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1999년 6월 30일, 잘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내부고발’을 했기 때문에 괘씸죄에 걸렸고, 맨 꼬랑지 일꾼이라며 나한테 막말을 쏟아붓는 사장하고 한솥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잘리기 앞서 먼저 사표를 던지고(집어던지고) 그만두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하기 앞서까지 신문배달을 하면서 먹고살았습니다. 신문배달을 하던 때에는 지국에서 먹고잤기 때문에 밥값과 잠값 걱정을 안 했으나, 막상 출판사를 그만두고 보니 일자리와 돈구멍이 하나도 없습니다. 굶어죽을 수 없는 노릇이기에, 내 보배로 여기던 책 가운데 5000∼7000권을 헌책방에 내다 팝니다. 이 가운데에는 소설쓰는 박완서 님 책이 모두 끼었습니다. 이때, 박완서 님 산문책이며 소설책이며 남김없이 내다 팔았습니다.
나중에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박완서 님 산문책은 다시 한 권 두 권 사들입니다. 그러나 박완서 님 소설책은 다시 사들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떠난 분 문학은 웬만해서는 되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박완서 님이 소설쓰던 마음하고, 박완서 님이 〈조선일보〉에 글을 쓰거나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을 맡는다거나 큼직한 자리를 차지하는 만나보기 기사에 실리는 마음하고 꼭 같다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이 마음은 한길로 이어진다고 느낍니다. 입으로 외치는 좋은 말은 아무리 달콤하게 들릴지라도, 몸으로 보이는 궂은 모습하고는 도무지 어울리지 못합니다.
여든 나이에 흙으로 돌아간 분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아무쪼록 따사로우면서 너그러운 흙 품에 안기어 사랑과 믿음을 고이 나누어 주는 어여쁜 씨앗이 되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머니 품은 사랑이고 할머니 품은 믿음입니다. 어머니는 바보스레 살아가는 불쌍한 아이들도 건사하고, 할머니는 못된 짓 일삼는 딱한 아이들도 보듬어 줍니다. 제아무리 끔찍한 짓을 저지른 전두환 씨 같은 사람일지라도, 참말 모든 재산 다 털려 거렁뱅이가 되었다 한다면, 이를 안쓰러이 여기며 밥과 잠자리를 내어줄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돈과 이름과 힘을 떵떵거리는 슬픈 모습으로 온누리에서 으시대는 사람들한테는 조금도 눈물을 보이기 힘듭니다. 왜 마지막 자리에서나마 내 부끄러운 얼굴을 털어놓으면서 깨끗해지기는 어려울까요. 어쩌면, 마지막 자리까지 부끄러운 얼굴을 털어놓지 못했을지라도, 따순 흙은 곱게 쓰다듬으면서 이제는 차분해지라고, 이제는 내려놓으라고, 이제는 아름다워지자고 이끌어 주겠지요. (4344.1.22.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