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건축 4 - 칠궁
임응식 지음 / 광장 / 1977년 10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올렸던 글을 '리뷰'로 옮겨 새로 올린다 ㅠ.ㅜ 이 책은 절판된 지 오래되어 없는 줄 알고, 처음부터 '판 끊어져 검색 안 되는 책' 자리인 페이퍼쓰기를 했는데... 임응식 님 책을 검색해 보다가, 덜컥 뜨는 모습을 보거는 허거덕 @.@ 아웅... 힘들어라... 그러나 고마운 일이다. 다시 살 수는 없어도 이렇게 '책 검색'이 되는데다가 표지라도 뜨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술이기 앞서 삶인 사진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9] 임응식, 《韓國의 古建築 ④ 七宮》(광장,1977)



 사진찍기를 처음 배우려 하는 분들한테나, 사진찍기를 제법 해 왔으나 ‘식구들 사진 아니고는 찍어 보지 못했다’고 하는 분들한테나 으레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진기는 다 똑같은 사진기이니, 더 값나가는 값진 사진기를 굳이 장만하려고 하지 마시라고. 덧붙여, 더 값나가는 사진기 한 대 장만할 돈만큼 사진책을 먼저 장만하여 죽 들여다본 다음에 사진기를 새로 사도 늦지 않다고. 이리하여, 하루아침에 사진책을 한꺼번에 장만하지 말고 틈틈이 책방마실을 다리품 팔며 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으로만 한두 권씩 장만하며 사진기 값만큼 썼다 싶을 때에 비로소 사진기를 장만한다면 굳이 사진강의나 사진교실을 다니지 않아도 스스로 마음에 들 뿐 아니라 스스로 바라는 사진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우리 나라는 사진책이 아주 안 팔립니다. 책마을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책이 안 팔린다’면서 우는 소리를 내지만, 사진책을 만들어 온 책마을 일꾼은 예나 이제나 ‘책 팔기 힘들어’ 골골거리면서도 사진책 하나를 힘써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안 팔리는 책을 꼽자면 사진책과 함께 환경책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을 올바르고 아름다이 일구자는 뜻을 담은 환경책은 아주 뜻밖에 아주 안 팔립니다. 이름난 출판사에서 광고돈 제법 들여 알리지 않고서야 거의 안 팔립니다. 이는 사진책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난 출판사에서 광고돈 들여 널리 알리면 곧잘 팔립니다.

 문학책이 문학쟁이 한 사람이 일군 문학이라는 열매 하나를 담은 책이라면 사진책은 사진쟁이 한 사람이 일군 사진이라는 열매 하나를 담은 책입니다. 그런데, 문학책을 즐거이 사 읽으며 문학맛을 보려는 사람은 있되, 사진책을 기쁘게 사 넘기며 사진맛을 보려는 사람은 좀처럼 드뭅니다. 이러는 가운데 몇 가지 사진책은 아주 불티나게 팔립니다. 잘 안 팔릴 뿐 아니라 거의 안 팔린다는 사진책이라 하지만, ‘사진 더 잘 찍는 솜씨를 말하는 책’이라든지 ‘사랑받는 연예인 화보를 담은 책’이라든지 ‘곱상한 사진으로 멋을 부리는 포토에세이’라든지 ‘대학교 사진학과에서 교재로 쓰는 책’만큼은 제법 팔립니다.

 사진책을 즐겨 장만하는 저부터 늘 느끼지만, 사진책은 값이 좀 세긴 셉니다. 흔한 말로 휘리릭 넘기면 다 보는 사진책인데 책값이 꽤 비싸다 할 만합니다. 굳이 양장에 책 껍데기에 날개에 뭔가를 덕지덕지 달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돈을 더 들여 더 빛나게 엮으려는 사진책이 퍽 많습니다. 글책은 그예 글책이고 사진책은 그예 사진책이기에, 글책이 글로 책을 받아들이고 글로 삶을 읽도록 돕는다면, 사진책은 사진으로 책을 맞아들이며 사진으로 삶을 헤아리도록 도울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겉을 어느 만큼 꾸밀 수 있습니다만, 애써 더 겉꾸밈에 마음쓸 까닭이 없는 책들입니다. 이런 테두리에서 사진책 엮는 분들은 생각을 좀 고쳐야 합니다. ‘어차피 만드는 데에 비싼 돈이 치이니 몇 가지 더 꾸민다’고 하는 생각이 아니라, ‘사진 품질을 살리면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장만할 수 있는 눅은 값’을 맞추는 데에 생각을 모두어야지 싶어요.

