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책을 말할 자유


 집식구가 둘째를 배어 여러 달째 집에서 뜨개질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스린다. 집식구가 뜨개질을 하니 저절로 수많은 뜨개책을 사서 모으고 읽는다. 옆지기가 뜨개책을 산다고 하기 앞서부터, 나는 그동안 헌책방을 다니고 책마을 일꾼으로 일하면서 ‘한국 뜨개책이란 한 가지도 없는’ 줄 알았다. 굳이 옆지기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옆지기 스스로 뜨개책을 찾아보면 다 알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라안에서 나온 뜨개책이든 나라밖에서 나온 뜨개책이든 몇 백 권 사들였다. 한국에서 나온 뜨개책은 모조리 일본 뜨개책을 베꼈다. 사람들이 잘 모르기도 하지만, 뜨개질에서 쓰는 말 가운데 옳게 우리 말다이 쓰는 말이 퍽 드물다. 인터넷모임을 꾸리며 뜨개질을 나누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알아챈다. 스스로 뜨개질을 해 보니, 한국말로 된 마땅한 한국책이 한 가지도 없어, 다들 영어로 된 책을 나라밖에서 사다가 읽거나 일본말로 된 책을 사서 읽는다. 어려운 영어나 일본말을 몇몇 사람들이 고맙게 번역해 주어 뜨개질 실마리를 나누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예부터 뜨개질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뜨개질이 있다 하여도 ‘뜨개 교본’은 한 가지도 없었을 뿐더러, 온갖 무늬를 넣어 하는 뜨개법이란 없다. 이 모든 뜨개법은 나라밖에서 들여온다. 그리고, 일본을 거쳐서 들어오기 일쑤이다. 지난날이든 오늘날이든 뜨개 교본은 일본 뜨개 교본에서 베끼거나 번역을 한다.

 옆지기는 첫째를 배었을 때까지 종이접기를 즐겨 했다. 종이접기를 하던 옆지기는 ‘종이접기 책’ 또한 한국책은 한 가지도 없는 줄 일찍부터 알았단다. 아무렴. 한국사람이 즐긴다는 종이접기는, 가만히 보면 그냥 종이접기가 아닌 ‘일본 오리가미’이기 일쑤이다. 한국에서 나오는 종이접기 책은 거의 모두 일본 ‘오리가미’ 책을 번역하거나 몰래 내놓는 도둑책이다.

 피아노 교본은 어떠할까? 교과서는 어떠한가? 사진책은 어떠하지? 문고판은 어떠했는가? 수많은 세계문학전집과 추리문학전집은 어떠했는가? 이 나라 책 가운데 일본책한테서 배우거나 훔치지 않은 책이란 몹시 드물다. ‘순수 창작 문학’이라는 책 아니고는 한국책이라 할 만한 책이란 없다시피 하다. 과학책이고 대학교재이고 다르지 않다. 전문서적이든 학술서적이든 매한가지이다. 역사책조차 일본책에 기대 온 나날이 대단히 길다. 역사 연구는 한국사람보다 일본사람이 더 깊고 넓게 해 왔고, 아직도 이 틀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본이 잘났고 한국이 못났대서 이러한 이야기를 끄적이지 않는다. 삶을 삶대로 바라보고 책을 책대로 껴안는 가운데, 이 땅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 깜냥껏 우리 슬기를 빛내어 나아갈 길을 찾고 즐겨야 하니까 이러한 이야기를 끄적인다.

 이제부터라도 참다운 ‘한국 뜨개책’을 누군가 쓰면 훌륭하다. 이제부터라도 즐겁게 ‘한국 종이접기책’을 누군가 엮으면 아름답다. 대원사에서 펴내던 “빛깔있는 책들”이 있기 앞서, 일본에서는 “칼라 북스”가 있었다. “빛깔있는 책들”은 “칼라 북스”한테서 배우거나 흉내냈다 할 만하지만, 한국땅 대원사 “빛깔있는 책들”은 짜임새와 꾸밈새를 한국답게 어루만져서 내놓았다. “칼라 북스” 같은 책이 없이 “빛깔있는 책들”이 나오기 힘들었으나, “칼라 북스”는 “칼라 북스”요 “빛깔있는 책들”은 “빛깔있는 책들”이다.

 책은 이렇게 만들면 되고, 이렇게 즐기면 되며, 이렇게 말하면 된다.

 어떤 이는 한국이 ‘미국 식민지’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이 말을 몹시 싫어하거나 못마땅해 한다. 정치로는 식민지가 아니라 할는지 모르나, 한국 정치조차 미국 정치가 에헴 하면 깨깽 하는데, 정치마저 식민지가 아니라 하기 어렵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놓고 얼마나 시끌벅적 떠드는가. 미국 장관들 이야기이며, 미국 경제와 사회 이야기가 한국 언론매체에 얼마나 큼지막하게 나오는가.

 한국은 책마을을 비롯해 문화마을과 예술마을이나 여러 갈래가 ‘일본 식민지’라 할 만하며, 참말 식민지 굴레를 고스란히 붙잡는다. 털지 못하거나 씻지 않는다. 느끼지 못하니 털 생각을 못하고, 깨닫지 않으니 씻을 마음을 내지 못한다.

 한국책이 참으로 한국책답지 않은 줄 알아야 비로소 한국책을 만들고 나누며 즐긴다. 한국책이 얼마나 한국책답지 못한가를 모른다면, 우리들은 한국책 아닌 일본책이나 미국책이 마치 한국책이라도 되는 줄 잘못 알 뿐더러, 쥐뿔 하나 없는 주제에 알량한 자존심만 내세우고 만다.

 자존심은 밥을 먹여 주지 않는다. 구슬땀을 흘리며 논밭을 일구어야 밥을 먹는다. 우리들은 자존심을 버리고 구슬땀을 흘리면서 이 땅에서 아름다운 한겨레 살붙이로 다시 태어나면서 내 밥을 맛나게 먹고 이웃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2011년 오늘까지도 아직 한국에는 한국책이 없다. (4344.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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