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우리말 생각 ㉤ 새말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문장편)》라는 책을 읽다가 “향기 나는 문장이니 하는 이야기까지 듣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14쪽).”라는 글월을 보았습니다. 이 같은 글월이 잘못되었다거나 얄궂다거나 할 수 있는 한편, 이러한 글월은 오늘날 어디에서나 어렵잖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글을 쓰고 싶으면 이와 같이 쓸 일이지만, 저보고 이 글을 다시 쓰라 한다면, “향긋한 글이니 하는 이야기까지 듣는다면 더없어 좋다.”처럼 쓰겠어요. 이 글월을 쓰신 분은 토박이말 ‘향긋하다’보다 한자말 ‘향기(香氣)’를 좋아하지만, 저는 ‘향기’라는 한자말보다 토박이말 ‘향긋하다’를 좋아해요. 그리고 ‘-일 것이다’ 같은 말투는 달가이 여기지 않아요. ‘것’이라는 말투는 아무 데나 쓰면 안 될 뿐더러, 이곳저곳에 함부로 쓸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금상첨화(錦上添花)’ 같은 한자말을 꼭 써야 하는지 궁금해요. 바르고 알맞으면서 쉽게 글을 쓸 수 있잖아요. “비단에 꽃을 더한다”는 뜻이라는 ‘금상첨화’인데, 쉽게 말하자면 “더 좋다”는 이야기예요. “참 좋다”나 “한결 좋다”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말사랑벗들은 이렇게 생각해 본 적 있나요. ‘금상첨화’라는 한자말은, 한자를 쓰며 살아가는 중국사람이 ‘새롭게 지은 낱말’이에요. 우리는 한글을 쓰며 살아가는 한국사람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이 땅에서 서로서로 살가이 나눌 만한 우리말을 새롭게 지을 만하지 않을까요?

 낱말책에 싣기는 어렵겠지만, ‘더좋다’ 같은 낱말을 지을 수 있어요. 새 낱말이 아니더라도 ‘더 좋다’ 같은 말마디를 써 볼 수 있어요. 학문하는 낱말로 관용구라고 하는데, ‘더 좋다’나 ‘한결 좋다’를 관용구로 삼아도 넉넉합니다. 또는 ‘비단에꽃’이라든지 ‘비단꽃’ 같은 낱말을 빚을 만해요.

 이렇게 보면, 이 글월은 “향긋한 글이니 하는 이야기까지 듣는다면 비단꽃이 아닐까.”처럼 새로 적어 볼 수 있습니다. “향긋한 글이니 하는 이야기까지 듣는다면 비단에 꽃을 얹는 셈이다.”처럼 새롭게 적을 수 있어요.

 학교를 다니는 말사랑벗이라면 “학교에서 입는 옷”인 ‘교복(校服)’을 입기도 하겠지요. 이 낱말을 그대로 써도 나쁘지 않으나 “학교에서 입는 옷”이라는 뜻 그대로 ‘학교옷’이라는 새 낱말을 빚어 써도 괜찮아요. 학교에서 부르는 노래는 ‘교가(校歌)’ 아닌 ‘학교노래’가 되고, 나라에서 부르는 노래는 ‘국가(國歌)’ 아닌 ‘나라노래’가 돼요.

 저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간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하는 일을 가리켜 ‘아이키우기’라고 이야기해요. 이 낱말도 낱말책에 없을 뿐더러 ‘육아(育兒)’라는 낱말만 실리는데, 낱말책에 실리든 안 실리든 즐거이 쓸 만하다고 느낄 뿐더러, ‘아이키우기’라는 말을 쓰는 분이 나날이 부쩍 늘어나요.

 지난날에는 ‘독서(讀書)’라고만 얘기했으나 오늘날에는 ‘책읽기’라고도 함께 얘기해요. 어쩌면, 이제는 ‘독서’보다 ‘책읽기’라는 낱말을 훨씬 자주 많이 이야기할 텐데, 아직까지 이 낱말은 낱말책에 안 실려요. 낱말책에 안 실린 낱말은 우리나라 맞춤법으로는 띄어서 적도록 하지만, 사람들이 새로 빚는 낱말로 여기며 즐겁게 쓰면 좋아요. ‘책읽기’와 맞물려 ‘삶읽기’나 ‘마음읽기’나 ‘글읽기’나 ‘시읽기’나 ‘영화읽기’나 ‘정치읽기’나 ‘사회읽기’ 같은 새말을 마음껏 빚어도 되고요. ‘사랑읽기’라든지 ‘믿음읽기’처럼 새말을 빚어도 됩니다.

 새말이란 하늘에서 똑 하고 떨어지는 말이 아니라, 우리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며 저절로 일구는 낱말이에요. 내 삶을 북돋우며 알맞게 빚는 낱말이 새말이고, 내 넋을 곱게 여미면서 슬기롭게 짓는 낱말이 새말이에요. 이리하여, ‘꿈날개’나 ‘꿈나래’도 새말이고, 아저씨가 말사랑벗을 일컫는 ‘푸름이’도 새말이랍니다. 밤에 올려다보는 하늘을 놓고 ‘밤하늘’이라 일컬으면, 이때에도 새말이에요. 동무들이랑 걷는 길이 좁아 ‘좁은길’이라 해 보아도 새말이고,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바라보며 ‘큰나무’라 가리킬 때에도 새말이에요. ‘글쓰기’도 새로 태어난 말이고, ‘그림그리기’나 ‘노래부르기’나 ‘사진찍기’ 또한 새말이랍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지을 수 없는 말이니까요, 새롭게 빚은 낱말을 듣는 이웃과 벗을 헤아리면서 아기자기하면서 사랑스러운 마음을 담아 하나둘 곱씹어 보셔요.

 ‘새말’이 있으니 ‘새글’이 있고, 사람은 새롭게 태어난대서 ‘새사람’이며, 새로 사귀는 벗은 ‘새벗’이요, 새로 한 밥은 ‘새밥’이에요. 새로 내놓아서 ‘새책’이고, 새롭기에 ‘새뜻’인 가운데, 새롭게 맞아들여 ‘새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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