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


 시골버스는 진작 끊겼다. 면내에서 택시를 탄다. 면내 택시도 모처럼 장사를 할 테지. 택시삯이 아쉬우나 시골택시 일꾼은 이럴 때 돈을 벌어야지. 요새는 너나없이 자가용이 다 있기에 아저씨들 벌이는 참 형편없잖은가. 그제 오랜만에 인천으로 볼일을 보러 면내로 시골버스를 타고 나갈 적에 버스가 언제 들어오나 기다리며 어기적어기적 큰길가에서 제자리 맴돌기를 하며 하늘바라기를 하자니, 어느새 들어온 시골버스가 뒤에서 뽕뽕 하며 나를 불러 주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아 있는데, 앞쪽에 앉은 늙수그레한 아지매가 버스기사하고 말을 나눈다. 버스 몰기 힘들지요, 아니요 힘들지 않고 손님이 없으니까 달리다가 졸려요, 네 그러시군요. 버스에서 내릴 무렵, 내 자리 맞은편 걸상 아래에 놓인 까만 비닐봉투를 본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이 비닐봉지를 들어 걸상에 올려놓고 안을 열어 본다. 마침 이때에 시골버스 일꾼이 손전화를 받는다. 손전화로 버스에 뭐 물건이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 소리를 듣기에, 내가 얼른 여기 물건 있어요 하고 이야기한다. 아, 손님이 여기 뭐 있다고 하네요, 네 아무도 안 가져가니까 걱정하지 마셔요.

 우리 식구는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더러 자가용 굴릴 돈이나 헌 자동차 살 돈조차 없다. 시골버스만 고만고만하게 탄다. 시골버스를 타며 이 버스를 마치 넉넉하고 큼직하며 한갓진 택시로 여긴다. 시골택시는 늘 더 빨리 달릴 길로만 달리지만 시골버스는 골골샅샅 시골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는데 아주 적은 돈으로 온갖 곳을 다 다닐 수 있으니, 우리 식구한테 시골버스는 택시와 마찬가지이다. 같은 길을 달리면, 시골버스로 우리 시골마을 어귀부터 면내까지 1600원이고, 택시로는 꼭 1만 원이다.

 엊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작 끊긴 시골버스는 탈 수조차 없는데, 저녁 아홉 시 오 분에 면내에 시외버스를 내리고 보니, 차부 가게는 벌써 문을 닫아걸었다. 아이 까까라도 하나 사들고 돌아갈까 했으나 빈손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나 아이는 집에서 일찌감치 잠들어 있겠지. 택시 타는 데로 간다. 택시 일꾼 한 분이 나와 준다. 차가 오래 서 있느라 안이 차다며 미안해 하신다. 괜찮아요, 내내 버스를 타고 왔는데요.

 택시삯이 아쉬우나 깊은 저녁이지만 집까지 안 들어가고 마을 어귀에서 내린다. 택시삯 만 원을 치른 다음 마을길을 걷는다. 마을 살림집 몇 채 있는 길은 불빛이 조금뿐인데 참 밝다고 느낀다. 이 불빛 때문에 밤하늘 별이 조금 덜 보인다. 그래도 밤하늘 별은 더없이 따사롭게 빛난다.

 초롱별이 그야말로 초롱초롱 빛나는 논둑길로 접어든다. 개장수 집에서 개들이 짖어댄다. 이 개들은 저희를 꺼내 달라는 듯한 목소리로 짖는다. 개장수 집 곁을 스칠 때마다 눈을 이리로 돌리지 못한다. 자칫 이들 가여운 개들 구슬픈 눈망울을 마주칠까 두렵다. 그러나, 이들 개로서는 목숨을 앗겨 고기국으로 바뀌기 앞서 저희를 따사로이 마주해 줄 사랑스러운 눈길 한 번을 기다리지 않으려나. 내가 개장수 집 우리에 갇힌 개라 한다면, 나를 꺼내 주지 못할지라도 나를 한 번이나마 바라보며 생각해 줄 눈길을 기다리겠다고 본다.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며 걷는다. 바람소리도 잦아든 저녁나절 길을 걷는다. 인천에서 살아가며 골목마실을 할 적에도 이런 느낌이었다고 떠올리는데, 인천 골목동네에서는 포근함을 느끼기는 했어도 별을 볼 수는 없었다. 어여쁜 꽃그릇과 예쁘장한 빨랫줄은 많았으나, 이들을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초롱별은 맞이할 수 없었다. 시골마을일 뿐 아니라 멧기슭에 자리한 우리 집에서는 어여쁜 꽃그릇이라든지 예쁘장한 빨랫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멧새가 있고, 짓궂지만 멧쥐가 있으며, 바람이 흔드는 나뭇잎과 논밭을 타고 달리는 바람소리가 있다. 감나무는 시골에도 도시에도 있다. 엊그제 인천 골목마실을 하면서 곳곳 살림집마다 까치밥을 알뜰히 남긴 모습을 보며 콧등이 시큰했다. 감나무는 어디에서도 감나무인걸.

 시골별도 해마다 조금씩 줄어든다. 이듬해에 마주할 시골별은 올해 시골별보다 줄겠지. 첫째 아이가 올려다볼 별보다 둘째 아이가 올려다볼 별은 훨씬 적겠지. 첫째가 무럭무럭 커서 아빠 나이만큼 되었을 때에는 시골별을 한국땅에서 얼마나 껴안을 수 있으려나.

 시골별이 모조리 사라지는 날에는 책은 몽땅 쓰레기라고 여긴다. 시골별 숫자가 줄어드는 동안 책은 차츰차츰 쓰레기하고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4343.11.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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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27 23:20   좋아요 0 | URL
털털 거리는 시골 버스가 한편으로 낭만적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 불편하기도 하지요.예전에 강원도 영월에서 충남 서산까지 버스로 간적이 있는데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오후 5시에 도착했지요.처음에는 영월 동강의 모습을 보면서 굽이 굽이 가는 버스 밖 경치에 취해서 시간 가는지도 몰랐지만 어느새 지겨워 져서 잠만 쿨쿨 잤던 기억이 나네요^^

숲노래 2010-11-28 06:57   좋아요 0 | URL
버스든 무어든 너무 오래 타고 움직이면 힘들어요. 한 시간 달린 뒤에는 두어 시간은 쉬고 해야 비로소 나들이가 된다고 느낍니다~~