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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숲의 아카리 6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책사랑과 책방사랑과 사람사랑
[만화책 즐겨읽기 16] 이소야 유키, 《서점 숲의 아카리 (6)》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 6권이 새로 나왔습니다. 1권부터 5권까지 즐겁게 읽었기에 6권도 즐겁게 집어듭니다. 다만, 4∼5권에 이르며 조금 느슨해졌나 하고 느꼈기에 6권을 집을 때에는 살짝 망설입니다.
6권에서는 얼마나 탄탄하며 짜임새있게 ‘책과 책방과 사람’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6권에서 책과 책방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싱그러이 담지 못한다면 앞으로 7권이 나오든 70권이 나오든 굳이 장만할 까닭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점 숲의 아카리》 6권에서는 ‘작은 책방 사장’으로 일하다가, 그만 ‘큰 책방한테 밀려 문을 닫고’ 말아, 나중에 ‘큰 책방 계약직 일꾼’으로 들어가서 잡지 부서를 다루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은 책방이 끝내 문닫고 말았을 때에 몹시 서운하며 가슴이 아팠을 테지만, ‘내 책방’이 아니라 ‘다른 사람 책방’에서 일하는 몸이 되더라도 ‘책방을 사랑하는’ 삶이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즐거이 일하려 했답니다. 그러나, 즐거이 일하려던 이녁은 큰 책방 정규직 부서지기가 기운을 꺾는 말을 일삼아 그만 ‘자리를 지키며 매출이 떨어지지도 올라가지도 않게끔만 일을 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책방이라는 일터가 아니라도 이런 모습은 퍽 흔하리라 봅니다. 내 일과 내 일터를 아울러 사랑하며 즐기는 사람이 있으나, 일이든 일터이든 돈벌이로만 여기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우리 터전이든 일본 터전이든 저마다 제 삶을 사랑하여 돌보는 나날보다는 더 크거나 많은 돈을 벌어들여 한껏 신나게 돈을 쓰는 나날로 탈바꿈한다고 느낍니다.
- “아르바이트 직원을 혹사시키면서까지 페어를 열고, 미미하게 매출을 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의미?” “맞아요. 페어는 직원이 알아서 기획하고 있다구요. 무엇보다 우린 하루하루 주어진 작업을 처리하는 것만도 벅차요.” “음, 제가 하는 건 좋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요?” (29쪽)
- ‘(나는) 남에게 무언가를 시키는 것에는 엄청 서툰 사람이야. 오히려, 전부 혼자 해도 되는 거라면, 그게 훨씬 마음 편해. 그럼, 저 사람들은 왜 서점에서 일하지? 책을 풀어놓을 뿐이면 다른 소매점에서 일해도 되잖아?’ (31쪽)
누군가 책방에서 일자리를 얻어 일을 한다면, ‘책방에서’ 일하는 뜻과 보람이나 값이 남달리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서든 ‘일하는’ 뜻이나 보람을 찾을 수 있겠지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돈을 벌어 집식구 먹여살리’면 넉넉하다 여길 수 있겠지요.
저로서는 자동차 만드는 공장이라든지 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돈만 벌어 집식구 먹여살리는’ 일은 하나도 달갑지 않습니다. 입에 풀을 바르지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할 판이고, 내 입만이 아니라 내 집식구 입을 떠올린다면 참말 아무 일이든 붙잡으려 할 노릇이라 할 텐데, ‘아무 곳에서든 돈만 벌어’ 집식구를 먹여살릴 때에, 내 집식구는 이러한 삶을 달가이 맞아들일 수 있나 모르겠습니다. 더 가난할 수밖에 없거나 더 쪼들릴 수밖에 없더라도, 마음이 무겁거나 힘들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일제강점기에 도시에서 살아가자면 무슨 일을 해야 했을까요. 오늘날 서울이나 부산에서 사랑하는 짝꿍을 만나 살림집 마련하여 살자면 무슨 일을 찾아야 할까요. 손꼽히는 대학교를 나온다 해서 마땅한 일자리 하나 만만하지 않다는데, 이러한 요즈음 젊은이들은 어디에서 어떤 일거리를 헤아려야 좋을까요. 연봉 높으며 정년 지켜 주는 사무직 일자리만 찾기 때문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셈 아닌지요. 내 삶을 따스하며 포근히 꾸리도록 도와주는 일자리는 안 찾는 오늘날 젊은이가 아닌지요. 오늘날 젊은이를 키워 낸 어버이부터 돈으로 셈하는 살림살이는 북돋울지라도 마음으로 돌아보는 살림살이는 못 살찌운 셈 아닌지요.
책방이라면 서울 종로에 있어도 책방입니다. 서울 용산이나 강동에 있어도 책방입니다. 불광동 안골이든 인헌동 옆골이든 어디에서든 책방은 책방입니다. 매장이 천 평을 넘어야 책방이지 않습니다. 매장이 두 평이라도 책방입니다. 갖춘 책이 십만 권이나 백만 권이어야 책방이지 않습니다. 갖춘 책이 이천 권이나 이백 권이어도 책방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집식구는 날마다 불고기를 먹든 피자를 먹든 열 몇 가지 김치를 먹든 해야 즐거운 밥차림이 아닙니다. 날마다 나물밥에 김치 한 조각 먹더라도 즐거운 밥차림입니다. 하루에 서너 끼니를 먹고 참까지 곁들여 먹어야 기쁜 밥차림이 아니요, 하루에 한두 끼 가까스로 챙겨 먹더라도 기쁜 밥차림입니다.
