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여 침을 뱉어라
이효인 / 예건사 / 1995년 1월
평점 :
품절


영화를 삶으로 껴안으면 한결 따스하겠지
― 이효인, 《영화여 침을 뱉어라》



- 책이름 : 영화여 침을 뱉어라
- 글 : 이효인
- 펴낸곳 : 영화언어 (1995.1.15.)


 생각을 열어젖히는 글을 읽을 때면 반가우며 고맙고 기쁩니다.

 한창 생각을 열어젖히다가 생뚱맞다 싶은 이야기가 나오면 슬프면서 안쓰럽고 기운이 빠집니다.

 영화 이야기를 적바림하는 이효인 님이 쓴 《영화여 침을 뱉어라》를 두 권째 장만하여 다시 읽다가 〈객담 1. 아이를 재우며〉라는 꼭지가 있어 곰곰이 살핍니다. 아이 없이, 또 옆지기 없이, 그예 혼자서 자전거 하나에 기대어 살던 2006년에 이 책을 처음 마주하며 읽을 때에는 그닥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친 꼭지를 새삼스럽다고 느끼며 차근차근 읽습니다.

 2010년 12월 한겨울을 보내는 오늘은, 저 또한 아이 하나를 재우면서 밤잠이 달아나 깊은 밤에 멀뚱멀뚱 깬 몸입니다. 머잖아 둘째가 태어나 두 아이를 먹이고 입히며 씻기고 재우는 나날을 보내야 할 어버이인 내 삶입니다. 그런데 글이름은 “아이를 재우며”이지만, 막상 아이하고 보내거나 부대끼는 삶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외려 뜬금없는 빗댐말을 읽으며 눈살을 찌푸립니다.

 한숨 한 번 길게 내쉽니다. 이내 눈살을 풀며 헤아립니다. 나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빗댐말을 쓰지는 않지만, 내가 쓰는 빗댐말을 못마땅해 한다든지, 나는 웬만해서는 빗댐말은 안 쓰지만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꾸밈없이 적바림하는 글조차 싫어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느낍니다.


.. 요즘 젊은 평자들의 글들이 젊은 여자들의 똥꼬치마처럼 짧게 파닥거리는 것이라면 최 선생의 글은 방귀를 슬쩍 흘러내리고도 겉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깡다구와 품격을 동시에 갖춘 것이다 ..  (189쪽)


 거친 말투를 쓴다고 해서 거친 사람이지 않습니다. 거친 말투로 여린 몸과 마음을 가린다거나 덮는다거나 지키기 일쑤입니다. 말투가 거친 사람일수록 몸이나 마음은 더없이 조그마하며, 말투가 보드라운 사람일수록 몸이나 마음은 몹시 크기 마련입니다.

 거친 말투를 받아들여야 했던 내 지난날을 곱씹습니다. 갖은 욕지꺼리와 주먹다짐이 아니고는 살아남을 수 없던 군대살이를 떠올립니다. 참말 군대에서는 갖은 욕지꺼리와 주먹다짐 아니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는지 새삼 되씹습니다. 어쩌면 욕 한 마디 않고 주먹다짐 한 번 없으면서 잘 살아남을 뿐 아니라 둘레 사람들한테 따스한 사랑을 나눌 만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해 보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이루지 못할 뿐인 꿈일는지 모릅니다만, 나부터, 군대살이를 하던 지난날 착하면서 참다이 지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문화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사회에서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상품 자본의 논리라는 것이다. 상품 자본의 논리는 끊임없이 무차별 대중들에게 적합한 형태의 ‘물건’을 요구한다. 이 물건은 상품으로서의 가치와 수명을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 변신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모든 변신은 상품성의 기준을 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요약하자면, 이국적인 것을 선호하는 기호, 자기 문화에 대한 열등감, 상품성을 갖추기 위한 사회적 압박 그리고 이런 풍토에서 파생된 정신분열증 등이 ‘탈권위 쿠테타’와 한국의 ‘천민 자본주의’와 맞물리면서 일본의 영화 문화를 쫓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  (181쪽)


 《영화여 침을 뱉어라》라는 책은 영화를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아끼고픈 이라면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찾아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만 한 책 하나 찾고자 다리품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이쯤 되는 책 하나 차근차근 새겨읽으며 마음닦이를 한다면 더욱 훌륭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 책은 징검돌이거나 디딤돌입니다. 길동무이거나 옆지기가 될 만한 책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길동무는 사랑스러운 벗이요, 옆지기는 믿음직한 너나들이입니다. 《영화여 침을 뱉어라》는 틀림없이 깊고 너른 생각과 마음씀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영화라는 문화에 이론이라는 지식을 엮는 데에 그칩니다. 영화라는 삶에 사람이라는 사랑을 여미지는 못합니다.

 영화를 읽으면서 영화를 파헤치는 눈썰미를 갈고닦는 좋은 동무인 《영화여 침을 뱉어라》라 할 만하지만, 영화를 사랑하면서 영화와 함께 살아가려는 길에는 걸맞지 않는 무거운 짐입니다.

 그런데, 우리 둘레에는 영화를 말하는 책이 몇 가지나 있으려나요. 한국 영화를 말하는 책이란, 한국이나 나라밖이라는 틀을 넘어 영화 문화를 다루는 책이란 얼마나 있는가요. 아직 ‘영화 삶’을 바라기는 힘듭니다. 섣불리 ‘영화 누리’를 꿈꿀 수 없습니다. 앞으로 천천히 씩씩하게 이룰 꿈입니다. 낮은 자리가 아니라 여느 수수한 자리에서 서로서로 포근하며 너그러이 감싸안으면서 북돋울 꿈이에요. (4343.12.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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