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두 권 함께 쓰기


 책 두 권을 함께 씁니다. 먼저, 사진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하나 씁니다. 사진책을 이야기하는 책은 낱권으로 엮을 만한 부피로 글을 다 모았으나, 그러모은 글 가운데 절반쯤 되는 글을 덜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데에 쓰기로 했어요. 나라안 사진쟁이들은 아직 ‘사진 이야기’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서 ‘나라안 사진쟁이 이야기’를 쓴 글은 통째로 덜었습니다. 그래서 이만큼 새로 씁니다.

 다음으로, 우리 말을 이야기하는 책을 하나 씁니다. 그동안 쓴 다른 ‘우리 말 이야기’만으로도 책을 열 권 넘게 내놓고 남지만, 새 글을 새삼스레 씁니다. 진작에 쓴 글이 잔뜩 있으면서 새 글을 쓰자니 눈이 아프고 등허리가 휩니다. 그렇지만 여느 사람들은 교재나 참고서처럼 앎조각이 환히 드러나도록 글을 적지 않으면 제대로 읽어 주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에, 저로서는 참 쓰기 싫은 글을 씁니다.

 두 가지 책을 함께 쓰면서 생각합니다. 글은 저 스스로 좋아하는 결대로 씁니다. 따로 남한테 읽힐 마음으로 쓰는 글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말을 이야기하는 책은 다른 사람이 읽는다는 생각으로 써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골이 아파, 원고지 예순 장 남짓 되는 첫머리를 쓰고 난 뒤 지끈지끈 아픈 머리를 어찌저찌 가눌 길이 없습니다. 하루를 푹 쉬고 사진책을 이야기하는 책에 넣을 글을 하나 여밉니다. 이렇게 다른 책 글을 하나 여미고 나니 조금은 개운합니다. 어차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지만, 내가 쓴 내가 좋아하는 글을 다른 사람이 읽기도 하고 안 읽기도 하는데, ‘다른 사람한테 읽히려는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쓰기보다, ‘언제나처럼 내가 좋아하는 내 삶을 고스란히 담는 글’로 갈무리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곱씹습니다.

 이러면서 새로운 책 하나를 또 엮기로 다짐합니다. 두 가지 책 글만 쓰다 보면 아무리 저 스스로 마음을 가벼이 다스린다 할지라도 때때로 머리가 터질는지 모르거든요. 세 번째로 함께 쓰기로 한 책은 환경책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저는 수많은 갈래 책 가운데 환경책을 몹시 좋아합니다. 인천에서 시골로 살림집을 옮기며 사진책 도서관을 조촐히 열어 놓는데, 저 스스로 사진책 도서관을 열어 놓을 뿐 아니라, 제가 가장 마음 쏟아 적바림하는 글은 ‘우리 말 이야기’이건만, 제가 가장 아끼는 책은 환경책입니다.

 환경책은 사람이 살아가는 밑틀을 다룹니다. 요즈음 쏟아지는 적잖은 환경책은 이와 같은 ‘사람이 살아갈 밑틀’이 아닌 ‘환경 지식’을 다루기 일쑤인데, 참다운 환경책이나 옳고 어여쁜 환경책은 ‘환경 지식’을 다루지 않아요. 환경 지식을 다루는 책은 환경책이 아니라 여느 학문책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한국땅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환경책’은 속알을 살피면 환경책이 아닌 ‘학문책’이거나 ‘지식책’이에요.

 이렁저렁 세 가지 책을 함께 쓰는데, 이 세 가지 책을 쓰기 앞서 또다른 책 하나를 써 왔습니다. 음, 네 번째 책이라 해야 하나요? 정작 맨 처음 쓰던 책인데. 아무튼, 네 번째 책은 골목길 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이 책은 인천문화재단에서 해마다 하는 문예기금 공모에 넣으려고 글을 갈무리했어요. 인천문화재단 기금 공모는 어제로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어제 문화재단에 글을 보내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공모에 제 글을 보내지 않았어요. 한참 망설이다가 그만두기로 했어요. 이 글을 마무리짓고 이래저래 지원 서류를 쓰자니 몹시 골치가 아프더군요. 다른 무엇보다 지원 서류 쓰기가 참 번거롭고 까다로와서 못 하겠더군요. 이 지원 서류를 쓰자면 여러 날 다른 일을 붙잡지 못하는데, 둘째를 밴 몸아픈 옆지기를 보살피면서 스물여덟 달을 함께 사는 딸아이랑 놀자면, 도무지 엄두가 안 납니다. 글은 다 써 놓았으나 책으로 여미는 틀을 짜지 못했어요. 아니, 안 짜기로 했어요. 언젠가 누군가 이 글을 책으로 내 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주섬주섬 다시 그러모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오늘 제 삶으로서는 집식구랑 오순도순 지내는 데에 더 크게 힘을 쏟아야 한다고 느껴요.

 그러면 다른 세 가지 책도 안 써야 옳다고 여길 만한데, 이 가운데 두 가지 책은 출판사에서 내주기로 했답니다. 우리 말 이야기책은 출판사에서 우리 살림돈을 보태어 준다며 아직 계약서도 안 쓰고 글도 안 모였는데 계좌번호부터 알려 달라 하더군요. 몹시 고마운 일입니다. 세 번째 책도 출판사에서 내주리라 믿으며 글을 갈무리합니다. 될까 안 될까 모를 노릇이지만, 되리라 믿으며 글을 갈무리한답니다.

 오늘은 모처럼 아이가 아침에 느즈막하게 일어나 주어, 아빠는 아침에 글조각을 살짝 다듬었습니다. 아이하고 아침을 맛나게 먹었으니, 아이보고 한 시간쯤 혼자 놀라 해 놓고, 아빠는 아빠 일을 조금 더 하고 나서 아이하고 놀아야지 싶어요. 이제 열한 시 즈음에 빨래를 하고, 이때부터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아이랑 복닥이고 씨름하며 얼크러져야지요. 날이 가장 따뜻할 때에 산에 올랐다가, 보일러집에 전화를 넣어 우리 집 망가진 콘트롤박스(이 녀석을 무어라 다른 이름으로 고쳐서 일컬어야 할까 모르겠군요)를 바꿀 수 있는가 여쭈어야겠습니다. (4343.12.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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