 1970년대 끝무렵에 ‘도서출판 광장’에서 펴낸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사진책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자꾸자꾸 할밖에 없습니다. 광장이라는 출판사는 건축책을 내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건축을 사진으로 말하는 사진책을 꽤 큰 판짜임으로 여럿 내놓았습니다. 광장 출판사에서는 모두 50권쯤은 내놓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는데 모두 몇 권까지 내놓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 가운데 제가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찾아본 책들 가운데 다섯 권은 임응식 님 사진으로 나왔고(비원, 경복궁, 종묘, 칠궁, 소쇄원), 한 권은 강운구 님 사진으로 나왔습니다(내설악 너와집). 주명덕 님 사진으로 《수원성》이 나왔다고 하지만 이 책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 《제주 민가》를 담으려 했다는 사진책을 세 권 내려 했다는데 누구 사진으로 내려 했고, 나오기는 했는지조차 알 길은 까마득합니다.

 곰곰이 생각한다면,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는 사진책은 1970년대 끝무렵뿐 아니라 2010년대 첫무렵에 내놓는다 할지라도 널리 사랑받기에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옛집”이든 “우리 나라 오늘날 집”이든, 여느 사람들은 당신 살림집을 알뜰히 눈여겨보면서 우리 삶터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이 오순도순 모여 있는 한국 삶터 골목길을 스스럼없이 바라보거나 껴안거나 살피지 못합니다. 나라밖 일본이든 중국이든 티벳이든 인도이든 프랑스이든 미국이든 독일이든 스페인이든 하는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나가서 그 나라들 골목길을 눈여겨보거나 헤아리거나 바라보거나 살필 뿐입니다. 제주섬 올레길을 찾는 사람이 무척 많다고 합니다만, 관광길인 올레길은 찾아다닐지라도 스스로 ‘관광길이 아닌 여느 사람 살림집하고 맞닿은 골목과 고샅’을 즐겁게 찾아다니며 마을사람 눈높이와 삶결대로 거닐면서 ‘내 이웃 삶을 받아들이려는 몸짓’을 보여주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더욱이, 관광여행으로 많이 찾는 제주섬이 아닌 여느 우리 동네라 할 때에, 우리 동네 골목길 구석구석 골골샅샅 누비며 내 이웃집은 어디요 내 동무가 사는 집은 어디이고 내 단골집은 어디메인가 하고 곱씹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터조차 모르는 가운데 멀리멀리 비행기 타고 다닙니다. 우리는 우리 삶터 이웃집을 잘 알려 하지 않으면서 진보와 평화와 평등과 통일과 자유와 민주를 외치고 있습니다.

 임응식 님이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은 사진책 《비원》과 《경복궁》과 《종묘》와 《칠궁》과 《소쇄원》을 하나하나 넘겨 보노라면, 임응식 님은 이무렵 쉰 해 남짓 이어온 당신 사진삶을 한결 가다듬고 추스르면서 당신으로서는 거의 마지막 불꽃이라 할 만한 사진길을 새롭게 걸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나라 사진누리를 맨 처음으로 다스리거나 갈고닦았다고 할 분 가운데 하나로서, 당신 뒷사람한테 보이거나 남기거나 물려주고픈 이야기와 넋을 사진마다 알알이 아로새겼구나 하고 느낍니다.