- “그건 뭐 하는 거야?” “아, 이렇게 아침과 밤에 잡지에 손을 올려 보면 몇 권이 팔렸는지 대충 알아.” “우와, 각각 두께가 다른데?” “응, 뭐, 매일 진열하다 보면 대강 감으로 알 수 있어.” “그렇게 하면 뭐가 편해?”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애정이야. 하루하루의 노력이 쌓이는 거지.” (44쪽)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 6권에서는 살짝살짝 ‘이 일을 왜 이렇게 하느냐 마느냐 하는 이야기’가 아닌 ‘이 일을 하루하루 즐기는 사랑에 담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사랑하니까 읽는 책이고, 사랑하니까 책방을 조그맣게 손수 열어 꾸리며, 사랑하니까 책방에서 사람들한테 내가 사랑하는 책을 보여주어 사서 읽도록 이끕니다.
그래요, 사랑하기에 서로 만나 조촐하게 살림을 꾸리며 살아갑니다. 사랑하기에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더 너른 품으로 더 살가이 보듬습니다. 사랑하기에 더 잘난 일자리나 더 이름난 일자리나 더 거룩한 일자리보다, 나와 내 살붙이와 내 이웃 모두한테 아름다우며 즐거울 일자리를 찾습니다.
- “있잖아요, 전에 일했던 점포에 ‘책은 싫어’해도 ‘서점을 좋아’해서, 내내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만약 타사이 씨가 ‘서점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그만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49쪽)
물고기를 좋아하지 않으나 배와 바다를 좋아해서 바다로 나아가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내가 물고기를 안 좋아할 뿐, 내 동무와 이웃과 살붙이가 물고기를 좋아한다면 나로서는 내가 안 좋아하는 물고기라 하더라도 즐거이 낚아올리고 손질해서 밥상에 차립니다. 옳지 않으면서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삶이 아니라, 옳다는 테두리에서 내가 달가이 여기든 달갑잖이 여기든 마음으로 아끼는 가운데 할 일을 찾는 삶입니다.
- “오늘 말이야. 스오도(서점)에 갔었어. 치프도 봤어.” “뭐라고?” “여성과 임산부한테도 친절한 매장이 돼 있던걸?” “여자는 여자에게 친절한 매장을 만들려고 하지.”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 서점은 백화점 안에 있는 점포의 특성상 여성의 비율이 높아서가 아닐까? 만약 남자가 많은 장소라면 다른 식으로 꾸몄을지도 몰라.” “이상하게 편드는군.” “내가 전에 말했던 거 기억해? ‘임신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힘드니까 잡지 매장에 육아서적을 놔두면 안 되겠어?’라고. 그러자 자기는 ‘귀찮아’라고 대답했지. 그걸 치프는 당연한 것처럼 쉽게 해 버렸으니까, 당연한 건 아닐지 모르지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손님도 바보가 아니니까. 타사이서점도 그런 곳이었어.” (50∼52쪽)
책을 사랑하면서 책방을 사랑하지 않기 힘듭니다. 책과 책방을 사랑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힘듭니다. 아니, 책을 사랑하기에 저절로 책방을 사랑하고, 책방을 고이 사랑하기에 시나브로 사람을 사랑합니다.
다만, 사랑하는 모습은 누구한테나 똑같지 않습니다. 아무개는 이렇게 사랑하고 저무개는 저렇게 사랑합니다. 이이는 이런 빛깔로 사랑하고, 저이는 저런 내음으로 사랑합니다.
참다이 사랑할 때에는 다 다른 사람을 다 달리 바라볼 줄 알면서 사랑합니다. 착하게 사랑할 적에는 다 다른 삶을 다 달리 껴안을 줄 알면서 사랑합니다. 곱게 사랑할 무렵이라면 다 다른 넋을 다 달리 헤아릴 줄 알면서 사랑합니다.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 6권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1권부터 5권까지 오는 동안 서점 숲에서 ‘일하는’ 아카리였고, 서점 숲에서 ‘부잊히고 넘어지며 배우는’ 아카리였는데, 차츰차츰 서점 숲에서 ‘사랑하는’ 아카리로 거듭납니다. 이 사랑이란 남녀 사이 애틋한 마음을 느끼는 사랑이기도 하지만, 내가 붙잡은 내 일과 일터를 아끼는 사랑이기도 하며, 내 둘레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이곳에서 일하며 서로를 보듬는 가운데 다 함께 착한 삶터로 가꾸고픈 사랑이기도 합니다.
책방은 자그마한 책방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책방 또한 가게이지만, 가게로만 있는 곳이 책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커다란 책방일 때에도 가게로만 있는 책방이 아니라, 책방으로서 책방이 있는 가운데, 사람과 삶이 어우러질 수 있다면 아름답습니다.
우리 나라 커다란 책방은 얼마나 책방답거나 삶터다운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서점 숲의 아카리》 같은 이야기는 한낱 만화책 이야기일는지 모릅니다. 꿈으로만 꾸고, 꿈으로만 마주하는 사랑인지 모릅니다. 잘 팔리는 책만 더 잘 팔려 더 돈이 되도록 더 마음을 쏟는 책방 얼개를 내려놓고, 두루 사랑할 책을 두루 나누며 두루 넉넉할 수 있게끔 나아가는 책터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4343.12.12.해.ㅎㄲㅅㄱ)
― 서점 숲의 아카리 (6) (이소야 유키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0.11.25./42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