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책 읽는 즐거움 ㉧ 사진책 도서관 열기
― 내 고향마을에 작은 책쉼터 하나
저는 2007년 4월에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2006년에 도서관법이 바뀌는 바람에 개인이 도서관을 열 때에는 법에 따라서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지만, 저로서는 나쁜 법은 지키고 싶지 않아서, 제가 그러모아 사랑해 온 책으로 동네에 조그맣게 도서관을 열었을 때에, 일부러 법을 어기며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도서관이란 나라나 지자체나 학교에서도 열 수 있으나 개인도 얼마든지 열 수 있어요. 정부나 시나 군이나 구나 동에서 도움돈을 받든 안 받든, 얼마든지 스스로 좋아하면서 열 만합니다.
어떤 분들은 찻집을 열면서 찻집 한켠에 책꽂이를 마련해 놓습니다. 차 한 잔 마시며 책 한 권 즐기도록 하는 셈인데, 이렇게 조그맣게 마련한 ‘책쉼터’ 자리 또한 도서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책이 열 권이든 백 권이든 얼마든지 ‘사진책 도서관’을 꾸렸다고 여깁니다. 몇 천 권이나 몇 만 권에 이르는 책을 갖추었대서 도서관이 아닙니다. 수십만 권이나 수백만 권을 갖출 자리가 있는 가운데, 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앉아서 책을 즐기도록 책걸상 알뜰히 갖추어야 도서관이 아니에요.
책을 나눌 수 있고, 책을 사랑할 수 있으며, 책을 아낄 수 있을 때에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은 바로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책을 건사합니다. 여러 사람이 책을 나누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여러 사람이 골고루 책을 사랑하도록 소담스러운 책을 손으로 만질 수 있게끔 하며, 여러 사람이 책을 아끼는 마음을 북돋우도록 이야기를 건넵니다.
지난 2007년부터 꾸리는 제 사진책 도서관에 찾아오는 분들 가운데 4/5가 넘는 사람들은 으레 “이 책들 파나요?” 하고 묻습니다. 이분들은 제 도서관에 찾아오면서 이곳이 ‘도서관’인 줄 뻔히 알면서도 묻고, 모르면서도 묻습니다.
도서관은 책을 팔지 않습니다. 도서관은 소담스러운 책을 건사해 놓으며 조용히 책에 빠져들도록 문을 열어 놓는 자리입니다.
이른바 북카페라는 이름을 붙이는 작은 찻집에서도 책은 좀처럼 팔지 않습니다. 때때로 파는 책을 놓기도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즐길 만한 책은 팔 까닭이 없고, 팔아서는 안 됩니다. 책을 사 갈 수 있는 사람은 혼자서 ‘좋은 책 건졌다!’는 기쁨이 북받쳐오르겠으나, 한 사람은 기쁨에 북받쳐오를 테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좋은 책을 구경조차 하지 못합니다.
저 스스로 저부터 조그맣게 사진책 도서관을 열 때에 꿈을 꾸었습니다. 대단히 많은 돈을 들여 아주 멋들어진 건물을 새로 짓는 도서관은 굳이 없어도 된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내 살림집 방 하나를 도서관으로 삼든, 내 가게 벽 하나를 책꽂이로 꾸미든, 내가 살아가는 터전에서 조촐히 가꾸는 도서관이면 넉넉하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굳이 서울이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서울이어도 좋고 서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 고향마을에서 즐겁게 살림을 꾸리는 가운데 ‘한 주 가운데 하루만 겨우 문을 열어도 괜찮’으니까, 길손이든 동네사람이든 좋은 책을 좋은 넋으로 즐기도록 마을쉼터를 예쁘게 열어 놓는다면 기쁘리라 생각하고 꿈을 꿉니다. 더 많은 책이 있어도 나쁘지 않으나, 더 깊으며 고운 사랑으로 책을 돌볼 수 있으면 한결 좋습니다.
골목마실을 하다가 다리쉼을 하며 책 하나 들여다보면 넉넉합니다. 마을이웃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책 하나 살며시 들추면 포근합니다. 동무랑 만나기로 하는 자리로 삼아, 동무를 기다리면서 책 하나 가만히 넘기면 알뜰합니다.
책은 삶이고, 사진 또한 삶이며, 사람은 고스란히 삶입니다. 사진책 도서관은 책과 사진과 사람이 어여삐 얼크러지는 쉼터이자 만남터입니다. (4343.12.20.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