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책


 뜨개질을 안 하면서 뜨개책을 쓸 수 없겠지요. 뜨개질하는 사람 마음을 모르거나 살피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으면서 뜨개질 이야기를 쓰거나 나눌 수 있나요. 새내기로서 양말 한 켤레 뜨개하기란 얼마나 힘들며 오래 걸리는 줄을 사람들은 얼마나 헤아릴까요.

 헌책방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나, 헌책방 얘기를 책으로 묶거나 신문·잡지·방송에 싣는 사람은 헌책방을 얼마나 다녔을까요. 헌책방을 얼마나 생각해 보고, 사랑하거나 아끼며, 헌책방 일꾼 삶을 어느 만큼 헤아렸을까요.

 철거민이 되어 보아야 철거민 삶을 알 수 있다고 하겠지요. 철거민과 이웃이거나 동무라 하더라도 나 스스로 철거민일 때처럼 느끼지는 못해요. 기사를 읽거나 현장체험을 했다면 지식과 몇 가지 경험은 있되 삶은 아니에요.

 누구나 뜨개를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헌책방을 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어떤 뜨개’를 말하는 사람인가요. ‘어떤 헌책방’을 다루려는 사람인가요.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서 ‘아이키우기 책’을 쓸 수 없어요. 자전거마실을 즐기지 않으면서 ‘자전거여행 책’을 쓸 수 없어요. 헌책방과 책과 삶과 사람과 사랑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헌책방 이야기책’을 쓸 수 없어요. 아니, 책 아닌 글조차 쓰지 못해요.

 사진기 단추를 누른대서 모두 사진이지 않아요. 볼펜을 놀리거나 자판을 두들겼대서 다 글이지 않아요. 생김새가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사람 노릇을 하지 않아요. 겉모양이 밥과 똑같다 하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밥을 먹지 못해요. 플라스틱 꽃은 냄새도 없고 살아숨쉬지 않아요.

 살아숨쉬어야 비로소 사진이에요. 살아숨쉬어야 바야흐로 글이에요. 살아숨쉬는 헌책방을 살아숨쉬는 내 넋으로 고이 껴안으면서 한몸 한마음이 되는 가운데 샘물처럼 맑고 시원하며 한결같이 솟아나야 참말로 ‘헌책방 이야기’라고 느껴요. 발바닥으로 써야 하는 ‘헌책방 이야기’이고, 눈물과 웃음으로 나누어야 할 ‘헌책방 이야기’예요.

 나는 두 아이 아버지로서 이렇게 말합니다. (4344.1.19.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