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46 : 어린이책 읽기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1975년에 내놓은 《얘들아 내 얘기를》(대한기독교서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예나 이제나 아이들한테 읽히는 책은 으레 동시나 동화나 그림책이나 과학책이나 지식책에 머물지만, 이원수 님은 일찍부터 ‘어린이가 읽을 수필’을 써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아이들이 읽을 만한 ‘자유로운 글(산문/수필)’은 거의 없을 뿐더러, 자유로운 넋과 삶을 담아 아이들이 씩씩하고 튼튼하게 커 나가는 데에 길잡이가 되도록 힘쓰는 어른은 몹시 드뭅니다.

 아이들한테 들려줄 ‘자유로운 글’이란 어른들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아름다움과 착함과 참다움을 사랑할 때에 쓸 수 있습니다. 입으로만 외치는 나라사랑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나라사랑이고, 손으로만 깨작대는 올바른 삶이 아닌 온몸으로 부대끼는 올바른 삶이어야 해요. 이원수 님은 《얘들아 내 얘기를》에서 아이들하고 아이들 어버이하고 아이들 가르친다는 사람들한테 “학교에서 공부해서 좋은 기술만 배우면 장래에 잘 살 수 있다든가, 지식을 쌓아서 사회에 중요한 일을 맡아 할 수 있다든가 하는 생각으로서는 안 된다. 기술이나 지식만으로서는 하나의 기계와 같은 것이 될 뿐, 아름다운 인간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186쪽).” 하고 말을 겁니다. “마음이 곧은 사람은 곧은 글을 쓰고, 마음이 슬픈 사람은 슬픈 글을 쓰고, 성격이 괄괄한 사람은 괄괄한 모양의 글을 쓴다(142쪽).”는 얘기를 덧붙입니다. “어린이들이 책을 사는 것은 그 속에 씌어 있는 글을 읽기 위해서다. 화려한 겉치레를 해야 내용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겉치레가 심해지면 책값은 글값이 아니라 치레값이다(180쪽).”는 생각을 덧답니다.

 어느덧 새롭게 맞이하는 2011년을 헤아립니다. 지난 서른여섯 해 동안 이 나라 학교는 얼마나 ‘기술 교육’을 넘어 ‘사람된 배움’에 마음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나날이 쏟아지는 숱한 책과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은 어느 만큼 ‘곧거나 착한 글’인지 알쏭달쏭합니다. 동네 작은 책방이 거의 사라진 요즈음 소담스러운 책이나 수수한 책은 얼마나 사랑받는지 아리송합니다.

 어린이책이란 어린이만 읽도록 어른이 쓰는 책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어린이가 좋아하면 그만인 책이 어린이책이라 할 만한가요. 어린이가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책이 어린이책이 되려나요. 어린이하고 어른이 함께 좋아서 읽는 책이 어린이책일까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마음을 따스하고 넉넉히 돌보는 책이 어린이책일는지요. 어린이랑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면서 누구나 즐길 책이 어린이책인가요.

 어른들은 이런 문학도 즐기고 저런 예술도 누립니다. 어른들끼리 주고받는 수많은 문화와 공연과 영화가 있습니다. 아직 아이한테 보여주기 어렵거나 아이가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가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처음부터 아이들 생각은 한줌조차 없이 살아가면서 아이들한테는 ‘귀여워 보이는’ 이야기만 던져 놓는다고 느낍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요, 아이들 또한 고운 목숨임을 옳게 살피지 못하는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책(글)은 어린이가 나란히 읽을 만한 눈높이로 써야 아름답습니다. 책(이야기)은 할머니랑 어린이를 마주앉히고 함께 읽도록 들려주어야 아리땁습니다. (4343.12.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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