 “韓國의 古建築”이 나올 무렵은 한국 사진쟁이도 “우리 나라 옛집과 옛궁”을 어떤 흐름과 줄기를 좇으며 어떤 이야기를 담도록 사진을 해야 하는가를 곧잘 살피던 때인 한편, 일본 사진쟁이 또한 “일본 이웃에 있는 아름다운 옛집과 옛궁이 살아숨쉬는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밝히고자 바지런히 찾아와서 알뜰살뜰 사진을 찍던 때입니다. 한 자리에 놓고 견주기에는 마땅하지 않으나, 1981년에 ‘村井修’라는 일본사람 사진으로 《李朝の建築》(求龍堂)이라는 두툼한 사진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 일본 사진쟁이는 ‘조선 무렵 옛 궁궐과 기와집’ 사진을 빛깔사진과 흑백사진 두 가지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빛깔사진으로 해야 할 자리와 때에는 빛깔사진으로 담고, 흑백사진으로 해야 할 곳과 때에는 흑백사진으로 담습니다. 놀랍도록 또렷하면서 밝고 아리땁게 ‘조선 무렵 옛 궁궐과 기와집’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고운 사진책인 《李朝の建築》입니다. 이 일본 사진책하고 임응식 님 《비원》과 《경복궁》과 《종묘》와 《칠궁》과 《소쇄원》을 나란히 놓고 생각한다면, 임응식 님 사진은 어느 모로 답답하다 여길 수 있습니다. 빛을 좀더 맑고 밝게 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임응식 님은 굳이 흑백사진으로만 “조선 무렵 옛 궁궐과 기와집”을 담습니다. 어느 사진은 선명도가 깨지고 어느 사진은 살짝 흔들리고 어느 사진은 빛이 잘 맞지 않아 아쉽지만, 이 땅에서 이만 한 집을 이루어 살아가던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즐기며 무엇을 아끼려 했는가 하는 생각을 사진마다 골고루 담아 놓습니다. 사진길을 오랫동안 걸어온 ‘임응식이라는 손꼽히는 사진쟁이’ 이름이나 얼룩을 느낄 수 없는 사진을 선보이는 “韓國의 古建築”입니다. 임응식이라는 사진쟁이가 내놓은 작품을 보라는 “韓國의 古建築”이 아니라, 이 나라 옛 궁궐과 기와집을 처음 지은 일꾼들 땀냄새하고 이 궁궐과 기와집에서 하느작거리며 노닐던 사람들 삶결을 읽으라 하는 이야기가 서린 “韓國의 古建築”입니다. 그래서, 사진 작품으로 치자면, 또 이 나라 옛 궁궐과 기와집 매무새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진으로 보자면, 일본 사진쟁이가 이룬 《李朝の建築》이라는 책이 더할 나위 없이 멋있습니다. 이와 달리, 사진하는 넋과 사진기를 쥔 손길에다가 사진으로 이루어 사진으로 나누려는 눈물과 땀내로 돌아보자면, 여러모로 어수룩한 구석이 남아 있으면서 “이 나라 옛 궁궐과 기와집”을 읽는 새로우며 남다른 생각과 밑눈을 베풀어 준 “韓國의 古建築” 다섯 권이 그지없이 고맙습니다. 저는 이 다섯 권 가운데 4번 《七宮》 사진책을 몹시 아낍니다.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저 좋아 웃습니다. 기와집이란 풀집과 달리 권력과 이름과 학문과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집인데, 이러한 기와집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사람 기운이 똑같이 어려 있’음을 사진으로 아기자기하게 엮어 냅니다.

 1979년에 나온 《현대한국사진작가선 : 임응식》(시각)이라는 사진책을 펼치면 이경성 님이 임응식 님 사진을 읽어낸 글이 한 꼭지 실려 있는데, 마지막을 다음처럼 맺습니다. “사실 그(임응식)의 말대로 오늘의 평면 예술에는 사진술을 이용한 많은 회화와 판화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사진술을 썼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궁극의 목적이 회화이므로 사진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진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사진작가 임응식은 ‘사진은 기록성과 진실성을 담은 평면예술이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4343.8.6.쇠.ㅎㄲㅅㄱ)


― 韓國의 古建築 ④ 七宮 (임응식,광장,1977/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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