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을 다니며 느끼는 여러 가지
1992년부터 헌책방 나들이를 즐겼고, 돈이 없으면 책방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다섯 시간이고 일곱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서 끼니를 굶어가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도서관이나 새책방에서도 하염없이 책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꼭 헌책방에서만 이렇게 책을 보며 지냈습니다.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헌책방처럼 책을 보기에 마음 가벼운 곳이 없어서 그랬다는 느낌뿐입니다. 새책방은 ‘팔아야 하는 책’을 두는 곳이라서 한 사람이 너무 오래 책을 들고 구경하면 손때나 땀이 배고 말아, 팔기에 꺼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도서관에는 제가 막상 보고픈 책은 다른 이가 빌려가서 없기도 하지만, 우리 나라 도서관 ‘새책 사들이는 돈’은 너무 적어서 새로 쏟아지는 좋은 책을 알뜰히 갖추지 못해요. 더욱이 웬만한 도서관은 ‘책과 자료 찾아서 보는 곳’이라기보다 수험생과 고시생들 시험공부 하는 곳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리하여 제 나이 열일곱부터 헌책방을 꾸준히 다녔습니다.
책방에 너무 오래 머물며 책도 얼마 안 사면서 구경만 하면 책방 일꾼이 안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안 좋아할 수 있지만 아무 마음도 안 쓸 수 있습니다. 책방에 오래 머물며 책만 봐서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아니라, 책읽는이(책손) 몸가짐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갈리거든요.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지식이 많다 해도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고 남을 업신여긴다거나 다소곳하지 못하다면, 사람 됨됨이가 없다고 하겠지요. 쉽게 말해, 책만 아는 바보입니다. 그렇지만 책은 거의 못 읽거나 아예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지식이 적다 해도 몸가짐이 곧고 깨끗하며 이웃을 사랑하거나 다소곳할 줄 안다면, 사람 됨됨이가 훌륭하다고 하겠지요. 헌책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헌책방 일꾼이 값싸고 묵은 책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나보다 낮게 본다’면 어느 헌책방 일꾼인들 반갑게 맞이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내가 읽을 책만 생각해서 다른 책손님이 구경하기 힘들도록 길을 막는다든지, 책을 함부로 다루면서 책을 밟거나 책탑을 쓰러뜨린다면 누구도 이런 책손을 좋아할 수 없어요. 헌책방 일꾼으로서는 ‘책을 많이 사 가서 팔림새에 도움이 되는 책손’을 싫다고 하지는 않으나, ‘책은 많이 사 가지만, 책을 아끼지 않거나 마구 다루는 책손’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새책방이야, 책이 지저분해지면 반품을 하면 그만입니다. 도서관은 낡은 책은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헌책방은 책방 일꾼이 맞돈을 주고 사들여서 갖춘 당신 재산이기 때문에, 헌책방 나들이가 아직 낯선 사람들 눈에는 ‘그저 값싸고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빛바랜 책’이라 해도, 당신 딸아들처럼 소담스러운 보배예요. 또 이 보배를 뒤지고 살피면서 반가운 책 하나 찾아가는 사람이 많은 만큼, 헌책방 일꾼은 당신 일터를 보배곳간으로 느낍니다.
지난 열다섯 해 동안(1992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을 비롯해서 이 나라 곳곳에 있는 헌책방을 틈나는 대로 찾아다니며 살아갑니다. 헌책방마다 저를 기다리는 반갑고 살가운 책이 있는 한편, 책 하나 알뜰히 다루고 돌보는 헌책방 일꾼 손길을 느낄 수 있으며, 저보다 책읽은 깜냥과 깊이가 훌륭한 다른 책손을 보면서 고개숙여 배우기도 하고, 헌책방까지 가는 동안 길에서 부대끼는 우리 삶터와 숱한 사람들을 보면서 ‘책 하나 즐기는 내가 이 늘;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면 더 좋을까’ 하고 깨닫습니다. 갖가지 책이 숱하게 많은 헌책방은, 책만 있는 곳이 아닌, 책 아닌 앎과 슬기가 언제나 가득한 문화 쉼터라고 느낍니다. (4339.9.19.불.처음 씀/4343.11.30.불.고쳐씀.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