지, 어영부영 바빠맞은 하루를 보내느라 눈코 못 뜨며 보내는 삶으로 허둥댈는지 알뜰살뜰 돌아보아야 합니다.


 (3) 춤과 삶과 일


 문학책 《빌리 엘리어트》를 읽습니다. 영화를 소설로 옮긴 작품인 《빌리 엘리어트》입니다. 이 작품을 영화로 본 사람이 많을 테고, 앞으로 이 영화를 볼 사람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래도록 사랑받을 작품이요, 길이길이 이야기될 작품입니다.

 문학책 《빌리 엘리어트》는 청소년문학으로 여길 수 있고, 그냥 문학으로 여겨도 됩니다. 어찌 되었든 문학책입니다.

 영화로 볼 때면 한두 시간 가만히 지켜보면서 가슴이 젖어들 만하고, 책으로 읽을 때면 같은 대목을 되읽고 곱읽으며 새삼스레 가슴이 뭉클할 만합니다. 영화읽기를 할 때에는 낯빛과 몸짓과 삶터 하나하나를 아주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가슴이 젖어듭니다. 책읽기를 할 때에는 온삶을 머리로 그리는 가운데 내가 꾸리는 내 삶은 어떠한가를 나란히 맞대 놓으면서 내 길을 걷는 좋은 꿈을 꿉니다.


.. 내 말은, 대체 탄광 동네에서 발레 따윌 해서 뭘 하겠냐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도대체 어떤 탄광 말인가? … 하지만 난 광부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설사 광부가 된다 해도,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어째서 우리는 발레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단지 전에 해 본 사람이 없는 거다. 그뿐이다. 따라서 일단 내가 하고 나면, 그건 우리가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나도 우리 중에 한 사람이니까. 남자들이 모두 아빠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단지 춤춘다는 이유로,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  (51, 91쪽)


 ‘빌리 엘리어트’는 춤꾼이 아닙니다. 그저 춤을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춤을 출 때에 어쩐지 새 기운이 샘솟으면서 아름다운 땀방울을 흘리는 아이입니다.

 빌리 엘리어트는 ‘전문 춤꾼’이 될 수 있습니다. 빌리 엘리어트는 전문 춤꾼이 안 되고 ‘광부’가 될 수 있습니다. ‘광부로 일하면서 춤을 즐기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요. 탄광마을에서 춤을 선보이면서 이웃 ‘탄 캐는 일꾼’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될 만하고, 다 함께 춤추기를 즐기면서 ‘춤추는 탄광사람들’ 무대를 마련할 수 있어요.

 어느 길로 가든 빌리한테는 빌리 삶입니다. 춤을 추어도 좋고 안 추어도 되는 빌리 삶입니다. 다만, 빌리는 퍽 어린 날, 빌리가 걸어갈 길에서 ‘춤이란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억지로 하는 춤이 아닌, 돈을 바라보는 춤이 아닌, 이름을 드날리려는 춤이 아닌, 몸이 스스로 움직이는 춤입니다. 몸과 춤이 하나가 되는 삶입니다.


.. 아빠는 아빠대로 내가 춤추기 때문에 계집애 같다고 생각했고,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내가 당당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계집애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  (88쪽)


 계집애가 추는 춤을 춘다고 계집애 같다 할 수 없습니다. 계집애가 추는 춤을 추기에 더없이 사내애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사내애가 하는 일을 하기에 훨씬 계집애 같다 할 만합니다. 어떠한 일이든 ‘사내가 할 일’과 ‘계집이 할 일’이 따로 나뉘어지지 않거든요. 아기씨를 내놓는 일이란 사내만 할 수 있고, 아기씨를 받아 아기를 낳는 일이란 계집만 할 수 있습니다. 아기한테 젖 물리기도 계집만 하겠지요. 그러나, 이 일을 뺀 모든 일은 사내와 계집이 따로 없습니다. ‘사람’으로서 할 일입니다.

 빌리가 깨달은 춤추기란 ‘계집애만 추는 춤’이 아니라, ‘춤추며 흘리는 땀방울을 사랑하는 사람이 추는 춤’입니다.


..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엄마가 있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거다. 엄마는 아빠와 형이 그렇게 싸우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다 ..  (134쪽)


 어느 누구라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라도 아름답게 살도록 목숨을 선물받았다고 느낍니다. 어느 누구라도 아름다운 삶을 아름다운 꿈으로 빛내야 한다고 여깁니다.

 돈을 많이 벌 때에 아름답지 않습니다. 크고 멋진 집에다가 빠르며 예쁘장한 자동차를 갖추어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얼굴을 뜯어고쳐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노래를 잘한다거나 머리가 똑똑해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람이기에 아름답습니다. 엉겅퀴는 엉겅퀴라서 아름답습니다. 우리 집 앞에 우뚝 선 두릅나무는 두릅나무라서 아름답습니다. 콩새와 박새는 콩새와 박새라서 아름답습니다. 개구리는 개구리이기 때문에 아름다워요.

 저마다 제 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노릇입니다. 저마다 제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일입니다. 저마데 제 길을 튼튼하게 걸어가면서 따스함과 넉넉함을 사랑할 삶입니다.

 빌리는 빌리 삶을 뚜벅뚜벅 걸으면서 춤 하나를 붙잡을 뿐입니다. 빌리는 빌리 삶을 열면서 춤하고 사귈 뿐입니다. 빌리는 빌리 삶을 사랑하면서 춤하고 하나가 될 뿐입니다. 춤을 추면서도 밥을 먹어야 하고, 춤을 춘 다음에도 옷을 입어야 하며, 춤을 추기 앞서도 잠을 자야 합니다. 살림꾼이면서 한 아이요 바야흐로 어른으로 자라나며 오늘은 멋스러운 춤을 선보이는 빌리입니다. (4344.1.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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